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상사가 공개된 장소에서 부하 여직원에게 "살찐다" 등의 발언을 하면 성희롱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행정10부(부장판사 한창훈)는 공기업에 근무하는 40대 후반 A씨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부당해고를 인정해달라"고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A씨는 실제 다녀오지 않은 출장을 갔다온 것처럼 꾸미거나 가까운 출장 거리를 부풀려 70여 차례 출장비를 타내고 여직원을 성희롱했으며 성희롱 2차 피해를 야기했다는 등의 징계 혐의로 해고됐다.

A씨는 음식을 먹으려는 신입직원 B씨에게 "그만 먹어라 살찐다, 다른 사람은 되는데 B씨는 안 된다"고 하거나 자신의 옛 애인 이야기를 꺼내면서 "그 호텔 잘 있나 모르겠다"고 말했다. A씨는 B씨에게 옛 애인으로부터 받은 문자메시지를 보여주면서 어떻게 할지를 반복적으로 묻기도 했다.

또한 A씨는 사내 성희롱 사건을 두고 "남자 직원이 술자리에서 그럴 수도 있는 걸 가지고 일을 크게 만들었다"며 성희롱 2차 가해를 하기도 했다.

1·2심은 이런 징계 혐의가 모두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다른 직원이 말렸음에도 A씨는 '살찐다'는 등 외모에 관한 말을 수차례 반복했다"며 "B씨는 이 말을 신체에 대한 조롱 또는 비하로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어 "옛 애인과의 호텔 이야기는 B씨에게 성적 불쾌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한다"며 "하급자에 대한 지도·감독 과정에서 용인되는 수준을 벗어난 부적절한 발언" 이라고 지적했다. 사내 성희롱 사건에 대한 A씨의 발언을 두고도 재판부는 "성희롱 피해자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형성하려 한 것으로 2차 피해를 야기한다"고 말했다.

징계 혐의는 인정되지만 그 수준이 적당했느냐에 대해서는 1·2심의 판단이 갈렸다. 1심은 이런 이유로 해고까지 하는 것은 지나치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1심을 뒤집고 해고가 정당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A씨는 과거에도 비슷한 행위로 정직 처분을 받은 경력이 있는 점, 다수의 부하직원을 관리·감독하는 지위에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해고처분이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