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훈 HMM 사장이 3일 서울 연지동 사옥에서 한 인터뷰에서 해운산업 재건 의지를 밝히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배재훈 HMM 사장이 3일 서울 연지동 사옥에서 한 인터뷰에서 해운산업 재건 의지를 밝히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이제는 전세를 역전시킬 차례입니다.”

배재훈 HMM(옛 현대상선) 사장은 지난달 28일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진수식을 하고 출항한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 ‘알헤시라스호’를 언급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3일 서울 연지동 사옥에서 기자와 만나 “덴마크 머스크 등 대형 해운회사들에 대항할 ‘무기’를 얻은 기쁨보다 한국 해운산업을 재건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더 크다”고 했다.

배 사장은 “글로벌 해운업계는 대형화 전쟁을 치르고 있다”며 “올해가 대한민국 해운 재건의 원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HMM은 숙원이던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손에 넣었다. 배 사장은 “올해 2만40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초대형선 12척, 내년에 1만6000TEU급 8척을 순차적으로 투입한다”며 “초대형선을 투입하면 유럽 항로의 운항 비용을 15% 절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HMM은 내년 말이면 선복량이 87만TEU로 현재 세계 9위에서 8위 선사로 한 계단 도약할 전망이다.

HMM은 지난 4월 세계 3대 해운동맹 중 하나인 ‘디 얼라이언스’에도 합류했다. 배 사장은 “다른 해운사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의사결정에 참여해 시장에 주도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 사장이 올해 사명을 현대상선에서 HMM으로 바꾼 뒤 경영 키워드를 ‘전속항진’으로 내세운 것도 이 같은 자신감의 표현이다.

하지만 HMM은 속도를 올리기도 전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암초와 부딪혔다. 물동량이 급감하면서 컨테이너와 벌크 운임이 급락했다. 배 사장은 “1분기에는 중국 쪽에서 줄어든 물류를 동남아시아 노선 확대로 막았지만 2분기부터는 유럽과 미국의 물동량이 줄어 고민이 많다”며 “위기 상황에서는 대응 속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해 사장실에 비상상황실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19가 진정되면 그동안 밀렸던 물류가 갑자기 폭발할 수 있다”며 “최대한 기민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에 대해서도 “다른 국적선사들도 대부분 재무상태가 좋지 않다. 선박 금융 등을 통한 유동성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배 사장은 해운업계 최고경영자(CEO)로서 특이한 이력을 지녔다. LG반도체에서 13년간 미주 판매 법인장을 지냈고 LG전자에서는 히트상품인 ‘초콜릿폰’ 마케팅을 주도했다. 이후 물류회사인 범한판토스 사장을 거쳐 2019년 3월부터 HMM을 이끌고 있다. 배 사장은 “LG 근무 시절 쌓은 글로벌 경험이 디 얼라이언스 가입 협상에 큰 도움이 됐다”며 “범한판토스 사장을 거치며 화주의 입장도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달 23일 알헤시라스호 명명식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해 해운업 재건을 당부했다. 배 사장은 “문 대통령께서 ‘유사시 해운이 제4군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말씀을 했다”며 “전시 물자와 식량 수송 등을 담당할 수 있기 때문에 국적선사의 부활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