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기부라니 저는 들어본 적도 없는데요?"지난 5일 농협이 임원과 간부급 직원 5000명이 긴급재난지원금(코로나지원금)을 자발적으로 기부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는 소식을 듣고 한 지역농협 임원은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자신이 기부 대상이라는 사실도 몰랐으며 자발적으로 기부하기로 한 적도 없다는 것이었다.농협이 추산한 5000명에는 약 1100개의 지역농협의 임원 3명과 중앙회 및 계열사, 지역본부 간부 등이 포함된다. 하지만 정작 개별 당사자에게 일일이 기부의사를 확인하는 절차는 없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전날 기부 방침에 대한 보도자료를 내면서 5000명의 기부 대상자 중 "반대의견은 없었다"고 설명했지만 실상은 이와 달랐던 것이다.앞서 메리츠금융그룹이 임직원 2700명의 '자발적 기부'를 발표했을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직원들에게 동의를 구하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회사 측은 CEO메시지를 통해 전 직원에게 기부 사실을 알리고 노동조합과 합의했다고 해명했지만 개개인에게 직접 동의를 받진 않았다는 점은 인정했다. 그러면서 직원이 기부한 금액만큼 회사에서 돌려주는 제도를 마련했다고 덧붙였다.재난지원금 '관제 기부'논란은 시작부터 불거졌다. 정부와 여당은 지난달 코로나지원금 전국민 지급을 추진하면서 '자발적 기부'를 처음 언급했다. 여유가 있는 사람은 지원금을 기부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면서 기부액의 15%는 세액공제로 돌려주는 유인책도 마련했다. 기부한 지원금은 고용보험기금에 적립하겠다는 구체적인 사용 계획도 내놨다.그러자 메리츠금융과 조계종이 화답했다. 메리츠는 2700명, 조계종은 5000명이 코로나지원금을 기부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기업과 종교계의 기부 선언에 문재인 대통령은 "연대와 협력에 존경의 마음을 표한다"며 "기부에서 느끼는 보람과 자긍심이 보상"이라며 반가움을 표했다.이튿날 농협이 화답했다. 세곳의 기부자를 합치면 1만2700명이다. 가구원 수에 따라 40만~100만원을 받는 것을 감안하면 50억~127억원이 기부될 것으로 추산된다.종교계와 대기업, 공공기관이 차례로 기부를 선언함에 따라 다른 기업과 기관들 역시 '기부 공개 선언'이 불가피해진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기업들의 '자발적 기부' 행렬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중소기업을 대표하는 중기중앙회의 김기문 회장은 6일 "조금이나마 상황이 나은 기업을 시작으로 기부 운동을 전국적으로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상의가 나서서 기업들에 기부하자고 나서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아 보인다"면서도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하는 게 좋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했다.여기에 공무원들은 고위직을 중심으로 단체 기부 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공공기관장들도 이미 대부분 기부의사를 밝힌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
농협은 임직원 5000명이 긴급재난지원금(코로나지원금)을 기부하기로 했다고 5일 밝혔다. 기부액은 임직원의 가구원 수에 따라 20억~50억원에 이를 것으로 농협은 추산했다. 이성희 농협중앙회장(사진)은 “국가적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는 뜻에서 기부를 결정했다”고 말했다.코로나지원금을 기부하기로 한 것은 주로 임원들이다. 농협 관계자는 “중앙회와 계열사의 임원 및 국장급 간부, 지역농축협 상무급 이상 임원이 기부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농협중앙회 차원에서 아이디어가 나왔고, 임직원에게 의견을 구해 최종적으로 지원금 전액을 자발적으로 기부하기로 했다고 농협은 전했다. 농협 관계자는 “결정 과정에서 특별한 반대 의견은 없었으며 일반 직원들에게 기부를 요구할 계획도 없다”고 덧붙였다.민간기업에서 대규모 기부 의사를 밝힌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앞서 지난달 29일 메리츠금융그룹은 지난해 소득 기준 5000만원 이상인 계열사 임직원 2700여 명이 자발적으로 코로나지원금을 기부키로 했다고 발표했다.농협이 코로나지원금 기부를 결정한 것은 그동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극복을 위한 정부 정책에 동참해 온 것의 연장 선상으로 해석된다. 앞서 농협은 전국 2219개 하나로마트를 통해 공적 마스크 1300만 장을 공급했다. 농협경주교육원을 생활치료센터로, 구례교육원을 전남지역 해외 입국자 임시 검사시설로 개방하는 등 정부 정책과 발을 맞춰 왔다.금융계에선 메리츠금융그룹에 이어 농협까지 ‘자발적 기부’에 나서면서 기업들이 무언의 압박을 느끼고 있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기부는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라며 기부 강요는 없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지만 메리츠금융그룹과 조계종 등의 단체 기부 움직임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언급했다. 농업협동조합법에 따라 법의 규제를 받고, 대표적 규제산업인 금융업을 하고 있는 농협이 이 발언을 민감하게 받아들였을 것이란 분석이다.산업계에선 코로나지원금 기부가 규제 산업을 중심으로 확산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가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더라도 알아서 ‘자발적 기부’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
농협은행은 1958년 설립된 농업은행을 계승하는 상업은행이다. 증권, 보험 등의 금융업 전반을 영위하는 농협금융지주 산하 은행법인이다. 현재는 농협금융지주를 농협중앙회가 지배하지만, 농협과 농협은행의 뿌리는 같다. 그래서 농협은행의 역사는 한국 농업협동조합 운동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1958년 농업은행이 모태농협은 20세기 격동의 한국 역사 속에서 성장했다. 농협 성립은 대한제국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07년 ‘지방금융조합규칙’ 칙령을 계기로 지방금융조합들이 설립되기 시작했다. 한·일 강제 병합을 계기로 지방금융연합회는 조선금융조합연합회로 명칭을 바꿔 명맥을 이어갔다.6·25전쟁 이후 자유당 정권은 농협법 입법화를 추진했다. 1957년 농업협동조합법과 농업은행법이 제정됐고, 1958년 농업은행이 설립됐다. 1961년 박정희 정부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선 농업협동조합과 농업은행을 다시 합병시켰다. 농협중앙회가 만들어져 농협이 은행업과 농업지원 사업을 모두 영위하게 됐다. 1980년대 민주화 시대, 농협에도 직선제를 도입되는 등 변화의 바람이 몰아쳤다.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금융환경이 급변하면서 농민을 지원하는 경제부문과 금융부문의 분리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농협은 오랜 연구 끝에 2012년 농협중앙회 사업을 금융지주와 경제지주로 분리하는 이른바 ‘신경분리’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이때 농협은행도 농협금융지주의 자회사인 별도 법인으로 출범했다. 1961년 농업은행이 조합 내부로 흡수된 뒤 51년 만에 은행 법인이 다시 설립된 것이다. 농협은행은 다른 은행처럼 은행법이 아닌 특별법에 근거해 설립된 특수은행으로 분류된다.국내 자본 100% 민족은행농협은행은 100% 국내 자본으로 설립된 민족은행이다. 1100여 개의 전국 최대 지점망을 갖고 있다. 도·농지역 점포 비중이 다른 은행들에 비해 높다는 것도 자랑거리다. 금융 소외계층을 위한 금융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지방자치단체 금고를 관리하는 ‘나라 살림 전문 은행’으로도 꼽힌다. 창출된 수익은 농업·농촌 지원사업으로 다시 환원하고 농심(農心)의 기본 가치를 국민과 함께 나눠 ‘농가소득 5000만원 시대’를 여는 게 목표다.농협은행은 1984년 은행신용카드 업무를 시작했다. 30여 년간 결제 및 디지털 금융 노하우를 축적했다. 1990년 중앙회 전 점포와 회원조합 간을 연결하는 전국 최대 규모의 온라인 전산망을 구축했다. 농협은행 출범 뒤에는 스마트 앱 개발에 적극 나섰다.2018년 말 내놓은 모바일 앱 NH스마트뱅킹은 ‘은행 간편금융의 집대성’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비밀번호 6자리만으로 모든 금융서비스를 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인공지능(AI)에 기반한 올원상담봇(챗봇), 음성뱅킹 기능을 넣고 패턴인증 등을 도입했다. 2018년 9월 베트남에서도 올원뱅크 서비스를 시작했다. 베트남 현지인을 겨냥해 계좌 잔액 및 거래 내역을 조회할 수 있고, 이체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현지인이 많이 사용하는 전자지갑 서비스도 붙이기로 했다.‘휴먼뱅크’로 도농 간 격차 해소농협은행은 디지털 기술을 바탕으로 도농 간 격차를 해소하는 ‘휴먼뱅크’를 경영 목표로 삼고 있다. 농업인 고객을 대상으로 한 금융 교육 등 사회공헌사업을 적극 진행 중이다.농협은행은 2011년부터 7년 연속으로 은행권에서 사회공헌활동비 지출 규모가 가장 많았다. 매년 1000억원 이상을 사용하고 있다. 농촌지역의 소외계층을 위한 어르신 말벗 서비스와 금융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행복채움금융교실 등을 운영하고 있다.금융회사라는 ‘특기’를 살려 행복채움 금융교실, 1사1교 금융교육, 모두레 어린이 경제·금융교실을 운영한다. 아동·청소년, 노인 등 금융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금융교육을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농협은행은 ‘NH행복채움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농업인과 혁신기업, 소외계층의 자립 및 청년 일자리 창출 사업에 총 42조원 규모의 자금을 투입하는 게 목표다.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