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동물은 법에서 어떤 대우를 받는가
10여 년 전 부패한 사료를 먹고 많은 개들이 병에 걸린 사건이 있었다. 사료회사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개의 법적 지위가 문제됐다. 원칙적으로 개는 동산(動産)으로 분류되며 물건에 해당한다. 주인 입장에서는 가족같이 느껴지는 개의 치료를 위해 돈을 지출했을 터이다. 그러나 개의 시가 이상 치료비를 지출한 경우 그 전액을 법률상 손해로 인정받기 어렵다. 치료비 외에 위자료도 청구했는데 물건에 손상이 생긴 경우 수리비에 더해 위자료까지 받기는 어렵다. 다행히 이 사건에서는 사료회사가 개를 반려동물로 지칭하며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치료비와 위자료 일부가 인정됐는데, 당시로서는 예외적 사건이었다.

그 사이 동물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뀌었다. 우리나라 동물보호법은 동물학대 방지 등 동물보호에 관한 원칙들을 정하고 있다. 여기서 ‘동물’이란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신경체계가 발달한 척추동물로서 포유류와 조류 그리고 식용(食用)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파충류·양서류·어류를 말한다. 제정 당시 소·말·돼지 등 일부 동물만 포함했는데 범위가 확대된 것이다.

한편 살아있는 랍스터(무척추동물)를 끓는 물에 넣거나 얼음과 함께 수송·보관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나라도 있다. 랍스터도 고통을 느끼는 신경체계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문어는 랍스터보다 더 똑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어를 산 채로 삶는 행위는 윤리적으로 허용될까? 참치를 잡는 것은 산업으로 장려하면서 참치와 돌고래를 혼획하면 끔찍하게 여긴다. 이것은 과연 동물을 보호하는 것인가 인간의 감정을 보호하는 것인가.

자유인의 불법적인 구속이나 추방 등을 금지한 1215년의 마그나카르타는 법관에 의한 인신구속심사제도를 강화했고 1679년 인신보호법(Habeas Corpus Act)이 제정됐다. ‘corpus’는 ‘몸(body)’이라는 뜻의 라틴어로 ‘사람’으로 번역되기도 하고 ‘인신(人身)’ ‘신병(身柄)’ 등으로 쓰이기도 한다.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이유로 사람을 구속할 필요가 있는데, 그 구속의 적법성을 법관에게 심사받도록 하는 것이 제도의 핵심이다. 정신질환 등 의사소통 장애도 있을 수 있으므로 보호자 등의 심사 청구도 허용된다. 우리나라도 뒤늦게나마 인신보호법을 제정해 2008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작은 우리에 갇힌 침팬지에 대해 미국 시민단체가 인신보호 석방영장을 청구한 사례가 있다. 뉴욕주 1심법원은 침팬지가 사람(person)이 아니라는 이유로 기각했고 항소심은 1심 재판을 유지했다. 뉴욕 대법원에서 상고허가신청이 기각됐다. 그러나 침팬지가 사람인지 여부 또는 침팬지가 사람과 같은 권리 의무를 지는지 여부를 문제 삼아 바로 기각할 것이 아니라 인신보호제도가 보장하는 인신의 자유가 침해됐는지 여부를 심리해야 한다는 일부 견해가 있었다.

침팬지는 인간으로 분류될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은 아니지만 인간처럼 사고하고 삶을 계획하고 즐길 줄 아는 지적 생명체에도 자의적 잔인함이나 강제 구금에 대해 법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인정돼야 하는 것 아닌가. 과연 사람 외의 모든 동물은 물건에 불과한가. 이 문제는 단순한 법률용어 개념의 문제가 아니며 윤리와 정책에 관한 심각한 딜레마에 해당한다. 침팬지는 본래적으로 인신보호제도의 적용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판단하는 것은 침팬지를 독립적 가치가 없는 존재, 인간에게 쓸모나 효용이 있는지의 측면에서만 평가되는 존재로 보는 것이다. 이와 달리 적어도 일정한 내재적 가치를 지니며 존중심을 가지고 대우받을 권리가 있는 개별자로 봐야 한다는 것이 그 판사의 생각이다.

동물원이 이제는 동물에게 좀 더 넉넉한 생활공간을 확보해주고 인간들이 그들의 세상을 방문하는 곳으로 바뀌었다. 학대와 불법감금의 문제는 어느 정도의 공간을 어떤 방식으로 허용할 것인가의 문제와 관련된다. 동물에 관한 생각이 결국은 인간의 문제로 돌아온다. 교도소의 수용공간과 설비는 충분한 것인지, 과거 각종 복지원이나 정신병원, 요양병원 등 수용시설에서 이뤄진 관행은 얼마나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인지 반성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