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직의 신성장론] 지식소비자 아닌 지식생산자로 키워야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재임 시절 한국의 경제성장을 뒷받침한 교육 제도에 찬사를 보낸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오바마가 경탄한 건 과거 고도성장기 한국의 교육이었다. 필자의 연구에 따르면 모방형 인적자본을 축적해 성장하던 고도성장기의 한국은 교육 지출의 인적자본 증대 효과가 미국의 두 배 이상이 될 만큼 효율적인 교육 시스템을 가졌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모방형 인적자본의 가치가 하락하면서 한국 교육의 효율성도 떨어져 학교에서 배운 지식의 절반 이상이 사회에선 쓸모없는 지식으로 평가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일부 뜻 있는 선생님들이 노력하고 있지만 한국은 지금도 시대착오적인 모방형 교육을 답습하고 있다.

잃어버린 성장 동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인적자본의 생산공장인 학교가 천동설을 지동설로 바꾼 것 같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해야 한다. 특히 학교가 창조형 인재의 생산공급 기지로 거듭나도록 기존 ‘모방형 수업’에서 학생 스스로 생각하고 만들어내는 능력을 기르는 ‘창조형 수업’으로 수업 방식을 혁신해야 한다.

필자가 지난 10여 년간 학생들을 ‘지식의 소비자’가 아니라 ‘지식의 생산자’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개발한 ‘창조형 수업 모델’이 예시가 될 수 있다. 이 창조형 수업은 정답이 없는 ‘열린 문제’를 과제로 던져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예를 들면 “1년 내내 섭씨 30도가 넘는 ‘불나라’가 있다. 이 나라에서 얼음을 화폐로 도입하는 효율적인 방법은?”과 같은 과제를 제시한다. 학생들은 상상력을 자극하도록 고안된 이런 열린 질문에 대해 경제학적 지식에 근거해 깊이 생각하고 탐색하며 자신만의 창의적인 답안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면서 ‘아이디어의 창조자’가 되는 훈련을 하게 된다.

수업 시간에 학생들은 그동안 구체화한 자신만의 아이디어 혹은 이론을 발표하는 세미나식 수업을 통해 ‘아이디어의 판매자’가 돼 본다. 그리고 학생의 발표에 대해 서로 질문하는 토론식 수업으로 발전시켜 ‘아이디어 시장’을 체험하게 한다. 교수는 발표나 토론에서도 ‘정답’이 없음을 강조하고, 독특한 아이디어를 적극 부각시켜 ‘창의적 지식’의 가치를 체감하게 한다. 기존 지식은 교수와의 문답식 방법을 통해 핵심적인 것을 중심으로 익히게 함으로써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낼 수 있는 밑바탕이 되도록 한다.

창조형 수업에서 창의성 평가는 가능할까? 창조형 수업은 시험을 볼 때도 절반은 정답이 없는 ‘열린 문제’를 출제하고, 창의성과 논리성을 기준으로 평가한다. 교수, 조교, 학생들의 공동평가를 통해 철학자 에드문트 후설이 제시한 상호주관성(intersubjectivity)을 확보하는 방법을 채택하면 창의성도 상당히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렇게 진행한 창조형 수업은 종강 후 스스로 “창의성이 좋아졌다”고 평가하는 학생이 늘 90%를 넘을 정도로 창의성을 높이는 효과가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열린문제, 탐색(리서치)·토론식 수업 및 창의성의 상호주관적 평가를 핵심요소로 하는 이 ‘창조형 수업 모델’은 초·중·고·대학 상관없이 각급 학교에 적용할 수 있다.

대학입시도 기존 모방형 인적자본을 측정하는 점수 위주가 아니라 창의력을 위주로 선발하는 ‘창조형 대학입시제도’로 전환해야 한다. 이를 위해 ‘열린 문제’를 제시하고 상호주관적 평가를 하는 방법 또는 ‘학생 아이디어 등록제’에 등록된 아이디어를 이용한 평가 방법 등 독창적 사고력을 측정하는 다양한 방법을 도입해야 한다. 상호주관적 평가에 필요한 평가인력은 정부가 교육예산 73조원 가운데 1000분의 1만 지출해도 충분히 공급할 수 있다. 단, ‘창조형 대학입시제도’도 부모의 경제력이 사교육 등을 통해 입시에 과도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차단하는 방안에 의해 보완해야 한다. 특히 입시 피라미드의 정점에 있는 서울대부터 입시의 공정경쟁을 강화하면서도 학생 창의력에 입각해 선발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학교부터 학생을 지식의 소비자·이용자가 아니라 지식의 생산자로 만드는 장소로 180도 변신해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