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연료재처리공장 안전대책 승인·전면 가동시 연 7t 추출
2022년 가동 목표…"경제성 낮고 핵 비확산에 어긋난다" 비판
일본 사용후핵연료 포화상태…재처리공장 없으면 원전 중단 가능성
일본이 핵무기 수천발을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이미 보유하고 있음에도 플루토늄을 추출 공장의 가동을 집요하게 추진하는 데 대한 의문이 확산하고 있다.

일본 당국은 핵연료 재사용을 위해 플루토늄 추출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발전용으로 플루토늄을 소비할 시설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사용후핵연료 재처리공장의 사업비가 천문학적으로 늘어 일본 내에서는 경제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으며, 핵 비확산 기조에 어긋나는 정책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 완공 24년 연기된 재처리공장 집요하게 추진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이하 위원회)가 13일 아오모리(靑森)현 롯카쇼무라(六ヶ所村)에 있는 니혼겐엔(日本原燃)의 사용후핵연료 재처리공장에 대해 내린 결정이 플루토늄 논란에 다시 불을 붙였다.

위원회는 재처리공장의 안전대책이 새로운 안전기준에 적합하다고 인정하는 심사서안을 승인했다.

정식 결정은 아니지만, 재처리공장을 가동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핵심적인 안전 심사에서 사실상 합격 판정을 내린 셈이다.

니혼겐엔의 계획으로는 나머지 행정절차 등을 거쳐 2022년 1월에 재처리 공장을 재가동하는 것으로 돼 있다.

재처리공장은 원전에서 나온 사용후핵연료에서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방사성 물질 화학 공장이다.

길이가 4m 정도인 사용후핵연료를 3∼4㎝ 크기로 절단해 질산으로 녹인 후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분리·정제해 분말 상태로 저장한다.

14일 아사히(朝日)신문의 보도에 의하면 이 과정에서 고준위 방사성 폐액이 나오며 합계 면적 약 3만5천㎡에 달하는 6개의 건물에 방사성 물질을 분산 수용한다.

방사성 물질이 존재하는 면적이 통상 원전의 약 10배에 달해 위험성이 크며, 사고 등에 대비한 엄격한 안전 기준이 요구된다.

재처리공장은 1997년 완성을 목표로 1993년 착공했으나 공사 지연, 설계 변경 등으로 지연됐고 시험 가동 중이던 2009년에 배관에서 고준위 폐액이 누출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해 24차례나 완공 시기가 연기됐다.

7천600억엔이던 건설비는 4배가 넘는 2조9천억엔으로 늘었고, 설비 유지 비용과 폐지 조치를 포함한 사업비는 작년 6월 기준으로 13조9천억엔(약 159조 8천27억원)에 달했다고 아사히는 전했다.

◇ 플루토늄 핵무기 수천발 분량 보유…"핵연료 재사용" 주장
일본은 핵연료를 재사용하는 핵연료 주기(사이클)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재처리공장에서 플루토늄을 생산하겠다고 설명하고 있다.

플루토늄 산화물과 우라늄 산화물을 섞어서 만든 혼합산화물(MOX)을 연료로 쓰는 원자력발전을 한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이런 설명은 많은 의문을 낳는다.

일본은 MOX 연료를 사용하기 위해 이른바 '꿈의 원자로'라고 불리는 고속증식로 '몬주'를 후쿠이(福井)현에 건설했으나 1995년 나트륨 유출 사고, 2010년 로내중계(爐內中繼)장치 낙하사고, 2012년 기기 점검 누락 발각 등의 문제가 이어졌다.

결국 일본 정부는 2016년 12월 몬주 폐로를 결정했다.

1조엔이 넘는 국비가 투입된 꿈의 원자로 전체 운전 기간은 250일에 불과했다.

일반 원전에서 MOX 연료를 사용하는 플루서멀 발전에서 플루토늄이 사용되지만, 그 양은 미미하다.

롯카쇼무라 재처리공장을 전면 가동하면 연간 최대 800t(톤)의 사용후핵연료를 처리해 약 7t의 플루토늄을 회수할 수 있지만, 현재 일본에서 플루서멀을 하는 원전은 4기뿐이라서 소비량이 연간 2t 정도에 그친다고 아사히는 전했다.

플루서멀 발전 계획이 있는 원전은 이 밖에도 더 있으나 심사나 지방자치단체의 동의 가능성 등을 고려하면 플루서멀을 실행하기 쉽지 않은 원전이 많다.

일본은 몬주의 후속으로 프랑스와 함께 고속증식로 '아스트리드'(ASTRID) 개발을 추진했으나 프랑스 측이 비용 등 문제로 사업을 축소하기로 하면서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런데도 재처리공장 사업을 계속하는 것은 핵폐기물 처리 방법이 마땅치 않은 상황과도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사히에 따르면 아오모리현, 롯카쇼무라, 니혼겐엔은 "재처리 사업이 현저하게 곤란해진 경우는 사용후연료를 시설 외부로 반출하는 등 조치를 강구한다"는 각서를 체결한 바 있다.

만약 재처리를 포기하는 경우 재처리공장 수조에 보관 중인 약 3천t에 달하는 사용후핵연료를 각 원전업체로 돌려보내야 하며 각 원전 내 보관 장소가 거의 포화상태인 점을 고려하면 롯카쇼무라의 사용후핵연료를 되돌려 보내는 경우 원전을 가동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는 이미 대량의 플루토늄이 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일본은 2018년 말 기준으로 약 45.7t의 플루토늄을 보유했다.

2017년 말에 원자폭탄 약 6천개를 만들 수 있는 분량인 약 47t을 가지고 있었던 것에 비하면 약간 감소했지만, 여전히 대량의 플루토늄을 확보한 '잠재적 핵보유국'인 셈이다.

재처리공장 사업에 드는 막대한 비용, 안전성에 대한 우려, 제한된 플루토늄 소비처 등을 고려하면 일본이 굳이 플루토늄 생산 시스템을 고수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집단자위권 행사를 가능하도록 법제를 변경하고 헌법 개정까지 추진하고 있어 다른 속셈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낳는다.

일본 정부는 사가(佐賀)현 소재 규슈(九州)전력 겐카이(玄海)원전 3호기의 MOX 연료에 포함된 플루토늄 640㎏을 국제원자력기구(IAEA) 보고에서 2012년부터 제외한 것이 2014년 일본 언론의 보도로 드러나기도 했다.

보고 누락한 플루토늄은 핵폭탄 약 80발을 만들 수 있는 양이다.

당시 국제사회의 비판이 거세지자 일본은 IAEA에 누락분을 추가로 보고했다.

플루토늄 보유에 대한 국제사회의 따가운 시선에 일본 내각부 원자력위원회는 2018년에 보유량을 더 늘리지 않겠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 일본 안보 관련 문제로 인식…찬반 엇갈려
일본 언론은 핵연료 주기 정책이 안보와 관련된 문제라고 규정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닛케이)은 14일 사설에서 "3년 전 일미 원자력협정 연장을 둘러싼 교섭에서 일본의 플루토늄 보유가 핵확산으로 이어진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며 "안전보장의 문제도 있어 주기 정책에서 바로 손을 떼는 것은 곤란하다"고 논평했다.

진보 성향 언론은 일본이 추진하는 핵연료 주기 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아사히(朝日)신문은 14일 사설에서 일본의 핵연료 주기 정책이 "이유 없는 국책"이라고 규정하고서 안전기준에 적합하다고 판단한 위원회 결정이 무책임하다고 비판했다.

이 신문은 "원전에서 사용이 끝난 핵연료를 재처리해 플루토늄을 추려내고 다시 원전에서 태우는 핵연료 주기 정책은 이미 파탄했다.

재처리공장을 움직이는 것은 핵 비확산이나 경제성 에너지안전보장 등 여러 면에서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논평했다.

아사히는 "이미 선진국 다수는 핵연료 주기는 수지가 맞지 않는다며 철회했다.

지금도 추진하고 있는 것은 중국이나 러시아 등 핵보유국뿐이며 국가가 채산을 도외시하고 추진하는 예는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플루토늄을 줄이겠다고 공언해놓고 플루토늄을 새로 추출하면 일본이 플루토늄을 줄일 의도가 있기는 한 것이지 혹은 핵보유국이 될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닌지 등 "엉뚱한 의심조차 받게 될 수 있다"고 신문은 우려했다.

반면 우익 성향의 산케이(産經)신문은 위원회의 결정에 대해 "우리나라의 전력공급에 도움을 주는 큰 진전"이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이 신문은 "핵연료 주기의 확립은 개발도상국의 발전에 따라 앞으로 세계 에너지 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일본이 지속가능한 발전을 확보하는 생명선"이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