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열 연구교수 주장…"애매하고 상충하는 내용도 있어"
"진수가 쓴 역사서 '삼국지', 날짜·지명에 오류 많아"
중국 역사가 진수(陳壽, 233∼297)가 쓴 역사서 '삼국지'(三國志)에 오류가 적지 않고 서술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주장이 나왔다.

최진열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연구교수는 동북아역사재단이 펴내는 학술지 '동북아역사논총' 최신호에 실은 논문 '삼국지 연대·지명 오류'에서 손책(孫策)과 손권(孫權)을 기술한 대목 등을 분석해 적지 않은 오류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진수가 집필한 '삼국지'는 위(魏)·촉(蜀)·오(吳) 세 나라에 관한 사서다.

'사기', '한서', '후한서'와 함께 중국 전사사(前四史)로 불리기도 한다.

'삼국지'가 다룬 시기에 조조, 유비, 손권은 중원 패권을 놓고 겨뤘다.

'삼국지'는 명나라 초기에 활동한 문인 나관중(羅貫中)이 쓴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와는 다른 저서다.

'삼국지연의'가 유비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면, '삼국지'는 조조 아들 조비가 세운 위나라 중심으로 기술했다.

분량은 위서 30권, 촉서 15권, 오서 20권이다.

내용이 다소 간략하지만, 삼국시대 정사(正史)로 평가된다.

최 교수는 '삼국지' 오서(吳書) 오주전(吳主傳)에서 199∼222년 내용을 '후한서', '자치통감' 등과 비교해 진수가 날짜를 애매하게 적거나 잘못 기록한 사례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삼국지'는 건안(建安) 13년(208) 봄에 손권이 유표 부하인 황조를 토벌했다고 했다.

그러나 '자치통감'은 봄보다 자세한 표현인 '정월 이후 일'이라고 서술했다.

최 교수는 "중요한 사건인 적벽대전은 오서와 촉서에 구체적인 날짜가 없고, 위서에는 12월이라고 했다"며 "형주 점령과 관우 살해 기사에도 구체적인 월일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파촉을 차지한 유비가 손권에게 장사(長沙)·영릉(零陵)·계양(桂陽) 3군을 할양한 사건은 오서와 촉서에 기록된 시기가 다르다는 점도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오서는 건안 19년, 촉서는 건안 20년이라고 기재했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삼국지 오서 오주전 기록을 검토하면 손권이 황제를 자칭하기 이전 사건에는 월일 없이 연도만 표기한 기사가 대부분이었다"며 "오서를 위서와 촉서, 자치통감과 비교하면 틀린 부분이 10여 건에 달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손권의 합비 공격과 적벽대전처럼 사건의 시간 순서가 뒤바뀐 예도 많았다"며 "오서의 날짜 표기가 유독 빈약한데, 진수는 오의 상대국 기록과 대조해 구체적 날짜를 적거나 시간적 도치를 바로잡았어야 함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최 교수는 삼국 정립의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평가되는 적벽대전과 관련해 '삼국지' 오서 기사에서 지명이 오락가락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투 장소를 적벽(赤壁)이라고 한 기사는 5건, 오림(烏林)으로 기록한 기사는 6건"이라며 "전투 장소를 하나로 통일하지 않고 둘로 나눠 기술해 독자를 혼란스럽게 했다"고 논했다.

또 제갈량이 마지막 북벌 때 주둔한 지역이 위서·촉서·오서에 각각 다르게 기록됐고, 제갈량이 죽은 장소를 막연하게 촉 군영이라고만 한 점도 문제 삼았다.

이에 대해 최 교수는 "진수의 고증 능력 부족 혹은 제갈량의 북벌을 깎아내리려는 정치적 의도가 원인인 듯하다"며 '삼국지' 내용을 맹신하지 말고 비판적으로 독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