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지는 서해에서 해 뜨는 동해까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여행이 위축을 받는 요즘, 접촉을 피할 수 있는 '언택트'(untact) 아웃도어 활동으로 캠핑이 주목받고 있다.

'언택트'란 접촉의 '콘택트'(contact)와 부정적 의미인 '언'(un)을 합성한 말로, 사람과 직접 접촉하지 않고 다양한 재화를 구매하는 새로운 소비·여행 경향을 뜻하는 신조어다.

[커버스토리] 언택트 여행-아웃도어 ① 캠핑
타인이 이용하는 식당과 숙소 등을 공유하지 않는 캠핑은 대표적인 언택트 활동의 하나다.

단순히 먹고 마시고 자는 행위뿐만 아니라 등산과 수상 레포츠 등 다양한 아웃도어 활동과 접목도 가능하다.

접촉 없이 자연 속에서 건강을 챙길 수 있는 캠핑의 매력과 노하우 등을 소개한다.

◇ 태안 이태백캠핑장

캠핑은 온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게다가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거나 독특한 체험까지 할 수 있다면 그 즐거움은 배가 된다.

태안국립공원과 접하고 있는 충남 태안군의 이태백캠핑장은 이러한 조건을 두루 갖춘 곳이다.

지인 부부가 이태백캠핑장으로 캠핑을 떠난다고 해서 합류하기로 했다.

코로나19 시대에 맞는 언택트 여행이라는 콘셉트에 맞춰, 식사 등 모든 것은 철저히 각각 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이태백캠핑장은 국내에서 몇 안 되는 바닷가 바로 앞에 자리 잡은 캠핑장이다.

목적지에 도착하고 보니 해변 초입에 의항리 해상낚시공원이 보였다.

낚시공원을 오른쪽에 두고 좌회전해서 들어가면 해변 끄트머리에 이태백캠핑장이 있다.

캠핑장 바로 앞에는 고즈넉한 해변이 반달처럼 넓게 펼쳐져 있다.

[커버스토리] 언택트 여행-아웃도어 ① 캠핑
캠핑 문화가 발전한 나라에서는 풍광이 좋은 곳에 호텔 같은 숙박시설보다 캠핑장이 먼저 들어선다는데, 이곳이 바로 그런 곳이었다.

이 캠핑장은 태안국립공원 사무소장을 지낸 박기환 씨가 퇴임 후 문을 연 곳이다.

해안을 따라 길게 형성된 캠핑장에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텐트들이 질서정연하게 자리 잡고 있다.

지인 일행이 있는 장소는 캠핑장 맨 끝쪽이었다.

가장 고즈넉한 자리다.

화장실과 개수대도 비교적 가까웠다.

대충 내 텐트를 세팅할 자리를 확인하고 주변을 둘러봤다.

지인은 삼각형 모양의 '티피텐트' 한 동 옆에 기습적인 봄바람에 대비하기 위한 거실 용도로 다른 티피텐트를 한 동 더 폈다.

흔히 인디언 텐트로 알려진 삼각뿔 형태의 텐트를 티피텐트라고 부르는데, 외국의 유명 텐트회사인 텐티피(tentipi)에서 내놓은 형태의 텐트가 유명해지면서 일반명사가 된 케이스다.

마치 소니 '워크맨'이나 '버버리' 코트처럼 말이다.

[커버스토리] 언택트 여행-아웃도어 ① 캠핑
지인 텐트 옆에 들어선 텐트는 승용차 위에 텐트를 설치한 '루프톱 텐트'(rooftop tent)였다.

루프톱 텐트는 언제 어디서든 차량을 움직여 간단하게 텐트를 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혼자 온 듯한 솔로 캠퍼였는데, 루프톱 텐트 아래쪽에는 스프레이형 소독제가 걸려 있고 테이블 위에도 젤형 소독제가 한 통 놓여 있었다.

물론 캠핑장 내 곳곳에도 손 소독제가 놓여 있어 현재의 시국을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텐트를 설치하고 해변으로 내려갔는데 때마침 아이들이 해변을 달리고 있었다.

그중 일부는 마스크 차림이긴 했지만, 그동안 집안에 틀어박혀 힘겹게 지내던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노는 모습은 보는 사람의 마음마저 뻥 뚫리게 했다.

백패킹으로 해변에서 캠핑하기 위해 이동하는 남녀 백패커들도 눈에 띈다.

자연과 함께하려는 사람들의 열망을 볼 수 있었다.

[커버스토리] 언택트 여행-아웃도어 ① 캠핑
저녁을 먹고 나니 이제 이야기꽃을 피울 캠핑장의 밤이 왔다.

하지만 언택트를 추구하는 입장이라, 양해를 구하고 지인 부부와의 식사 자리는 피했다.

지인 부부는 인근 수산물 시장에서 지역 특산품인 주꾸미를 사 와서 요리한다고 했다.

필자는 삼겹살을 프라이팬에 구워 먹은 뒤 거기에 그대로 김치를 넣고 햇반으로 볶음밥을 했다.

김치와 삼겹살이 조화를 이룬 볶음밥은 맛이 기가 막혔다.

이곳 캠핑장은 전국에서도 소문난 '해루질' 명당이기도 하다.

해루질은 물이 빠진 얕은 바다에서 맨손으로 조개, 낙지, 꽃게 등의 어패류를 잡는 일을 말한다.

해루질 장비를 가져오거나 마을 상점에서 도구를 사 아이들에게 잊지 못할 경험을 선물해 주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된다.

밤이 깊어지니 해변 아래쪽에서 헤드랜턴 불빛과 함께 도란도란 소리가 들려온다.

다가가 보니 40대 가장이 두 딸과 함께 물이 빠진 해변에서 조개를 줍고 있다.

자그마한 조개였지만 마냥 즐거운 표정의 아이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커버스토리] 언택트 여행-아웃도어 ① 캠핑
◇ 울진 구산해수욕장 캠핑장

경북 울진군 남쪽 기성면 구산리에 자리 잡은 구산해수욕장은 그 이름만큼이나 정겨운 해변을 자랑하고 있다.

깨끗한 바닷물과 넓은 해변, 울창한 솔숲이 둘러싸고 있어 가족 피서지로 적합한 곳이다.

연예인 이효리, 성유리 등이 출연한 인기 캠핑 예능 프로그램의 촬영지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바다도 경사가 비교적 완만해 어린아이가 있는 가족 단위의 캠핑지로 제격이다.

해수욕장에 들어서면 왼쪽은 오토캠핑장, 오른쪽은 일반 해수욕장이다.

오토캠핑장에는 글램핑 시설과 캐러밴 등 다양한 시설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비수기에는 별문제가 없지만, 텐트를 칠 수 있는 사이트 면수가 적어 피서객들이 많이 찾는 여름에는 자리가 모자라는 경우가 많다.

휴일을 앞두고 벌써 만석에 가까웠다.

관리소 바로 앞에는 이곳 캠핑장의 명물인 영국식 이층 버스가 주차돼 있다.

버스 내부는 클래식한 디자인의 모형 전화기 등 아기자기한 볼거리들로 꾸며져 있다.

화장실과 샤워실도 현대식으로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었고, 관리소 입구에는 체온계와 세정제도 갖추고 있었다.

[커버스토리] 언택트 여행-아웃도어 ① 캠핑
관리인은 코로나19가 심했을 때는 2주가량 주변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캠핑장을 폐쇄한 적도 있었지만, 캠핑만큼은 대면 접촉할 일이 많지 않다는 점을 확신하고 재개장을 했다고 한다.

매일 화장실과 샤워실을 소독하는 등 캠핑장 위생에 신경을 많이 쓰는데, 주말은 자리가 없을 정도라고 한다.

오토캠핑장의 텐트 설치 장소는 해변이 바로 보이지 않아 일반 해수욕장에 간단한 돔 텐트를 세팅했다.

이곳 해수욕장에서는 해송 숲속이나 해변이 바로 보이는 장소에 텐트를 설치할 수 있다.

다만 주차장에서 짐을 옮겨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텐트를 설치하느라 진땀을 빼고 나니 어느새 해가 지고 있다.

동해안의 일몰은 크게 아름답지는 않지만, 해가 넘어가며 만들어내는 해송 숲속의 빛 내림은 환상적이다.

해가 완전히 떨어지고 난 뒤에는 해변과 하늘의 경계가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하늘이 푸르다.

내 텐트에서 30m쯤 떨어진 곳에 작은 돔 텐트를 편 캠퍼가 한 명 더 있었다.

그도 말없이 수평선만 바라보고 있다.

떠들썩한 오토캠핑장과 달리 이쪽 캠핑장에는 고즈넉한 매력이 있다.

[커버스토리] 언택트 여행-아웃도어 ① 캠핑
◇ 캠핑 장비와 소품들

태안 캠핑 때 인상적인 것은 같이 캠핑을 온 지인 부부의 세팅이었다.

얇은 철망으로 된 화로대와 무쇠 프라이팬인 스킬렛(skillet) 등 왠지 감성을 강조하는 느낌이다.

심지어는 가스가 기화하면서 가스용기가 얼어붙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가스 용기에 씌우는 '가스워머'도 손뜨개로 뜬 것이었다.

줄로 묶어 장식용으로 사용하는 '가렌더' 또한 손뜨개로 만든 것이었다.

[커버스토리] 언택트 여행-아웃도어 ① 캠핑
캠핑계에서는 이렇게 아기자기한 느낌을 강조한 집기류들로 캠핑을 하는 풍조를 '감성캠핑'이라 부른다.

선뜻 와 닿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세심한 데까지 신경을 쓰는 모습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안의 지인 부부가 가져온 화로 위에는 철판의 일종인 '그리들'(griddle)이 올려졌다.

그리들은 테두리가 없는 두꺼운 철판으로 각종 요리를 불 위에서 할 수 있도록 한 조리도구다.

[커버스토리] 언택트 여행-아웃도어 ① 캠핑
그리들 이외에도 스킬렛이 사용됐다.

스킬렛은 그리들에 비해 다소 작지만, 테두리가 있는 무쇠 프라이팬이다.

무쇠는 각종 요리 재료의 맛을 최대한 살려주는 특징이 있다.

가마솥으로 지은 밥이 유난히 맛있는 것처럼 말이다.

동해안 구산해수욕장 캠핑 때는 미니 화로를 사용했다.

예전 일본 출장 때 사 왔던 작은 화로를 테이블 위에서 요긴하게 쓴 적이 있는데, 요즘은 국산 중소기업들도 꽤 장비를 잘 만들어낸다.

캠핑장에서 불을 보면서 '멍 때리기'를 하는 것을 '불멍'이라고 한다.

멍하니 불을 보면 잡생각이 없어진다.

요즘처럼 갑갑함이 많은 시기에는 이런 불멍 때리기 만으로도 행복할 듯하다.

[커버스토리] 언택트 여행-아웃도어 ① 캠핑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0년 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