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다 처음이라, 뭐가 그렇게 다 창피하고 구차시러운지."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나온 애순의 대사 중 일부다. 다 큰 자식을 둔 엄마 애순이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던 시절 서투르기만 했던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하는 말이다.폭싹 속았수다는 '젊은 애순의 이야기'이자, '엄마 애순의 이야기', '아버지 관식의 이야기'로, 젊은 세대부터 중장년층까지 폭넓은 공감대를 구축하며 인기몰이하고 있다.15일 K-콘텐츠 온라인 경쟁력 분석 업체 굿데이터코퍼레이션이 지난 10일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폭싹 속았수다는 TV-OTT 화제성 드라마 부문에서 1위에 올랐다. 주인공 애순과 관식 역할을 맡은 아이유와 박보검은 출연자 부문에서 각각 1·2위에 올랐다.굿데이터는 누리꾼들의 반응을 분석한 결과 긍정적인 표현이 다수였다며 "작년까지 범죄 스릴러 판타지와 같은 장르물만 집중적으로 공개한 넷플릭스에 피로감을 느낀 시청자들이 큰 호응을 보인다"고 분석했다.글로벌에서도 반응이 좋다. 한국, 그중에서도 제주도 특색이 강하게 드러나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폭싹 속았수다는 공개 첫 주 비영어 부문 글로벌 4위에 올랐다. 총 16부작인 폭싹 속았수다는 지난 14일 8회까지 공개됐다.폭싹 속았수다의 인기 비결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녹인 애순과 관식의 이야기가 젊은 세대뿐만 아니라 중장년층에게까지 폭넓게 공감대를 얻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애순의 어머니는 피난을 와서 제주에 정착한 해녀다. 애순은 1960년대 10대를 지나서 1968년 딸 금명을 낳고 엄마가 됐다. 애순과 관식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특징
배우 남보라가 중고 거래 사기를 당했다고 밝혀 이목이 쏠렸다.15일 KBS 예능 '신상출시 편스토랑'이 공개한 선공개 영상에는 배우 남보라가 중고 거래 사기를 당한 사연을 전하는 장면이 담겼다.영상에는 남보라의 동생들이 "언니가 꼼꼼하고 야무진 면도 있지만, 허술하고 허당미가 있다"라고 하자, 남보라가 "중고 거래 사기를 당한다던가"라며 인정하는 모습이 담겼다.이에 남보라는 "최근 145만원을 사기당했다"라며 "김밥 800줄이 시작이었다. 쉽게 썰고 싶어서 절단기를 샀는데, 정가로 사면 너무 비싸서 중고 거래로 샀다"고 말했다.이어 "돈을 입금했는데 판매자가 잠적을 했다"며 "물건이 안 온 것도 화가 나는데 김밥 800줄을 손으로 썰어야 하는 게 더 화가 났다"고 토로했다.최근 중고 거래가 늘면서 배우 남보라가 겪은 유사한 사례가 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금융사기 방지 서비스 더치트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중고 거래 피해 건수는 2020년 24만5500건에서 2024년 36만4643건으로 급증했다. 피해 금액 역시 2020년 1862억5000여만원에서 2024년 3565억1000여만원으로 약 2배가 됐다.지난해 기준 피해자 연령대는 중고 거래를 활발히 이용하는 20대(36.4%)·30대(26.8%)에서 가장 많이 발생했다.피해 사례로는 사칭·피싱 사이트를 통한 사이버 사기나, 재화·서비스 미공급 등 계약 불이행 건수도 많다고 알려졌다.최수진 한경닷컴 기자 naive@hankyung.com
겉으로는 고상한 척하면서도 사실은 그 누구보다도 계산적이고, 도덕을 입에 달고 살면서 뒤로는 막장 불륜을 벌이는 위선자들. 스위스 출신의 젊은 화가 펠릭스 발로통(1865~1925)이 바라본 19세기 프랑스 파리의 상류층은 그야말로 돈과 욕망의 노예였습니다. ‘저 부자들의 위선을 그림으로 비웃어줘야겠다.’ 발로통은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집안에서 불륜을 벌이는 상류층 남녀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아내 몰래 애인을 만나고 다니는 남편, 그러는 동안 몰래 애인을 집에 초대하는 아내…. 사람들은 그가 그린 그림에 흐르는 긴장감과 숨 막히는 침묵에 빨려들었습니다. 덕분에 발로통은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아이러니하게도 이 그림으로 명성을 얻은 그는, 가난한 애인을 버리고 아주 돈이 많은 여성과 결혼하게 됩니다. 그녀는 아이가 셋 딸린 과부였습니다. 자신이 그토록 조롱하던 부잣집. 발로통은 이제 그 그림 속의 등장인물이었습니다. 그는 과연 행복했을까요. 발로통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파리의 스위스인발로통은 1865년 스위스 로잔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집은 큰 부자는 아니었지만, 미술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이는 아들을 유학 보낼 수 있을 만큼은 넉넉했습니다. 열일곱 살에 파리에 도착한 그는 미술학교에서도 단연 뛰어난 실력으로 주목받았습니다. 발로통의 아버지가 미술학교 선생님에게 “아들이 화가로 먹고살 수 있겠냐”는 편지를 보내자, 선생님은 이렇게 답장했습니다. “아드님은 탁월한 학생입니다. 만약 저에게 발로통 같은 아들이 있다면 저는 아들의 미래를 전혀 걱정하지 않을 것이고, 아들의 예술을 돕기 위해 어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