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폴 뒤부아 장편소설 '상속'
비극 유전자를 물려받은 남자…어떻게 살 것인가
가족은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이자 행복의 근원이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불행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굴레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

가혹하게도 세상에는 자신의 선택이나 노력과 무관하게 감당해야 하는 운명도 있다.

지난해 공쿠르상 수상 작가 장폴 뒤부아의 2016년작 장편소설 '상속'(밝은세상)이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뒤부아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주제에 집중해온 작가다.

'상속'은 여기에 '우리는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더했다.

주어진 삶이 숨쉬기 힘들 만큼 고통스럽고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소설은 당황스러울 만큼 암울하고 기괴하며 비극적인 한 가족 이야기를 그린다.

주인공 폴 카트라칼리스는 가족에게서 오는 고통 속에서 발버둥 친다.

할아버지는 스탈린 주치의였다.

스탈린이 죽자 뇌 조각을 훔쳐 도망친 특이한 이력을 가진 그는 대성당에서 권총으로 생을 마감했다.

할아버지 죽음은 시작일 뿐이다.

어머니는 차 안에서 배기가스로, 삼촌은 애마처럼 아끼던 오토바이를 타고 시속 250㎞로 공원 벽을 들이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폴의 유일한 낙은 프랑스와 가까운 스페인 바스크 지방 전통 스포츠인 펠로타였다.

펠로타를 할 때면 근심과 슬픔을 잊을 수 있었다.

상실과 고통의 나날을 보내던 폴은 탈출하듯 고향 툴루즈를 떠나 미국 마이애미 펠로타 구단에 입단한다.

그곳에서 경기를 즐기고 사랑과 우정을 나누며 처음으로 행복한 삶을 맛본다.

그러나 하루하루 반짝이던 시절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마지막 남은 가족 아버지가 옥상에서 뛰어내렸다는 비보에 집으로 돌아가 잠시 잊었던 불안과 상처와 다시 마주한다.

아버지 유품을 정리하던 폴은 뒤늦게 가족들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알게 된다.

자신도 비극의 유전자를 가진 가족 일원임을 깨닫는다.

폴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남은 자는 어떻게든 견디는 수밖에 없다.

절망적이고 부조리하지만 폴은 계속 출구를 찾는다.

작가는 이 역시 삶이라는 듯 폴의 시점에서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세상 누구에게나 좋든 싫든 고통은 주어진다는 점에서 폴 이야기는 모두에게로 확장된다.

삶과 죽음이라는 주제 아래 잔혹한 가족사가 펼쳐지지만, 마냥 무겁고 어둡지만은 않다.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처럼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문득문득 웃음을 자아내는 순간들이 등장한다.

작가는 이 작품으로 2016년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공쿠르상 최종심에 올랐고, 지난해에는 다른 작품으로 공쿠르상을 받았다.

작가가 던진 질문에 명확한 정답은 없다.

폴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선택했을 뿐이다.

작가의 지난해 공쿠르상 수상작 제목은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사는 것은 아니다'이다.

임미경 옮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