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음보단 무대 연주가 더 편해"…"일상의 소중함 새삼 느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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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달 8일 발매되는 신보 '방랑자'(The Wanderer)를 들고서다.
'방랑'은 19세기 유행한 낭만주의의 키워드다.
낭만주의 효시인 윌리엄 워즈워스를 비롯해 셸리, 바이런 등 낭만주의 시인들은 모두 방랑을 예찬했다.
그들은 실제 유럽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시를 썼다.
문학에서 시작한 낭만주의 영향은 음악으로도 이어졌다.
슈베르트, 리스트는 그런 당대의 문화에 발을 깊이 들여놓은 작곡가들이다.
'방랑' 정신은 그들 작품 곳곳에 새겨져 있다.
그리고 거주하는 베를린 집에 "연간 4개월밖에 머물지 않는" 조성진의 삶도 19세기 낭만주의자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슈베르트는 물론 리스트도 낭만 시대의 작곡가였고, 그들은 이곳저곳 여행을 많이 돌아다녔습니다.
보통 피아니스트나 뮤지션이 방랑까지는 아니지만, 여행을 많이 하잖아요? 그런 점에서 이 시대 뮤지션과 그들이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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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이 집(home) 같았는데, 방학 때 다시 한국에 오면 부모님 집이 다시 집같이 느껴졌다.
수많은 연주회 일정으로 세계 곳곳을 누비는 지금은 호텔이 집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항상 돌아다니는 게 제 직업이니까요.
연주하는 것 말이죠. 하지만 베를린에 돌아오면 집인 것 같기도 하고 호텔에 오면 또 편해서 집인 거 같기도 하고. 그래서 '제가 있는 곳이 집이구나'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죠."
내달 발매되는 '방랑자'는 한 곳에 뿌리박지 못한 채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는 이런 그의 삶이 담긴 작품이다.
"어떤 아티스트들은 콘셉트에 맞춰서 레파토리 프로그램을 짜는 걸 참 잘하거든요.
근데 저는 한 번도 그런 걸 해본 적이 없어서 (이번 앨범을 녹음할 때는) 고심 끝에 제가 슈베르트 방랑자 환상곡을 무조건 넣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거기에 맞춰서 다른 곡들을 정했어요.
"
앨범에는 세 곡이 수록됐다.
우울하지만 화려한 기교가 돋보이는 슈베르트 '방랑자 환상곡'을 비롯해 기교와 파워가 동시에 필요한 리스트 '피아노 소나타'와 베르크 '피아노 소나타'다.
"세 곡은 소나타 형식의 곡인데 악장마다 연결되어 있어 한 악장 소나타처럼 들린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베르크 소나타는 한 악장의 곡이긴 하지만 몇 개 주제를 가지고 한 곡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다른 두 곡과 공통점이 있죠."
초절기교로 유명한 리스트 곡은 물론이고, '방랑자 환상곡'도 슈베르트 작품 중 테크닉적으로 가장 어려운 곡이다.
조성진은 난도 높은 곡을 연주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테크닉이 어려운 걸 감추는 게 더 어렵다"고 했다.
"사람들이 곡을 들으면서 이 곡이 어렵다고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냥 이 곡이 아름답구나, 드라마틱하구나, 서정적이구나 느끼게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제가 연주한 슈베르트 곡 중에서 이 곡이 가장 기술적으로 어려운 곡이라는 점은 사실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런 어려움을 표 안 내면서 음악이 먼저 들리게 하려면 일단 테크닉적으로 우선 편해야 하는 거 같아요.
"
세 곡 가운데는 리스트 소나타가 가장 연주하기 까다로웠다고 설명했다.
"길고, 스케일이 커 어려웠던 곡인 것 같아요.
하지만 리스트 같은 경우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쳤고, 처음 무대에 오른 게 2011년이었어요.
그때부터 3년에 한 번씩은 무대에 올랐어요.
그럴 때마다 저의 해석이 바뀌는 것도 느낄 수 있었고 저의 음악적인 관점, 시각도 변하는 걸 느낄 수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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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이 전 세계를 강타한 이후 쉼 없이 움직이던 그의 시계는 뚝 멈춰 섰다.
최근에 그는 갑자기 늘어난 시간을 "음악과 영화를 보며" 소비하고 있다고 했다.
"이번 사태 때문에 음악의 중요성을 더 느끼게 됐어요.
그리고 일상 생활하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도 알게 됐죠. 레스토랑 가서 평범하게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게 얼마나 소중했는지 많이 느꼈어요.
(집에서는) 특정 곡을 많이 듣고 있지는 않고 연주자 위주로 듣고 있어요.
에밀 길레스와 브론프만을 듣고 있습니다.
특히 브론프만은 작년 말에 처음 만나 인간적으로도 좋아하게 됐어요.
"
코로나 19 탓에 연주자로서의 '방랑 시간'이 줄어들었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여러 음반을 들으며 감탄할 시간도 있고, 피아노 연습에 매진할 시간도 넉넉하다.
다만 연습은 하루 4시간, 최대 5시간을 넘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했다.
"피아노는 5시간을 하면 정말 녹초가 돼요.
손, 어깨에도 안 좋은 거 같고. 꾸준히 4시간은 하려고 해요.
할 곡이 많으면 넘어갈 때도 있지만 최대한 4시간 안에 효과적으로 하려고 하고. 그리고 원래는 추울 때 장갑 끼는 버릇이 없었는데, 이제는 장갑을 끼려고 해요.
그리고 스트레칭 정도요.
건강은…원래도 많이 자는 편이어서 잠을 많이 자면서 건강을 챙기는 거 같아요.
(웃음) 가끔 외로움을 느끼지만 원래 외동아들이고 어렸을 때부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서 (혼자 있는걸) 힘들거나 외롭다고 느끼진 않습니다.
오히려 사람들 많이 만나니까 연주를 하러 다니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거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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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악단을 지휘하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을까.
그는 "유럽에서 제안이 들어와서 만약 성사된다면 2~3년 안에 해볼 수 있을 거 같다"고 했다.
다만 "지휘자로서는 아직 자신이 없다"며 "할 수 있는 레파토리(피아노 콘체르토)는 할 가능성이 조금은 있을 거 같다"고 덧붙였다.
그는 다음 앨범은 "쇼팽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앨범 작업을 많이 하지만 현장 연주가 더 체질에 맞는다고도 했다.
이번 '방랑자' 앨범도 관객 앞에서 친 곡을 베이스로 해서 작업을 진행했다.
"레코딩에서는 두 부류로 아티스트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우선 글렌 굴드나 올라프손 같은 레코딩 아티스트가 있죠. 제가 최근에 올라프손이라는 피아니스트의 바흐 앨범을 들었는데 정말 굉장한 앨범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 레코딩 아티스트는 저와는 다르게 관객이 없어도 완벽한 음악, 앨범을 만들 수 있는 거 같아요.
하지만 저는 솔직히 말하면 관객이 있는 게 조금 더 편한 것 같아요.
어느 정도의 긴장감이 음악을 더 잘 만들어주는 거 같고. 저는 콘서트 연주회 하듯이 하는 게 가장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거 같았습니다.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