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후즈 논픽션 '소년은 멈추지 않는다' 출간

뭔가 비밀스럽고 슬픈 과거를 지녔지만, 불굴의 의지를 가진 코치. 그가 구제 불능의 문제아들을 그러모아 만든 팀. 그들이 온갖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노력한 끝에 꿈을 이룬다는 것은 스포츠 만화나 드라마의 전형적 내러티브다.

감동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기에 뻔한 이야기인 줄 알면서도 빠져드는 것일까.

이런 이야기들이 단지 허구로 치부되지 않는 것은 종종 현실 세계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미국 논픽션 작가 필립 후즈가 쓴 '소년은 멈추지 않는다'(원제 Attucks·돌베개)도 이제는 전설이 된 감동 스토리를 재구성한 책이다.

분명한 스포츠 영웅담이지만, 당시 시대상에 대한 고발이기도 하고 소년들의 성장기이기도 하다.

무대는 '북부의 남부'로 불렸던 인디애나폴리스의 크리스퍼스 애틱스 고등학교. 학생들은 대부분 일자리를 찾아 남부에서 이주해온 부모를 따라온 흑인 아이들이었다.

인디애나주는 북부라고는 하지만, 20세기 초만 해도 백인 남성 인구의 3분의 1인 25만명이 인종차별주의 테러단체 KKK의 단원이었을 정도로 흑인에 대한 편견이 심한 곳이었다.

스포츠 세계에서도 인종차별은 당연한 일로 여겨져 흑인들은 아예 참가 자체가 봉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고교 농구도 예외가 아니었다.

인디애나주 고등학교 농구 토너먼트는 흑인 공동체가 오랫동안 지치지 않고 항의한 끝에 1941년에야 비로소 흑인 학교에도 참가 기회가 주어진 터였다.

흙바닥에서 농구하던 흑인 소년들 전설이 되다
크리스퍼스 애틱스 고등학교는 1942년부터 대회에 참가했으나 번번이 1차전에서 탈락했다.

1950년 제대로 된 공도 골대도 없이 흙바닥에서 농구에 열중하던 아이들을 모아 농구팀을 만들겠다고 나선 이는 신출내기 수학 교사 레이 크로였다.

흑인이지만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 대학 시절 농구 선수로도 활약했던 그였지만 흑인인 그를 임용하겠다는 학교는 없었다.

천신만고 끝에 공립학교를 거쳐 흑인 고등학교였던 애틱스에 부임해 왔다.

레이 코치의 앞을 가로막은 난관은 한둘이 아니었다.

일단 아이들이 굶주리지 않도록 해주고 그들이 학교를 포기하지 않도록 격려하며 낙제하지 않도록 성적을 관리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

대회 참가가 허용됐다고는 하지만 공정한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 애틱스 팀이 손을 모으고 외치는 구호가 "10점은 심판들의 몫, 나머지가 우리 것"일 정도였다.

그러나 크로 코치가 취임한 지 불과 1년만인 1951년 애틱스 팀은 인디애나주 고교 농구 토너먼트 4강에 올랐고 1955년과 1956년에는 2년 연속 챔피언에 오른다.

1960년 로마 올림픽에 참가해 미국팀의 금메달 획득에 결정적으로 기여했고 그 후 미국프로농구의 스타이자 가장 위대한 흑인 스포츠인 가운데 하나가 된 오스카 로버트슨이 위업의 주역이었다.

애틱스의 우승은 코치와 선수들의 영광에 그치지 않았다.

인디애나주의 주도이면서도 고교 농구 우승팀을 배출하지 못했던 인디애나폴리스의 시민들은 흑인, 백인 할 것 없이 애틱스의 선전에 열광했다.

많은 이가 한마음으로 내 고장 팀을 응원하면서 높아만 보였던 인종 간 장벽이 허물어져 가는 것을 느꼈다.

당시 사실상 흑백으로 분리됐던 이 도시의 고등학교들은 애틱스의 연속 우승 이후 흑인 농구 선수 확보 경쟁이 벌어지면서 자연스럽게 흑백 통합학교로 전환했다.

더 높이 올라갈 곳이 없었던 레이 코치는 1958년 은퇴했고 그와 고락을 같이했던 제자들 가운데는 오스카 로버트슨처럼 스타가 된 경우도 있었지만,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간 사람들도 많았다.

레이 코치와 흑인 학생들의 위대한 도전은 영원한 전설로 남게 됐지만, 그의 가르침은 꿈을 갖고 오늘의 현실과 싸우는 젊은이들에게 여운을 안긴다.

"올바름은 항상 이긴다.

두려움 없이 항상 올바른 일을 하라. 모든 사람을 존중하되 누구 앞에서도 뒤로 물러서지 마라."
김충선 옮김. 336쪽. 1만4천원.
흙바닥에서 농구하던 흑인 소년들 전설이 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