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새롭게 보기

▲ 1493 = 찰스 만 지음, 최희숙 옮김.
콜럼버스가 도착하기 이전 아메리카 인디언의 문명과 역사를 이야기로 풀어낸 '1491'(한국어판 제목 '인디언: 이야기로 읽는 인디언 역사')의 후속작이다.

콜럼버스를 비롯한 유럽 식민개척자들이 아메리카 땅에 발을 디딘 이후 광범위하고 전복적인 양상으로 전개된 인류의 경제·생태적 변화와 그 결과 탄생한 '호모제노센(Homogenocene·균질화, 동질화한 인류 삶을 의미하는 신조어)'의 기원을 쫓아간다.

흔히 학자들이 '세계화'라고 부르는 21세기 경제·생태 시스템은 장구한 인류사의 맥락에서 보자면 매우 급작스럽게 출현했다.

그것은 오랜 세월 지구상 부의 절반 이상을 독점하던 아시아, 특히 중국의 무역권에 한 자리 끼어들고 싶었던 유럽인의 욕망이 분출하고 충돌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부산물 같은 것이었다.

저자는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상륙 이후 수백 년간 정신착란처럼 진행됐던 지구상 대격변의 현장을 직접 누비면서 페루 연안 구아노 섬의 새 배설물에서 영리한 바이러스, 노예 무역선에 내던져진 아프리카 군인 출신 포로에 이르기까지 온갖 물건과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

저자는 텃밭의 식물들, 거기에 붙어사는 벌레와 토양 속 미생물들, 각종 생활용품과 손안의 디지털 기기들, 그리고 나 자신을 포함한 인간들까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든 것을 만들어낸 출발점이자 엔진이 다름 아닌 '콜럼버스적 대전환'이라고 강조한다.

황소자리. 784쪽. 2만5천원.
[신간] 1493·총보다 강한 실
▲ 총보다 강한 실 =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 지음, 안진이 옮김.
최초의 섬유 흔적이 발견된 동굴부터 비단길의 흔적, 이집트 미라의 리넨까지 상상 이상으로 넓고 깊은 실과 직물의 역사를 탐구한다.

실과 직물은 잘 썩기 때문에, 또 주로 여자가 취급하기 때문에 역사에 기록되기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인류에 미친 영향이 작다고 할 수는 없다.

그루지야의 줏주아나 동굴에서 인류 최초의 섬유가 발견됐을 때 우리는 돌과 창을 들고 다니는 남성적인 모습이 아니라 나무나 천처럼 부드러운 물질을 다룰 줄 아는 섬세한 기술을 가진 사람들로서 우리 조상을 상상할 수 있게 됐다.

실을 통해 역사를 보는 것은 권력과 힘이 만들어낸 역사의 한 장면만을 기억하는 게 아니라 작지만 끈질기게 역사를 움직여온 일상을 발굴하는 일이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복식사를 전공한 저자는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레이스 뜨는 여인'에 등장하는 놀라운 레이스들, 남극대륙과 에베레스트를 정복하기 위해 도전하는 인간들이 선택한 특별한 직물, 우주에 한 발 내딛기 위해 우주비행사만큼 고군분투한 우주복 제작자들, 인간 속도의 한계를 넘기 위한 전신 수영복 논란 등 실과 직물에 얽힌 13가지 이야기를 소개한다.

윌북. 440쪽. 1만7천800원.
[신간] 1493·총보다 강한 실
▲ 다시, 새롭게 보기 = 켈리 그로비에 지음, 주은정 옮김.
위대한 미술 작품을 위대하게 만든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시인이자 문화비평가이며 역사가인 저자는 57점 미술 작품을 관통하는 하나의 공통점으로 '눈고리'를 찾아낸다.

눈고리(eye-hook)는 미술 작품에 생경함을 부여하는 요소이자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 요소. 모든 명작에는 거부할 수 없이 관람자의 눈을 잡아채는 눈고리가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진시황 병마용에서 눈고리는 병사들의 귀다.

7천여개 테라코타가 가진 귀는 단 하나도 똑같지 않다.

실재한 인물들과 같은 유일무이함을 보여주는 귀가 병마용의 위대함을 입증한다.

프라 안젤리코 그림 '수태고지'에서 눈고리는 성모마리아 뒤쪽으로 작게 난 격자창이다.

그림의 소실점이 위치한 이 작은 창은 현실과 작품 세계, 성모의 순결함과 예수 잉태, 영적인 순수성을 상징하는 복잡한 장치로 예술적 고양을 끌어낸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에서 많은 평론가는 신비한 미소에 초점을 맞추지만 저자는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주목한다.

대부분의 미술사학자는 이 유령 같은 손가락이 단순히 '펜티멘토', 즉 예술가가 작품 제작 방향을 전환하면서 어렴풋이 남은 자취로 봤지만 저자는 "우리의 지각이 미치는 소실점을 넘어서 떨리고 있는 또 다른 손의 남은 흔적이 이 작품이 거둔 미학의 성공에서 핵심적"이라고 평가한다.

아트북스. 388쪽. 2만3천원.
[신간] 1493·총보다 강한 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