◆코로나19에 위축된 신용카드 씀씀이
한국은행이 20일 발표한 '2020년 1분기 중 가계신용(잠정치)'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가계신용 잔액은 1611조3000억원으로 전분기 말(1600조2000억원)에 비해 0.7%(11조1000억원) 늘었다. 잔액 기준으로 사상 최대 규모다. 가계신용은 은행과 대부업체의 가계대출과 신용카드 할부액을 비롯한 판매신용을 합한 금액으로 포괄적 가계 빚을 나타내는 지표다. 가계신용 증가율은 지난해 2분기 1.1%, 3분기 1.0%, 4분기 1.8%로 1%대를 유지했지만 올들어 0%대로 내려갔다. 전년 동기 대비 기준 증가율(4.6%)은 작년 1분기(4.9%) 후 최고치지만 10%대를 넘어선 2017년부터 매년 하락하는 추세다.
이처럼 가계 빚 증가세가 꺾인 것은 신용카드 할부액을 비롯한 판매신용 잔액이 89조6000억원으로 전분기 대비 6.4%(6조1000억원) 줄어든 영향이다. 판매신용은 통계를 작성한 2003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줄었다. 코로나19로 바깥 활동을 자제한 가계가 씀씀이를 줄인 영향으로 풀이된다.
가계신용에서 비중이 가장 큰 가계대출은 1521조7000억원으로 전분기 대비 1.1%(17조2000억원) 늘었다. 지난해 1분기 증가율(0.4%)보다는 높았지만 지난해 4분기(1.6%)에 견줘 내려갔다.
가계대출 가운데 주택담보대출 증가율은 상대적으로 컸다. 주택담보대출의 1분기 말 잔액은 858조2000억원으로 전분기 대비 1.8%(15조3220억원) 늘었다. 이 같은 증가율은 2017년 3분기(2.1%) 후 최대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작년 3분기 19만8000호였던 전국 주택거래량은 지난해 4분기 29만3000호, 올해 1분기 32만5000호로 늘었다. 전국 전세 거래량도 지난해 4분기 30만호에서 올해 1분기 35만호로 뛰었다.
◆'부채 디플레이션' 우려 확산
전문가들은 가계 빚 증가율이 둔화되고 있지만 워낙 육중한 규모인 만큼 민간소비를 억누를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지난해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은 83.3%로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위험수위(80%)를 넘어섰다. 올해도 코로나19 충격과 저물가 영향으로 명목 GDP 증가율이 낮아질 가능성이 높아 가계부채 비중이 80%를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BIS는 가계부채가 명목 GDP의 80% 수준을 넘어서면 소비와 성장률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소비자 물가가 내려가면서 부채 디플레이션 가능성도 확산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0.1% 상승하는 데 그쳤다. 작년 10월(0.0%) 후 6개월 만에 가장 낮았다. 5월 물가는 마이너스를 기록할 가능성이 커졌다. 물가가 내려가면 상대적으로 현금 가치가 부각되고 실질금리(명목금리에서 물가상승률을 제외한 금리)가 올라가 상대적으로 빚 부담이 커진다. 가계가 서둘러 빚을 갚기 위해 보유한 자산을 매각하면서 자산가치가 하락할 수 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