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미군 상대 성매매 조장·방조' 손배소송내 2018년 서울고법서 승소
정부 차원 공식 사과 진상규명은 요원…경기도, 전국 첫 '기지촌 여성 지원' 조례 제정
이재명, "기지촌여성 문제 심각한 인권침해…도 차원 적극 지원"

"1969년 열아홉 나이에 기지촌에 들어갔는데 배운 게 없어 나오고 싶어도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러다 보니 59살까지 기지촌에서 살았지."
해방 이후 주한미군 부대 주변에서 서비스업 중심의 생활권을 형성한 일종의 군사취락을 '기지촌'이라고 한다.

올해로 70세인 김 모씨(평택 거주)는 2014년 6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낸 기지촌 성매매 종사 여성 110여명 중 한 명이다.

기지촌 여성들은 "정부가 기지촌에서 성매매를 조장하고 방조한 책임이 있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2018년 2월 서울고등법원에서 승소했다.

그러나 여전히 정부의 공식 사과와 진상 규명은 요원하기만 하다.

이런 가운데 경기도의회가 지난달 29일 경기도 차원의 '기지촌 여성' 지원 근거를 담은 조례를 전국 지방의회 가운데 처음으로 제정했다.

경기도는 지원 조례 제정을 계기로 7일 기지촌 여성들과 경기여성연대 등 여성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지원방안을 모색하는 간담회를 가졌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조례에 정부가 주한미군을 위해 성매매 행위를 정당화하고 조장한 책임이 있다는 내용을 담은 만큼 도 차원의 실태조사와 피해자 지원에 속도를 내겠다고 약속했다.

이 지사는 "이제라도 국가 기관에 의한 방조, 또는 조장에 대한 책임을 부담하고 피해 실상이나 객관적 실태들에 대한 명확한 조사가 필요하다"며 "도 차원에서 가능한 일이 무엇인지 함께 논의하고 필요한 조치를 고민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기지촌 피해 여성인 김씨는 이날 간담회가 끝난 후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이 겪은 기지촌 여성으로서 삶과 고통에 대한 기억을 전했다.

19살이던 김씨가 돈을 벌 수 있다는 얘기에 기지촌을 찾아간 것이 불행의 시작이었다.

딸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갖은 구박을 받고 집을 나온 그는 일이 필요했다.

"처음에 송탄(평택)의 한 포주집으로 가게 됐는데 덩치 큰 미군을 보니 덜컥 겁이나 적응을 못했어. 다행히 가게에서 일하던 '언니집'에서 1년간 식모살이를 했는데 언니가 미군과 결혼해 미국으로 떠나니 갈데가 있어야지 그래서 또 기지촌으로 들어갔지."
이후 충남 성환, 충북 진천, 충남 태안, 평택 안정리 기지촌을 전전했고, 59살(2009년)까지 40년간 기지촌 여성으로서 삶을 살았다.

"진천에 있을 때 친구 한 명이 성병 검사를 통과 못해 낙검자(落檢者) 수용소로 갔는데 페니실린 주사를 맞고 쇼크가 와 죽었는데 누구 하나 말도 못하고…수용소 방마다 '장미'. '해바라기'와 같은 꽃이름이 붙어 있었는데 그곳을 '몽키하우스'라고 불렀어."
김씨는 "경기도가 지원 조례를 만들었으니 이제 대법원 판결 이기고, 우리같은 사람을 돕는 법도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순영 경기여성연대 상임대표는 "국가가 기지촌 여성에게 행한 인권유린의 책임을 하루 빨리 인정하고 사회적 낙인이 찍혀 고통받고 있는 기지촌 여성들의 생활안정과 명예회복, 진상 규명을 위해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더 많겠지만 기지촌 여성의 삶을 살았던 분이 경기지역에서만 500여명될 것으로 추정한다"며 "대다수가 70세 이상의 고령인데 이들이 자존감을 갖고 세상에 떳떳이 나설 수 있게 제도적으로 뒷받침해 이 분들에게 행해진 인권침해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