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고난공동체와 사회적 자본
역시 다이내믹한 나라다. 지난 주말 지나간 신문을 들춰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두세 달 전과 비교하면 한국은 같은 나라일까 싶은 정도다. 2월 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무섭게 확산됐다. 한국인 입국을 막는 국가는 늘어갔다. ‘한국인이어서 미안하다’ 같은 자학적 칼럼도 등장했다. 마스크 대란에 거리는 들썩였다.

하지만 3월 중순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얼마 후 한국은 모범적인 방역국이 됐다. 세계 각국에서 진단키트 등 의료 장비를 요구하고, 미국 ESPN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시즌을 시작한 한국 프로야구 소식을 전한다. 그 와중에 총선을 치르며 한 번에 3000만 명 가까운 사람들의 열을 재고, 코로나19 초기 검사를 하는 창의성도 보여줬다.

문화적 유전자의 힘

무엇이 짧은 기간에 이런 변화를 이뤄냈을까. 가장 설득력 있는 해석은 ‘고난공동체’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한 국가다. 하지만 위기가 닥치면 공동체가 숨겨진 힘을 발휘한다. 일제 때 의병이 그랬고, 가난도 그렇게 극복했다. 한국을 산업화로 이끈 슬로건은 고난공동체의 본질을 꿰뚫고 이를 자극해 현대사의 명문으로 기록됐다. “잘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1990년대 후반엔 외환위기를 극복했고, 이번엔 코로나와 싸우고 있다. 국난 극복이 한국인의 취미라는 말까지 나왔다.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을 지낸 제프리 존스도 이런 말을 했다. “한국인들은 위기가 없으면 심심해하는 것 같다. 위기가 발생하면 다함께 달려들어 그것을 극복한다.” 수많은 국난을 겪으며 고난공동체 본능이 문화적 유전자로 자리잡은 듯하다.

그렇다고 고난공동체 유전자가 어느 국가에나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이를 가능케 한 요인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잘 설명했다. 그는 “한국인들의 정부에 대한 기대 수준이 높고 최상의 공공서비스를 요구한다는 게 핵심”이라고 했다. 공공서비스뿐 아니다. 정치적으로는 모든 국민이 정치평론가 수준이다. 그들은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을 시위라도 하듯 대통령이 마음에 안 들면 끌어내리겠다고 좌우가 번갈아가며 광화문광장을 점령한다. 스포츠도 비슷하다. 축구 야구 등 일본보다 랭킹이 한참 낮아도 한·일전은 이길 것이라 믿고 선수들은 나가서 이긴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문맹률, 인터넷과 스마트폰 보급률 세계 1위, 가장 높은 대학 진학률, 지기 싫어하는 승부욕 등이 높은 눈높이를 만들어냈고, 정부의 변화를 이끈 셈이다.

사회적 자본의 재발견

한국은 그동안 수많은 연구에서 저신뢰 국가로 분류됐다. 신뢰는 사회적 자본의 핵심 요소다. 그래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한국의 사회적 자본 순위는 항상 꼴찌권이었다. 코로나 사태는 이마저 바꿔놨다. 한 조사에서 ‘우리 사회가 신뢰할 만하다고 느끼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61%가 ‘그렇다’고 답했다. 더 높은 수치가 나온 조사도 있다. 코로나가 한국 사회에 던져준 선물과도 같다. 스스로를 비하하며 깨닫지 못했던 한국인들의 장점, 정부가 개방성과 투명성을 유지하고 제대로 소통하면 집단지성과 신뢰를 포함한 사회적 자본은 효율적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알게 해줬다.

이 위기가 지나가면 한국 사회는 예전처럼 각자도생의 길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정부와 정치권은 코로나 사태에서 한국인들이 보여준 사회적 자본이 고난공동체가 아니라 일상공동체에서도 힘을 발휘하게 하는 방안을 찾아 나설 때다.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