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열사 기억하자'…광주 광산구, 윤상원 추모사업 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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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가 찾아 추모식·기념시설 건립 속도·대회의실 윤상원홀 명명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대변인으로 활동한 윤상원 열사의 발자취를 조명하는 움직임이 잇따른다.
광주 광산구는 12일 추모식을 열어 '님을 위한 행진곡'의 주인공인 윤 열사를 기렸다.
광산구 신룡동 윤 열사 생가에서 열린 추모식에는 김삼호 청장과 공직자 20여명이 참여했다.
추모객은 윤 열사와 노동운동가 박기순 열사의 영혼결혼식에 헌정하기 위해 만들어진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헌화와 생가 참배를 이어갔다.
김 청장은 추모사에서 "윤상원 열사의 삶은 오월정신 그 자체"라며 "내일의 승리를 위해 오늘의 패배에 스스로 몸을 던졌다"고 말했다.
광산구는 5·18 40주년을 맞아 구청 7층에 있는 대회의실을 '윤상원홀'로 명칭 변경도 추진한다.
대회의실 입구에 현판과 윤 열사 추모 조형물을 설치한다.
내부 벽면은 열사의 일대기로 꾸미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윤상원홀 현판제막식은 오는 14일 오전 10시에 열린다.
진입로 사용 문제를 풀지 못해 해를 넘긴 윤 열사 기념시설 건립도 연내 첫 삽을 뜰 예정이다.
광산구는 윤 열사 생가가 자리한 천동마을과 협의해 기부채납 방식으로 마을회관 터에 '윤상원 민주커뮤니티센터'를 짓기로 했다.
광산구는 당초 생가 인근 빈 땅에 기념시설 건립을 추진했으나 진입로 예정 토지 소유자의 허락을 받지 못했다.
건설 장비가 오가는 통로이자 기념시설 완공 후 방문객이 이용하는 길목의 토지 소유자가 '내 땅으로 다니지 말라'는 뜻을 굽히지 않아 2018년 12월 계획했던 공사가 지금껏 미뤄졌다.
광산구는 마을이 소유한 회관 건물과 땅을 기부받아 기념시설 내부나 주변에 새 시설을 지어 보상하는 대안을 찾았다.
용지 매입과 기본 및 실시설계 용역 등 남은 절차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광산구는 윤 열사 일대기를 재구성한 그림 10점의 제작을 지역 화가에게 의뢰했는데 올해 말 완성 예정인 작품은 기념시설에 전시할 계획이다.
5·18 당시 시민군 대변인이자 항쟁 지도부 홍보부장이었던 윤 열사는 마지막까지 도청을 사수하다가 1980년 5월 27일 새벽 서른살의 나이로 산화했다.
광주북중·살레시오고·전남대를 졸업하고 나서 5개월간 은행 근무를 했으나 광천공단에 위장 취업하고 들불야학 강사로 활동하며 치열한 청년기를 보냈다.
/연합뉴스
광주 광산구는 12일 추모식을 열어 '님을 위한 행진곡'의 주인공인 윤 열사를 기렸다.
광산구 신룡동 윤 열사 생가에서 열린 추모식에는 김삼호 청장과 공직자 20여명이 참여했다.
추모객은 윤 열사와 노동운동가 박기순 열사의 영혼결혼식에 헌정하기 위해 만들어진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헌화와 생가 참배를 이어갔다.
김 청장은 추모사에서 "윤상원 열사의 삶은 오월정신 그 자체"라며 "내일의 승리를 위해 오늘의 패배에 스스로 몸을 던졌다"고 말했다.
광산구는 5·18 40주년을 맞아 구청 7층에 있는 대회의실을 '윤상원홀'로 명칭 변경도 추진한다.
대회의실 입구에 현판과 윤 열사 추모 조형물을 설치한다.
내부 벽면은 열사의 일대기로 꾸미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윤상원홀 현판제막식은 오는 14일 오전 10시에 열린다.
진입로 사용 문제를 풀지 못해 해를 넘긴 윤 열사 기념시설 건립도 연내 첫 삽을 뜰 예정이다.
광산구는 윤 열사 생가가 자리한 천동마을과 협의해 기부채납 방식으로 마을회관 터에 '윤상원 민주커뮤니티센터'를 짓기로 했다.
광산구는 당초 생가 인근 빈 땅에 기념시설 건립을 추진했으나 진입로 예정 토지 소유자의 허락을 받지 못했다.
건설 장비가 오가는 통로이자 기념시설 완공 후 방문객이 이용하는 길목의 토지 소유자가 '내 땅으로 다니지 말라'는 뜻을 굽히지 않아 2018년 12월 계획했던 공사가 지금껏 미뤄졌다.
광산구는 마을이 소유한 회관 건물과 땅을 기부받아 기념시설 내부나 주변에 새 시설을 지어 보상하는 대안을 찾았다.
용지 매입과 기본 및 실시설계 용역 등 남은 절차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광산구는 윤 열사 일대기를 재구성한 그림 10점의 제작을 지역 화가에게 의뢰했는데 올해 말 완성 예정인 작품은 기념시설에 전시할 계획이다.
5·18 당시 시민군 대변인이자 항쟁 지도부 홍보부장이었던 윤 열사는 마지막까지 도청을 사수하다가 1980년 5월 27일 새벽 서른살의 나이로 산화했다.
광주북중·살레시오고·전남대를 졸업하고 나서 5개월간 은행 근무를 했으나 광천공단에 위장 취업하고 들불야학 강사로 활동하며 치열한 청년기를 보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