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논설실] "더 큰 위기가 온다"는 월가의 스승들
작년 말부터 올해 1월 말까지 대거 상승 랠리를 펼쳤던 글로벌 증시가 ‘코로나19 쇼크’에 발목을 잡혀 휘청대고 있습니다. 작년 10월부터 일찌감치 오름세를 타기 시작해 주요국 중 가장 빨리 달리던 미국 증시마저 하락세가 심상치 않아 전 세계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2월 들어 지난 26일(각국 현지시간 기준)까지 주요국 증시 등락률은 한국(코스피지수‧-1.99%), 미국(다우‧-4.59%), 일본(닛케이225‧-3.35%) 등입니다.

이달 초까지만 하더라도 글로벌 금융투자 업계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미칠 악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습니다. 2003년 중증호흡기증후군(사스),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때처럼 얼마간 조정을 받다가 급격히 회복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습니다. 이스라엘 출신의 세계적 투자자 오하드 토포 TCK인베스트먼트 회장은 최근 방한해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하면서 “코로나19로 인한 주가하락은 저가매수의 기회”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분위기가 많이 바뀌긴 했지만, 아직도 ‘코로나19발(發) 증시조정이 오래갈 것 같지 않다’고 보는 해외 전문가들이 많습니다. 피터 오펜하이머 골드만삭스 전략가는 지난 19일(현지시간) 고객들에게 보낸 안내문에서 “코로나19가 기업실적에 미칠 영향이 최근 주가에 과소평가돼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증시가 지속적인 베어마켓에 진입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며 “곧 반등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하지만 미국 월가에서도 ‘구루(스승)’ 대접을 받는 고수들의 의견은 조금 다릅니다. 이들은 증시에 비이성적 투자가 만연해 ‘거품’이 끼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거품이 꺼지면 코로나19보다 더 큰 위기가 증시에 닥칠 것’이라는 게 이들의 견해입니다. ‘코로나19가 최근 증시 조정의 계기가 된 것은 맞지만, 이는 부차적이고 그 보다 더 큰 문제가 많다’는 의미입니다.

찰리 멍거 버크셔 해서웨이 부회장과 요즘 월가에서 가장 뜨는 젊은 투자 구루로 꼽히는 JP모간의 마르코 콜라노비치 퀀트 글로벌 총괄이 이런 의견을 가진 대표주자들입니다. 멍거 부회장은 지난 12일 열린 로스앤젤레스(LA) 지역 언론사 데일리저널의 연차 주주총회에 참석해 “(증시에) 많은 문제들이 다가오고 있다”며 “끔찍하게 과도한 투자 행태가 너무 많이 보인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특히 중국 투자자들의 주식투자 방식을 강하게 우려했습니다. 멍거 부회장은 “중국인들은 주식을 도박처럼 투자한다”며 “중국인들이 주식을 다루는 것보다 더 멍청한 것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매우 신중한 성격으로 자신의 의견을 직접적으로 피력하지 않기로 유명한 멍거 부회장에게서 이 같은 평가가 나온 것은 의외”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콜라노비치 총괄의 전망은 조금 더 구체적입니다. 그는 지난 19일 투자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채권, 모멘텀 주식(인수‧합병 등 특별한 재료가 있는 주식), 로볼 주식(별 다른 조정 없이 장기간 꾸준하게 오른 주식) 등이 랠리를 펼치면서 이들이 포함된 방어주와 경기민감주 간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 격차가 90년대 후반 닷컴 거품 때보다 큰 2배 이상으로 벌어졌다”고 소개했습니다. 그러면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이런 거품은 터질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헤지펀드의 대부’로 불리는 레이 달리오 브릿지워터 어소시에이츠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1일 아랍에미레이트 아부다비에서 열린 ‘밀켄 컨퍼런스’에서 “코로나19에 따른 증시 조정은 단기에 그치겠지만, 11년째 이어지고 있는 미국의 경기 확장세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이 더욱 불안하다”고 우려했습다. 그는 “부(富)와 정치의 양극화가 심해진 가운데 경기 하강은 이전과 전혀 다를 수 있다” 덧붙였습니다.

한국 증시가 지난해 12월부터 단기 급등세를 보이자 뒤늦게 증시에 뛰어드는 ‘개미’ 투자자들이 크게 늘었습니다.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된 2월 들어서도 지난 26일까지 개인투자자들은 유가증권시장에서 4조3210억원을 순매수했습니다.

뉴욕 증시가 연일 급등하면서 미국으로 달려가는 투자자들도 크게 늘었습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조사 대상 50개 공모 미국펀드의 설정액은 올 들어 13.2% 증가해 총 1조997억원(26일 기준)으로 집계됐습니다.

요즘 주변에는 “코로나19 쇼크를 계기로 증시가 조정을 받을 때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한 동안 너무 빨리 올라 사지 못했던 주식에 투자하겠다”는 개인투자자들이 많습니다. 실제로 개인들은 이달 들어 삼성전자와 삼성전자우를 총 7조5259억원 순매수했습니다.

“코로나19 쇼크가 잦아든다면, 한국을 대표하는 이들 4차 산업혁명주들이 가장 먼저 반등할 것”이란 게 상당수 국내 전문가들의 전망인 만큼 중장기적으로 나쁜 투자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기대치를 다소 낮추더라도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는’ 포트폴리오 투자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월가 투자 구루들의 조언을 종합해 볼 때 위험자산의 투자 비중을 조금 낮추고 채권, 금 등 안전자산의 비중을 높여 위기 국면에서 재빨리 대응할 수 있는 ‘안전망’을 구축해두는 게 좋겠습니다.

송종현 논설위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