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만든 황석영 소설가·김종률 작곡가 등 참석 "장송곡이 승리의 노래가 됐다"
담요로 창문 막고 부른 집터에 '님을 위한 행진곡' 표지석 제막
"담요로 창문을 막고 몰래 만들어 부른 이 장송곡이 약 40년 동안 불려 승리의 노래가 됐다.

"
1980년대 시대정신을 담은 곡이자 민주화운동 상징 곡인 '님을 위한 행진곡' 창작터를 기념하는 표지석이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기념해 13일 광주문화예술회관 국악당 인근에 세워졌다.

이날 표지석 제막식에는 가사를 개작하는 등 제작자 황석영 소설가와 가사에 노래를 장중하고 구슬픔 음을 붙인 김종률 작곡가가 참석했다.

당시 1박 2일 동안 만든 노래를 함께 연습해 부른 홍안의 청년들도 38년의 세월 동안 백발의 노인이 되어 제막식 현장에 찾았다.

표지석이 세워진 곳은 1982년 노래 제작 당시 황석영 소설가의 집터가 있던 곳이다.

당시는 야산에 자리 잡은 외딴집이었지만, 지금은 야산과 집터는 온데간데없고 광주문화예술회관이 자리 잡았다.

담요로 창문 막고 부른 집터에 '님을 위한 행진곡' 표지석 제막
황 소설가의 회고에 따르면 1982년 2월 전두환 정권이 집회를 못 하게 하는 탄압이 이어지자, 2월 20일 시민군 대변인이었던 윤상원과 노동 운동가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을 핑계로 민주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행사이자 암묵적인 투쟁 의식을 치렀다.

행사만 치르고 흩어지기가 아쉬웠다.

황 소설가는 지역 문화운동가들과 함께 그해 4월 추모 노래극 '넋풀이' 공연을 기획하며 노래를 만들기로 했다.

지역에서 대학가요제에 나가는 등 노래 꽤 잘 만든다고 이름난 당시 전남대생 김종률 작곡가가 황 소설가의 집에 찾아왔다.

황 소설가는 "김종률을 처음 봤을 때는 기타를 매고 무슨 밤무대 뛰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말만 하면 '따닥'하고 곡을 쓰는 거야"라고 말했다.

가사 개작을 맡은 황 소설가는 지역 작가들의 작품을 놓고 가사를 고민하던 중 백기완 시인의 작품 중 '산 자여 따르라'는 시 글귀에 꽂혔다.

마치 민주화 투쟁에서 죽어간 열사들이 부르는 소리 같았다.

결국 '님을 위한 행진곡'은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1980년 서빙고 보안사에서 고문당할 때 쓴 시 '묏비나리'가 바탕이돼 황석영 소설가의 개작을 거쳐 지금의 가사로 완성됐다.

가사에 음을 붙여 밤을 꼬박 새워 노래를 완성한 황 소설가와 김 작곡가는 지역의 청년들과 함께 오전 내내 연습하고 짜장면을 함께 먹고 오후에 가정용 카세트에 녹음해 세상에 뿌려졌다.

녹음 과정에서 혹시나 웅장한 노랫소리가 새 나갈까 봐 창문은 군용 담요로 가렸고, 원곡 테이프에는 황 소설가가 당시 집에서 키우던 개의 '멍멍' 소리도 그대로 녹음됐다.

38년 후 그날 황 소설가와 김 작곡가가 고민한 악보원문은 돌에 새겨져 표지석으로 완성됐다.

제막식에서 축사한 황 소설가는 "'님을 위한 행진곡'은 광주에서 죽어간 이들을 기리는 장송곡이었으나, 이제는 승리의 노래가 됐다"며 "아시아에 우리처럼 우여곡절을 겪고 민주화의 도상에 있는 여러 나라가 이 노래를 자기화해서 부르며 퍼져나갔다"고 말했다.

이어 "광주 시민들은 보수 정권 등 우리랑 생각이 다른 정부가 들어서면 가짜 뉴스에 모욕을 당하면서도 계속 광주 정신을 오롯이 지키려고 노력을 했는데, 그런 정신이 이 노래에 들어있다"며 "이 노래는 개인의 것이 아니라 광주 시민, 우리 모두의 것이다.

"고 강조했다.

김종률 작곡가는 "당시에는 이 노래가 민주화의 상징 곡이 될지 몰랐는데, 약 40년 동안 불려왔다"며 "이제는 '님을 위한 행진곡' 논란은 그쳐야 하고, 정치영역이나 교육영역이 아닌 문화 예술적으로 승화하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담요로 창문 막고 부른 집터에 '님을 위한 행진곡' 표지석 제막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