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파티보다 '가성비 좋은 작은 파티' 인기…새로운 이들과 만남의 장 되기도
'워라밸' 시대 직장인의 여가는…'소박한 개츠비' 파티 확산
직업, 나이, 사는 곳, 심지어 이름조차 밝히지 않아도 된다.

내키는 만큼만 자신을 소개해도 오히려 금세 장벽이 허물어진다.

지난 10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한 카페에서는 최근 취업한 김철우(32)씨가 주최한 파티가 열렸다.

화려한 장식이나 음식이 차려진 파티가 아니라, 김씨의 지인과 그들의 지인들이 각자 2만원의 회비를 내고 모인 자리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각자 가져온 책을 교환하면서 자기소개를 한 뒤 게임을 하다 보니 금방 '절친'이 된다.

김씨는 13일 "한번 파티에 온 사람들이 다음 파티 준비를 적극적으로 도와줘서 테마와 프로그램을 짜는 게 그리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최근 직장인들 사이에서 적은 비용으로 각종 파티를 직접 여는 '소박한 개츠비'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워라밸' 문화에 주 52시간제 등으로 시간 여유가 생긴 결과로 풀이된다.

매일 밤 대저택에서 화려한 파티를 여는 소설 '위대한 개츠비' 주인공보다는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장소와 음식 등을 준비하지만,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매력은 그대로라고 한다.

카페나 식당, 파티룸을 빌려 편하게 술과 음식을 나누기도 하고, 예능 프로그램에 나온 게임을 직접 해 보거나 책과 영화를 보고 생각을 나누는 등 테마도 다양하다.

김씨는 "지인들을 서로 소개해주고, 새로운 사람들과 만날 기회를 만든다는 게 재미"라며 "직장인들은 퇴근 후 집에서 유튜브 영상을 보거나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는 이가 많아서인지 이렇게 밖에서 만나 놀이를 하는 데서 다시 재미를 찾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6년 차 직장인 전영환(30)씨는 매달 한 번 주제를 정해 작은 파티를 연다.

공유주방에 딸린 모임 장소를 빌리기도 하고, 복합문화공간을 대관해 음식과 술을 차리기도 한다.

참석하는 사람들에게서 2만∼4만원가량 참가비를 받아 대관 비용과 음식값을 댄다.

전씨는 "모임에 오는 사람들이 기존 모임들에 비해 색다르다고들 한다"면서 "회사 사람끼리 만나면 아쉬운 소리만 하다 헤어지거나 공격적인 대화가 오가기도 하는데, 여기에서는 기분 좋은 에너지를 얻어간다는 반응"이라고 말했다.

그는 "젊은 세대가 회식도 싫어하고 개인주의적이라는 말이 많은데, 그게 아니라 단지 관심이 가는 모임에 시간을 쓰고 싶어한다는 게 맞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워라밸' 시대 직장인의 여가는…'소박한 개츠비' 파티 확산
전씨가 3년 전 주최한 모임에 지인 소개로 참석했던 직장인 김모(28) 씨는 이같은 파티에 매력을 느껴 지난해부턴 매달 전씨와 함께 모임을 열고 있다.

전공을 살려 파티 포스터를 제작해 SNS에 올리기도 한다.

이들의 지인뿐 아니라 포스터를 보고 모임에 찾아오는 손님도 부쩍 늘었다.

김씨는 "처음에는 지인들만 모였지만 점차 이들이 데려온 사람들이나 SNS를 통해 참가하는 사람 등으로 구성원이 다양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SNS를 보면 젊은 층을 중심으로 생일 등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각종 파티를 여는 문화가 확산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면서 "주 52시간제 도입으로 시간적인 여유가 생긴 데다 '사람에 대한 목마름'이 있는 디지털 세대의 단면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구 교수는 "사회적 관계이기는 하지만 학연, 지연 등 관계 기반이던 과거의 모임과는 질적으로 다른 목적 기반의 모임"이라며 "취업과 이직, 집값 등 객관적으로는 굉장히 스트레스가 많은데도 '일상의 파티화'가 관찰된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상황이라고도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