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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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면역항암제와의 최고 파트너 경쟁에 들어갔다. 환자의 면역체계를 정상적으로 작동하게 만들어 암세포를 공격하는 면역항암제는 수많은 사례를 통해 완치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단점은 약효가 나타나는 환자가 적다는 것이다.

암 연구 분야의 최고 권위 학술대회인 미국암연구학회 연례학술대회(AACR 2020)에서 국내 기업들은 면역항암제의 단점을 극복할 의미 있는 성과들을 내놨다.

신라젠, 신장암서 환자 75%에 효과

신라젠은 28일 새벽 4시 AACR을 통해 항암바이러스 후보물질 '펙사벡'과 면역관문억제제 '리브타요(성분명 세미플리맙)'의 신장암 환자 대상 병용 임상 1b상의 중간 결과를 발표했다.

펙사벡과 면역항암제인 리브타요를 신장암 환자에게 함께 쓴 결과 환자의 75%에서 암세포가 줄어드는 반응이 나타났다. 환자 16명 중에서 12명의 종양 크기가 감소했고, 이 중 9명은 종양 크기가 30% 이상 줄었다. 또 한 명은 암세포가 모두 사라지는 완전관해(CR)를 보였다.

3등급 이상의 부작용은 5.7%에 불과했다. 약물 투여 직후의 발열, 일시적 혈압 상승 등의 경미한 부작용이 대부분이었다.
AACR 홈페이지 캡처
AACR 홈페이지 캡처
통상적으로 면역항암제 단독 투여는 약 20% 내외 환자에서 효과를 보인다. 이번 결과는 펙사벡과 면역항암제의 병용 투여가 면역항암제 단독 투여보다 효과가 높을 수 있다는 기대를 일부 입증한 것이다.

신라젠 관계자는 "정맥투여한 환자군의 56%가 30% 이상의 종양 감소를 보이고 75%의 질병관리율을 보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임상실험이 현재 진행 중이므로 추가적으로 완전관해 및 부분관해 환자가 더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미 있는 성과에도 주가는 크게 반응하지 않고 있다. 오전 10시45분 현재 신라젠은 0.76% 오름세다. 전날 6% 급등해 기대감이 일부 반영된 점과 문은상 대표의 검찰 소환 소식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또 다른 AACR 참가기업인 에이치엘비는 확장기 소세포폐암 2차 치료 환자를 대상으로 한 '리보세라닙(중국명 아파티닙)'과 '캄렐리주맙'의 병용치료 임상 2상 결과를 구두 발표했다.

소세포폐암은 연간 새로 진단되는 폐암의 약 15%를 차지한다. 폐에만 국한된 제한기와 폐 이외의 곳에 전이가 있는 확장기로 나뉘는데, 대부분이 확장기 환자다. 기대 수명은 2~4개월, 재발율이 높고 예후가 좋지 않은 암종으로 알려져있다.

이번 리보세라닙과 캄렐리주맙의 병용 임상 2상은 중국 국립암센터·중국의학과학원 종양센터를 비롯한 13개 병원에서 진행됐다. 임상 결과 무진행생존기간 중간값(mPFS) 3.6개월, 생존기간 중간값(mOS) 8.4개월이었다. 객관적반응율(ORR)은 34% 질병통제율(DCR) 69.5%로, 기존 면역항암제에 비해 의미 있는 결과를 나타냈다.

이번 임상시험에서는 치료 부작용으로 인한 사망자가 없었다. 또 백금계 항암제에 민감성이 있는 환자는 물론 저항성이 있는 환자군에서도 높은 반응률을 보여 확장기 소세포폐암 2차 치료제로서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제넥신, 키트루다 파트너로서 가능성 보여줘"

제넥신도 AACR에서 성과를 내놨다. 제넥신은 자궁경부암 환자 치료를 위한 DNA백신 'GX-188E'가 글로벌제약사 MSD의 면역관문억제제 '키트루다'와의 병용효과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키트루다 단독 투여 시 반응률이 낮았던 자궁경부암 환자에게 제넥신의 DNA 백신을 병용했더니 반응률이 높아진 것이다.

제넥신에 따르면 키트루다 단독 투여시 12.2%에 불과했던 객관적 반응률(ORR)이 'GX-188E'가 함께 투여되면 42.3%까지 올라갔다. PD-L1 발현율이 1% 이상인 환자군으로 좁히면 ORR은 50%까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넥신과 MSD는 2016년부터 GX-188E와 키트루다 병용요법의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자궁경부암의 전단계인 자궁경부전암은 인유두종 바이러스(HPV)에 의해 발병한다. 서바릭스와 같은 백신은 예방용이지만 GX-188E는 감염 후 투여가 가능하다. 특히 자궁경부전암은 수술로 병변을 제거하는 것만이 유일한 치료 방법이었다는 점에서 'GX-188E'의 가능성이 업계 안팎의 주목을 끌고 있다.

최석원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임상은 GX-188E가 키트루다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결과"라며 "경쟁 약물인 이노비오의 VGX-3100에 대한 임상 3상(REVEAL 2) 진행 상황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대감이 미리 반영되며 제넥신의 주가는 전날 12% 넘게 뛰었다. 이날 주가는 상승 출발한 후 장중 7만8800원까지 고점을 높였지만 차익실현 매물이 출회되며 하락 전환했다. 현재는 4% 가까이 하락 중이다.

한편 이번 AACR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에 2번(4월 27~28일, 6월 22~24일)의 온라인으로 진행된다. 발표자로 채택된 연구자들이 AACR 공식홈페이지를 통해 동영상으로 임상 결과를 공개한다.

채선희/차은지 한경닷컴 기자 csun0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