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국가 간 약속 지켜야" 주장 되풀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24일 한일 관계 악화로 경색된 양국 간의 인적 왕래를 뒷받침할 정책을 펴겠다면서도 한국의 수출규제 철회 요구와 관련해 '엄격한 수출관리' 원칙을 천명해 사실상 거부 입장을 시사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참의원 본회의 대정부 질의 세션에서 답변을 통해 "일한(한일) 관계가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지만 이런 곤란한 상황에 처한 때일수록 '지방'(자치단체)이나 '풀뿌리'(민간) 차원의 교류를 비롯한 다양한 교류를 확실하게 계속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작년 12월 중국 청두(成都)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도 "다양한 차원의 교류가 중요하다는 점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과 의견을 같이했다"면서 일본 정부 차원에서 양국 간의 다양한 교류가 이어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뒷받침하겠다고 강조했다.
아베 총리는 그러나 교류를 어떻게 활성화할지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한일 지방정부 간의 교류 방문이나 한국인의 일본 여행은 아베 정부가 작년 7월 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를 둘러싼 갈등 속에서 포토레지스트(감광재) 등 한국 주력산업인 반도체 핵심소재 3개 품목의 수출규제를 시작한 것을 계기로 급속히 위축됐다.
일본을 찾은 한국인 여행객의 경우 작년 7월 이후 급감하기 시작해 작년 전체로 방일 한국인이 전년 대비 25.9% 감소한 558만여명에 머물렀다.
이 여파로 한국인 관광객이 즐겨 찾던 일본 남서부 지역의 여행·숙박업계가 경영난에 빠지는 등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 총리는 이날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한국을 수출지로 하는 레지스트의 수출을 유보한 사실이 없다"고 지적한 뒤 "작년 7월 4일 이후 (주요 품목의 한국 수출에 대해) 개별 수출허가 신청을 요구하고 있지만, 안보상 우려가 없는 민간거래인 경우는 허가를 내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국제 체제'(전략물자 수출통제 체제)에 맞게 엄격한 수출관리 운용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수출 규제를 철회하라는 한국 요구에 응할 생각이 없음을 내비쳤다.
이 같은 입장은 작년 7월 일본 정부가 시작한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가 안보 차원의 수출 관리라는 기존 주장의 연장선으로, 문 대통령이 지난 14일 신년사를 통해 일본에 수출규제 철회를 공개적으로 요구한 데 대한 답변으로도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에서 "일본이 수출규제 조치를 철회한다면 양국 관계가 더욱 빠르게 발전해 갈 수 있을 것"이라며 일본의 수출규제 철회를 촉구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여러 차례의 답변을 통해 징용 피해자 문제와 관련해서도 종전 입장을 되풀이했다.
그는 "한국은 원래 기본적 가치와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 나라"라며 "작년 12월 일한 수뇌회담에서 현재 일한 관계의 최대 과제인 '구 조선반도 출신 노동자'(징용 피해자) 문제에 대해 한국 측이 책임을 갖고 해결책을 제시해 달라고 강하게 요구했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그러면서 "한국 측이 국가와 국가의 약속을 지켜 미래지향의 양국 관계를 구축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고 했다.
이는 지난 20일의 정기국회 개원 시정방침 연설 등을 통해 밝혔던 기존 입장을 반복한 것이다.
아베 총리는 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된 것이라며 일본 기업에 배상을 명령한 한국대법원 판결이 이 협정에 어긋나는 만큼 한국 정부가 '국제법 위반' 상황을 해소할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