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이 연내 추가 이산가족 상봉행사 개최에 공감하고 세부적인 내용은 실무회담 등을 통해 협의하기로 했다. 박경서 회장은 25일 금강산에서 열린 이산가족 2회차 상봉 행사 단체상봉이 끝난 뒤 이산가족면회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밝혔다.박 회장은 "박용일 북측 단장과 (이번) 21차 행사와 같은 방식의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올해 안에 한 번 더 하기로 협의했다. 구체적인 날짜 등은 국장급 실무회담에서 논의하기로 했다"고 전했다.그는 그러면서 "규모는 대강 이번과 비슷하게 한다. 제 생각에는 연내에 한다고 했지만 날씨 등을 고려할 때 잘 되면 10월 말께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이산가족 대부분이 고령인 점을 고려해 추위가 오기 전에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추가로 여는 방향으로 남북이 공감했다는 것으로 여겨진다.박 회장은 남북이 연내 추가 이산가족 상봉 행사 개최의 필요성에 상당히 의견 접근을 이룬 상태라고 강조했다.그는 "한해에 이산가족 3~4000명이 세상을 떠난다. 아마 앞으로 7~10년이면 이산가족 상봉이 이런 형태로는 어렵다. 인도주의에 입각한 협력사업을 추진하는 사람으로서 이산가족 상봉에 가장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고 밝혔다.그는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를 지금까지보다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는데 우선 초점을 맞추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아울러 박 회장은 박용일 단장과 생사확인과 정례상봉, 화상상봉, 고향방문, 성묘 등 이산가족 문제 전반에 대해 폭넓은 의견을 교환했다고 설명했다.특히 그는 "박 단장과 제반 여건이 허락되면 고향방문단(교환)을 가급적 빠른 시일 내 하자는데 긍정적 협의를 이뤘다"고 전했다.한경닷컴 뉴스룸 open@hankyung.com
남북 이산가족들은 26일 작별상봉에서 꿈에서나 그리던 가족·친척들과 또다시 기약없이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남측 상봉단 81가족 324명은 이날 작별상봉과 공동점심을 마지막으로 2박3일 간의 일정을 모두 마친 뒤 오후 1시 20분께 버스를 타고 금강산을 출발했다.이들은 작별상봉과 공동점심으로 이어지는 3시간 동안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시간을 함께하며 이별을 준비했다.작별상봉장은 곳곳에서 기약 없는 이별을 안타까워 하면서 흘린 울음으로 눈물바다가 됐다.윤숙재(65) 씨는 북의 삼촌에게 "만나서 감사할 일"이라고 말하면서도 "오늘 만나서 헤어지면 기약이 없는데…"라며 끝내 눈물을 흘렸다.북측 누나 최성순(85) 씨가 눈물을 흘리며 남측 동생 최성택(82) 씨에게 "건강하게 있어야 돼"라고 말을 건네자 동생도 애써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주소와 가계도를 주고받으며 언제일지 모를 다시 만날 날을 약속하는 이들도 많았고 서로를 기억하고자 함께 사진을 찍거나 손편지를 주고받는 이들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이산가족들은 첫날 단체상봉과 환영 만찬, 이튿날 개별상봉과 객실중식, 단체상봉, 마지막 날 작별상봉 및 공동중식 순서로 65년만에 만난 가족들과 총 12시간 상봉했다.한경닷컴 뉴스룸 open@hankyung.com
北형 "된다", 南동생 "왕래는 가능할 것"…"안되면 하늘서 만나자"개별상봉·중식 시간에 北오빠 흉터 확인하고, 南사촌언니에 편지도"5년 내 통일되나 내기하자."25일 금강산호텔에서 3시간 동안 진행된 2차 상봉 행사 둘째 날 개별상봉 및 객실 중식 시간에 남측 동생 장구봉(82) 씨와 북측 형 장운봉(84) 씨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내기를 했다.구봉 씨는 "살 때까지 통일되면 다행이고, 죽으면 하늘나라에서 만나자고 했고, 형도 그러자고 했다"며 "그 양반(형)이 84세인데, 5년 내 통일되겠느냐, 나하고 내기도 했다"고 말했다.북측 형 운봉 씨는 "된다"에, 남측 동생 구봉 씨는 "되겠느냐, 통일은 안 되더라도 왕래는 가능할 거다"에 내기를 걸었다.이날 오후 단체상봉을 끝으로 행사 둘째 날 일정을 마친 남북 이산가족들은 이제 하루 뒤면 다가올 또 한 번의 기약 없는 이별준비에 들어갔다.구봉·운봉 형제는 단체상봉이 끝나고 헤어지는 순간 서로를 꼭 안으며 눈물을 쏟아냈다.구봉씨는 오전 개별상봉에서 형과 내기를 하면서 했던 말이 내내 마음에 걸렸는지 오후에 진행된 단체상봉에서는 "통일될 때까지 꼭 살아있기로 약속했다.속초에 계속 남아 있었는데, (형을) 고향에 한 번 모시고 가면 소원이 없겠다"고 간절함을 드러냈다.또 남측 여동생 한춘자(79)씨는 이날 개별상봉과 공동중식 자리에서 북측 오빠 한석구(84)씨의 발등에 난 흉터를 확인하고는 "발등의 상처를 봐도 오빠 맞더라"고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북측 오빠 석구 씨는 발등에 흉터가 아직도 있느냐는 여동생의 질문에 "네가 그걸 어떻게 기억하느냐"고 놀라워했다.석구 씨의 북측 동반 가족인 아들 정길(54)씨는 전날 아버지가 남동생이 전쟁 직후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상심했다면서 "아버지가 어젯밤 밤새 우셨다.아버지가 이렇게 우시는 건 처음 봤다"고 전했다.북측의 리숙희(90) 씨는 이날 남측의 동생들을 만난 개별상봉 자리에서 몸이 불편해 이번 행사에 참여하지 못한 사촌 언니에게 "언니야. 반세기 동안 혈육 소식을 몰라 하다가 / 북남 수뇌 배려로 이렇게 상봉이 마련돼/ 다시 만나자, 이것이 꿈이 아닌가"라는 짤막한 편지를 써 내려가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