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대통합신당? 이름은 이름다워야 한다
‘4·15 국회의원 총선거’를 두 달 남짓 앞두고 정치권이 이합집산(離合集散: 헤어졌다가 만나고, 모였다가 흩어짐) 열기로 달아오르고 있다. 좀처럼 뭉치지 못할 것 같던 우파 진영의 자유한국당과 새로운보수당이 지난주 신설합당에 합의한 게 정치권의 최대 화제다. 두 당의 전격적인 합당 선언은 휴전선 넘어 북한에까지 ‘한 방’을 먹였다. 국내 좌파언론 보도를 인용해 <보수는 분렬(분열)로 망한다>는 논평(1월 7일 조선중앙통신)을 내며 대한민국 우파를 조롱했던 입방정이 머쓱해지게 됐다.

통합정당이 출범하기까지 여러 절차가 남아 있지만, 양측은 우선 당 이름(당명·黨名)을 ‘대통합신당’으로 짓는다는 데 합의했다. 사람이건 조직이건 이름(간판)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대중(소비자)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기업이나 정당은 더욱 그렇다. 이름에 정체성을 잘 담아내야 존재감을 깊이 각인시킬 수 있다. 경영학 관점으로 말한다면 마케팅의 기본이자 출발점이다.

새 당의 이름을 ‘대통합신당’으로 하겠다는 게 그래서 난데없다.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 정치 결사체(結社體)인지를 전혀 담아내지 못하는 이름이어서다. ‘대통합신당’을 순우리말로 풀면 ‘크게 뭉친 새로운 정당’이란 얘긴데, 그래서 어떻다는 건가. 정당은 유권자인 국민에게 “우리에게 국가 운영을 맡긴다면 ‘OO’의 가치를 추구하고 정책으로 실현하겠다”고 약속해 표를 얻는 집단이다. 표를 많이 얻어야 집권하거나, 최소한 정권을 견제하는 정당으로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중요한 게 ‘OO’의 가치를 효과적이고도 널리 알리는 일이다.

웬만한 선진국 정당들이 어김없이 ‘OO’을 당 이름으로 내거는 이유다. 근대 민주주의 발상지인 영국에서는 ‘보수당’과 ‘노동당’이 정당정치의 두 축을 이루며 100년 넘게 경쟁하고 있다. 미국은 ‘공화당’과 ‘민주당’, 캐나다는 ‘보수당’과 ‘자유당’, 일본은 ‘자유민주당(자민당)’과 ‘민주당’, 다당제 국가인 독일에서는 ‘기독교민주당’ ‘사회민주당’ ‘기독교사회당’ ‘녹색당’ 등이 국정을 이끌고 있다. 당 이름만으로도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 정당인지 명확한 메시지를 전한다.

우리나라 우파 정당들만 예외다. ‘대통합신당’이 처음이 아니다. ‘민주자유당’ 후보로 당선된 뒤 당명을 ‘신한국당’으로 갈아치운 김영삼 정부 시절부터 우파 정당들의 ‘정체불명(正體不明) 이름 쓰기’ 전통이 시작됐다. ‘신한국당’ 간판을 ‘한나라당’으로 바꾸더니 박근혜 대표가 대통령 선거에 도전하면서는 ‘새누리당’으로 또 개명(改名)했다. 당 이름의 뜻이 불분명하다 보니 반대 진영의 놀림거리가 되기 일쑤였다. ‘한나라당’ 시절 계파 간 싸움이 요란하던 때 “(얼빠진) 당나라당 같다”는 야유를 받았고, ‘새누리당’은 박근혜 대통령이 “우주의 기운…” “전 우주가 나서서…” 같은 심오한 말을 한 것과 연결돼 ‘새누리’와 뜻이 비슷한 특정 종교집단과 연관 있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박 대통령 탄핵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바뀐 당명인 ‘자유한국당’은 모처럼 우파 가치를 담은 이름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당의 공식 약칭(略稱)을 ‘자유’가 빠진 ‘한국당’으로 쓰면서 ‘정체불명 당 이름 짓기’의 전통을 계승했다. “대한민국 정당 중에 ‘한국당’ 아닌 당이 어디 있느냐.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이 다 ‘한국당’이지 않느냐”는 지적에 귀를 막았다.

한두 번도 아니고, 우파 정당들이 당명에 자유·보수의 가치를 빠뜨린 맹탕 이름을 번번이 쓰는 데는 짐작되는 이유가 있다. 진정한 우파 가치에 대해 확립된 인식과 신념, 통찰(洞察)이 없어서일 것이다. 이명박의 한나라당 정부, 박근혜의 새누리당 정부 시절 우파 가치와 정반대 정책을 쏟아내는 경우가 적지 않아 “도대체 지향하는 이념이 뭐냐”는 소리를 들었던 배경이다. 총선을 앞두고 부랴부랴 합치겠다는 신당의 앞날이 ‘한나라’ ‘새누리’와 어떻게 다를지 걱정스러운 이유다. 공자가 “내게 정치를 맡기면 먼저 이름부터 바로잡겠다”고 한 정명(正名)의 가르침이 씁쓸하게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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