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묵 지식사회부 기자
코로나19와의 전투 선봉에 섰던 권 시장이 지난 3월 26일 쓰러졌다. 시청에서 한두 시간 쪽잠을 자며 코로나19와의 전투를 지휘한 지 35일째 되던 날이었다. 2월 29일 하루 확진자가 741명이나 늘어난 충격과 공포, 질병관리본부마저 확진자의 번호 부여를 따라가지 못하던 통제 불능 상태에서도 그는 끄떡 않고 혼신의 노력을 다해 상황을 수습해 나갔다. 그가 쓰러진 건 확진자 수가 20~30명대로 줄어든 지 2주가 지나서였다. 링거를 맞아가며 버티자 주위에서 제발 조금만 쉬라고 충고했지만 확진환자가 한 자릿수로 내려가기 전까지는 죽어도 집에 가지 않겠다며 버텼다. 150에 90이던 혈압이 병원 이송 때 80에 40으로 떨어졌다.
그가 쓰러진 날 밤 그를 아는 한 기관장이 장문의 카톡을 보내왔다. “일이 닥치면 그는 모든 것을 잊고 일에만 집중합니다. 정치적 계산 같은 건 하지 않습니다. 철저히 파고들어 빈틈없이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스스로를 가혹하게 대합니다. 그래서 어떨 때는 답답합니다. 요령 피우고 눈가림하는 것은 자신의 운명을 거스르는 것이고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최악을 낳는다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정치인에게는 약점이 될 수 있지만 진정성과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합니다. 혼신을 다해 상황을 통제한 뒤 쓰러진 겁니다.”
환자가 폭증하던 2월 말. 의학 전문가들 사이에서 집단면역에 대한 논의가 나왔다. 백신과 치료제가 없는 상황에서 집단면역론은 더 많은 사람을 빨리 감염시켜야 사태가 종식된다는 논리였다. ‘치명률도 그렇게 높지 않은데 웬 호들갑이냐’는 반응도 있었다. 스웨덴과 초기 영국이 그랬다. 미국과 유럽의 대량 사망 사태가 발생하기 전이었다. 의료계와의 깊은 대화를 통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해 철저히 공부한 권 시장은 처음부터 이 논리에 반대했다. 그는 “집단면역을 위해 먼저 아파도 되는 생명이 있을 수 없다”며 “모두 똑같이 소중한 시민”이라고 강조했다.
대구에서 현장을 지켜본 많은 의료 전문가는 이런 극한의 호소와 절규, 한 명의 환자라도 살리기 위해 분투한 권 시장과 의료진의 헌신이 대구와 뉴욕·베르가모의 운명을 갈랐다고 입을 모은다. 피로가 누적된 탓에 브리핑 과정에서 한 말실수 때문에 많은 비난도 들었다. 수많은 유언비어와도 싸워야 했다. 그는 “바이러스도 무섭지만 더 무서운 건 나쁜 정치”라고 했다. 그는 “오로지 방역적 관점에서만 생각했다”고 말했다.
대구시민들은 시원한 ‘사이다 발언’을 하는 시장을 갖진 못했다. 하지만 시민 한 명의 생명을 부모와 자식처럼 소중하게 생각하고 끝까지 책임지기 위해 오해와 비난도 감수하는 시장을 가졌다. 덕분에 대구는 뉴욕, 베르가모와 달리 많은 희생을 피하고 일상으로의 복귀를 조심스레 기대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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