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복합쇼핑몰과 아울렛에 입점한 상인들에게 매출이 줄어들 경우 임차료 감액 요구권을 부여하는 표준거래계약서를 내놨다. 감액 요청 시 2주 안에 협상하고, 합의가 안 되면 분쟁조정 절차를 밟도록 했다. 표준계약서는 법적 의무사항은 아니지만, 사실상 강제 규정이나 다름없다. 앞으로 복합몰·아울렛 운영업체들은 입점업체 매출이 줄 때마다 임대료를 깎아줘야 할 판이다. 사인(私人) 간 계약인 임대차계약서를 휴지조각으로 만들겠다는 것인지 걱정스럽다.

공정위가 표준계약서를 마련한 것은 ‘약자’로 규정한 입점업체들의 불공정 행위 피해를 막기 위한 취지에서일 것이다. 약자를 보호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복합몰·아울렛과 입점업체 간 계약은 당사자의 자유로운 합의에 의해 이뤄지는 사적 계약이다. 공정위 조치는 일부 불공정 행위를 문제삼아 시장에 과도하게 개입한다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하다.

더구나 표준계약서에는 모호한 표현이 많아 논란 소지가 크다. 임차인의 귀책사유가 없는데도 매출이 현저하게 감소하면 감액을 요청할 수 있다고 했는데, ‘현저한 감소’가 어느 정도 감소폭을 말하는 건지 모호하다. ‘주변환경의 현격한 변화’, ‘기타 경제 여건의 변동’ 같은 표현도 불분명하기는 마찬가지다. 중국 사드 보복이나 일본 수출 규제 같은 외부 요인으로 매출이 줄어도 임대료를 내려야 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결국 분쟁 조정이나 소송으로 이어져 사회적 갈등을 키울 가능성이 있다.

유통산업의 주도권이 이미 온라인으로 넘어갔는데도 공정위의 인식은 아직도 ‘갑을관계’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약자 보호도 중요하지만 시장경제의 기본 원칙인 ‘계약의 자유’는 반드시 존중돼야 한다. 사적 자치를 훼손하는 민간영역에 대한 지나친 간섭과 규제는 시장을 위축시키고 기업의 역동성을 떨어뜨리게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