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론의 화가, 겸재 정선

▲ 조기의 한국사 = 정명섭 지음.
한국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생선 가운데 하나인 조기의 역사와 문화, 산업에서 생태와 생물학적 특징에 이르기까지 조기의 모든 것을 정리했다.

인문학과 소설의 경계를 넘나들며 왕성한 저작 활동을 하는 저자는 조기가 '자린고비 이야기', 등 수많은 구전설화와 민간 신앙의 소재가 되고 역사적 문헌에도 다른 물고기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자주 언급된 데 흥미를 느껴 이 생선에 관해 깊이 알아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고 한다.

저자는 조선왕조실록 등 기록을 바탕으로 조선 시대 '국영 어부'였던 포작간과 생선간, 조기잡이 어민들의 일생, 어살·주벅·주낙·그물·꽁댕이배와 같은 어구·어법 등 조기를 둘러싼 '극미세사'를 펼친다.

또 임경업 장군과 개양할미, 중국에서 건너온 신인 전횡이 조기잡이 어부들 수호신이 된 배경을 살펴본다.

말린 조기를 '굴비'라고 처음 이름 붙인 것은 고려 무신정권 때 권신 이자겸이라고 한다.

전남 영광군으로 유배된 이자겸이 바닷가에 줄줄이 걸어놓은 말린 생선을 먹어보니 맛이 있어서 인종에게 바치면서 '정주굴비(靜州屈非)'라는 네 글자를 써서 보냈다.

정주는 영광의 옛 이름이고 굴비는 '굴하지 않는다'는 뜻이니 '비록 선물을 바치기는 하지만 비굴하게 굽히지 않겠다'는 의미다.

저자는 조기와 관련해 자주 거론되는 '파시(波市)'가 일제에 의해 상당 부분 왜곡됐다면서 연평도 파시, 위도 파시, 흑산도 파시 등 유명한 파시들 기원과 발전 과정을 하나하나 추적한다.

파시에 '흥청망청', '타락', '유흥'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진 것은 일본인 어부들이 한국 해안에서 조업하면서 형성된 임시촌락이 성매매와 유흥의 온상이 됐기 때문이다.

일본인 연구자들이 이를 파시의 본모습인 양 기술했지만, 실은 한국 전통의 파시와는 거리가 먼 풍경이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푸른들. 308쪽. 1만5천원.
[신간] 조기의 한국사·재난의 세계사
▲ 재난의 세계사 = 루시 존스 지음, 권예리 옮김.
베수비오산 분화로 인한 폼페이 멸망부터 2011년 일본 도호쿠(東北) 대지진에 이르기까지 역사 속 재난 11개를 소개한다.

샌앤드리어스단층 지진을 중심으로 미국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자연재해와 대비책도 별도 장으로 다룬다.

각 자연재해의 발생 원인과 진행 과정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재해의 정치적, 사회적 의미도 풀이한다.

1923년 일본 간토(關東) 대지진을 다룬 장에서는 재난 와중에 많은 재일 한국인이 잘못된 소문에 흥분한 일본인 자경단원들과 군인들에게 희생됐다면서 일본 정부도 이를 부추겼다고 설명한다.

폼페이와 같은 화산 인근 지역은 비옥하면서도 배수가 잘되는 화산토 성질 덕분에 농사를 짓기 좋은 곳이다.

문명의 요람인 강 유역은 홍수의 위험이 상존한다.

또한 홍수, 지진, 화산과 같은 자연재해는 지구의 자연스러운 변동의 일부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면 인간은 자연재해와 더불어 사는 숙명을 안고 태어난 것인지 모른다.

지질학 박사로 미국지질조사국에서 다양한 자연재해에 대비한 시나리오를 만들고 대비책을 세우는 일을 한 저자는 자연재해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를 인간이 전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자연재해에 관한 정확한 과학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널리 알려야만 미래의 자연재해에 효과적으로 대비하고 피해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눌와. 356쪽. 1만7천500원.
[신간] 조기의 한국사·재난의 세계사
▲ 노론의 화가, 겸재 정선 = 이성현 지음.
현역 화가이자 미술학 박사인 저자는 지나치게 문헌 연구 중심으로 경도된 미술 이론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작품 중심 연구 풍토를 환기하고자 화가의 눈으로 동양의 서화 작품을 분석하는 작업에 매진했다.

이 책은 '추사코드', '추사난화' 등 추사의 작품 분석서 두 권에 이은 세 번째 결과물이다
주류 미술사학계에서는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문예인으로 겸재를 내세우면서 그로부터 서양의 르네상스와 방불한 '진경시대'가 열렸다고 찬미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 같은 평가에 대해 르네상스 의미를 표피적으로 차용한 것일 뿐만 아니라 '진경'과 '산수화'의 근본적인 몰이해, 나아가 겸재가 실제로 놓여 있던 위치와 그가 표현해내고자 했던 작품의 본래 의도를 완전히 사상해버린 겉핥기 감상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겸재가 대표적 노론 강경파 장동 김씨 집안의 삼연 김창흡의 금강산 여행길에 동행한 이래 평생토록 장동 김씨들과 함께하며 그들의 전폭적 후원 아래 화업을 이어간 데 주목한다.

대과는커녕 초시조차 치른 적 없는 겸재가 당상관까지 오른 것은 장동에 세거(世居)한 안동 김씨와의 관계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고 이들의 정치적 입장이 그의 그림에 반영되는 것도 당연하다.

저자가 보기에 예술가가 정치적 견해를 피력하는 것은 사회적 책무이기도 하니 이를 예술의 순수성을 해치는 것인 양 쉬쉬할 일도 아니다.

이런 관점을 바탕으로 저자는 겸재의 '인왕제색(仁王霽色)'도를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연관 지어 해석한다.

이 그림이 그려진 1751년 5월은 영조가 사도세자의 첫아들을 서둘려 세손으로 책봉한 직후였다.

이는 노론 인사들 사이에서 사도세자를 건너뛰어 손자에게 직접 왕위를 넘겨주려는 영조의 의중으로 읽혔고 겸재는 이를 여러 은유적 정치를 동원한 그림에 담았다고 분석한다.

들녘.440쪽. 3만5천원.
[신간] 조기의 한국사·재난의 세계사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