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국가보안법 재범위험 엄격히 따져야"…보안관찰 취소판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옥살이를 한 사람이 이후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했다는 등의 이유로 보안관찰 처분을 한 것은 부당하다고 법원이 판단했다.

보안관찰 처분의 근거인 '재범 위험'을 엄격히 따져야 한다는 취지다.

6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4부(이승영 박선준 한소영 부장판사)는 대학강사 이병진씨가 법무부를 상대로 "보안관찰 처분을 취소해달라"고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인도 정치를 연구하는 이씨는 인도 유학 중 북한의 대남공작원에게 포섭돼 17년간 군사기밀 등을 넘겨주고 공작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징역 8년을 확정받고 2017년 만기 출소했다.

이씨가 출소한 이듬해 법무부는 이씨에 대해 보안관찰 처분을 했다.

보안관찰이란 형을 마친 자 중에서 범죄를 다시 저지를 위험성이 있는 사람에 대해 내리는 처분이다.

대상자는 3개월마다 자신의 생활을 관할 경찰서에 신고하고, 주거지를 옮기거나 해외로 여행을 갈 때 신고해야 한다.

법무부는 이씨가 중범죄를 저지르고도 출소 후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책을 내고, 수형생활 중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전력이 있는 사람들과 접촉했다는 점 등을 근거로 보호관찰 처분을 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범행이 중하다는 이유만으로 바로 이씨가 범죄를 다시 저지를 위험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을 담은 책을 출간하고 관련 행사에 참석한 것은 헌법상 보장되는 표현의 자유·양심의 자유에 속하는 것으로 체제를 부인하는 활동이라 볼 수 없다"며 "수형생활 중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자들과 서신을 주고받거나 접견한 것이 국가보안법 위반과 관련한 구체적 활동이라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보안관찰처분은 대상자의 행위에 책임을 묻는 제재조치가 아니라, 장래 재범의 위험성을 예방해 사회의 안녕을 유지하고 건전한 사회복귀를 촉진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민변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처벌을 받았다면 형 집행 이후에도 계속 감시해야 한다고 낙인찍고, 이에 따라 기계적으로 보안관찰 처분을 집행해 온 관행이 잘못됐다는 점을 분명히 확인한 판결"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