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증권이 올 1분기 어닝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주가가 곤두박질치면서 증권업계 전체가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 것이란 어두운 전망 속에서 나온 ‘깜짝 실적’이다. 위기에 앞서 수익구조를 다변화한 결과라는 평가다.

위기론 비껴간 현대차증권

최병철 사장
최병철 사장
최근 미래에셋대우는 ‘위기가 뿌린 거름’이란 보고서를 내놨다. 코로나19 사태로 올 1분기 증권업 전체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81%가량 추락할 것이란 전망이 담겼다.

현대차증권이 23일 발표한 실적은 이런 전망을 무색하게 했다. 1분기 기준으로 사상 최대 실적이었다. 매출 3166억원, 영업이익 331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55.7%, 영업이익은 17.7% 늘었다. 경쟁사에서도 “리스크 관리를 잘했다” “일부 대형사 실적을 넘어설 것”이란 평가가 나왔다.

코로나19 충격 피한 포트폴리오 다각화

고르게 분산된 수익구조가 위기에 힘을 발휘했다. ‘코로나19 폭락장’에 개인투자자가 급증하면서 위탁판매 등 리테일 부문 이익이 급증했다. 리테일 전체 순영업수익(판매관리비 차감 전 영업이익)은 작년 1분기 125억원에서 162억원으로 약 30% 늘었다. 이 중 위탁매매 부문은 62억원에서 108억원으로 74.2% 급증했다. 회사 관계자는 “다른 증권사는 지점을 줄였지만 전국 15개 지점과 6개 영업소를 유지하면서 비대면 거래를 활성화하는 전략을 편 것이 주효했다”고 설명했다. 개인형 퇴직연금(IRP)의 성장세도 한몫했다. 베이비부머들의 은퇴 시기와 맞물려 1분기에만 적립금이 1273억원 늘며 7000억원을 돌파했다.

증권사들의 1분기 실적 악화 원인 중 하나인 파생결합증권(DLS) 비중을 낮춰놓은 것은 주가 급락의 피해를 줄여줬다.

실물경기가 침체되면서 얼어붙은 투자은행(IB)부문 실적도 포트폴리오 다각화로 선방했다. 현대차증권은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시장에서 물건이 줄어들자 물류센터와 신재생에너지 인프라 분야로 눈을 돌렸다. 회사 관계자는 “국내 e커머스 시장이 연간 20%를 웃도는 성장세를 보이면서 수도권을 중심으로 대형 물류 시설 수요가 꾸준하게 발생한다고 보고 투자했다”고 말했다. 이 덕에 “IB부문 1분기 순영업수익은 약 2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6% 증가하는 등 양호한 실적을 냈다”고 했다.

‘재무통 최병철’ 유동성 확보戰

최병철 사장
최병철 사장
코로나19 사태가 촉발하자 선제적으로 현금 확보에 나선 점도 큰 역할을 했다. 현대차그룹 내 대표적 ‘재무통’인 최병철 사장은 지난 1월 “코로나19가 금융시장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재경 부문 담당자에게 “불확실성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최 사장은 현대모비스와 현대차 재경본부장(CFO)을 지냈다.

선제적인 조치 덕분에 현대차증권은 전자단기사채 발행을 통한 4000억원 규모의 대규모 추가 유동성을 포함해 약 4459억원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을 비축했다. 재무건전성 지표 가운데 하나인 유동성 갭(유동성자산-유동성부채, 잔존 만기 3개월 이내)은 약 1조7554억원으로 작년 말 대비 38.8%가량 늘었다. 최 사장은 “상품 및 서비스 개선을 통해 고객 신뢰도를 높이는 데 집중하는 한편 수익원 다각화와 리스크 관리로 시장 변동성에 대한 대응 능력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재원 기자 wonderf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