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교회에서 교황을 선출하는 선거를 ‘콘클라베(conclave)’라고 한다. 콘클라베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낯설지 않다. 기존 교황과 신임 교황의 우정을 묘사한 ‘두 교황’(2019), 교황 선출에 부담을 느끼고 교황청에서 도망 나온 신임 교황의 혼란을 다룬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2013), 콘클라베가 집행되기 전 벌어진 의문의 사건이 배경인 ‘천사와 악마’(2009) 등이 그렇다. 이 작품들은 장르가 다르고 교황과 바티칸을 바라보는 연출자의 시선도 제각각이지만 공통된 설정이 있다. 콘클라베를 둘러싼 교황청 구성원의 이해관계가 난맥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다.독일 출신 에드바르트 베르거 감독이 연출한 ‘콘클라베’는 선거 과정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다른 작품과 다르다. 교황이 돼야 하는 각자의 신념과 입장이 있는 추기경들이 콘클라베 기간에 어떻게 충돌하고 상대를 제거하며 음모를 꾸미는지를 스릴러로 풀어간다. 이의 중심에 서는 인물은 로렌스(랄프 파인즈 분)다. 공정한 과정에서 신임 교황이 선출될 수 있게 선거를 지휘하고 총괄하는 단장 임무를 맡았다. 영화는 교황의 선종과 이로 인한 콘클라베의 시작과 끝을 로렌스의 시선에서 바라보는데 그가 하는 일은 단순한 관리자의 차원을 넘어선다.더 직접적으로 표현하면 로렌스는 콘클라베가 이뤄지는 동안 자신의 지위와 무관하게 일종의 탐정이 돼 신임 교황으로 유력한 몇몇 추기경의 뒷조사에 나선다. 예수 그리스도를 제외하면 가장 높은 지위에서 권위와 권력을 이양받는 교황에게는 순수한 형태의 도덕성이 요구된다. 교황을 향한 세상의 시선 또한 신과 같은 완벽한 존재에 가까워서 이에서 벗
“오늘이 정녕 이 세상의 마지막 밤이라면 어떡하나. 오늘 밤은 걱정을 접어두고, 예민한 내장을 달래며 내일을 살기 위해 잘 자야겠다.”1982년생 염지혜 작가(42)가 숨 가쁘게 돌아가는 세태를 걱정하며 말한다. 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달린 그다. 남은 건 상처투성이의 ‘예민한 내장’뿐. 눈가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선배 작가 홍이현숙(66)이 지난날을 회고하며 답한다. “나에게 닥쳐온 질병은 새로운 작업을 촉발하는 계기였다. 이제는 몸이 아픈 사람들과 또 다른 연대를 이뤄내려고 한다.”염지혜 홍이현숙 두 작가의 목소리로 녹음한 사운드 작업 ‘돌과 밤’(2024)의 일부다. 동시대 퍼포먼스 예술의 최전선을 달리는 이들이 20여 년 세대를 뛰어넘어 만났다.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린 2인전 ‘돌과 밤’은 자갈처럼 발에 채고, 밤처럼 어두운 곳에서 살아가는 존재한테 위로를 건네는 전시다.신작 프로젝트 4점 등 30여 점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북서울미술관 연례 기획전인 ‘타이틀 매치’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비슷한 관심사를 공유하는 작가 두 명을 비교해 보이는 전시다.두 작가는 각각 ‘돌’과 ‘밤’이라는 소재로 사회의 모순을 이야기한다. 홍이현숙 작가의 신작 ‘지금 당신이 만지는 것-인수봉’은 북한산 인수봉의 암벽을 탁본하는 과정을 담은 영상작업이다. 바위 표면에 크레파스를 비벼 본을 뜬 11.25m 높이 천 작업은 붉은색과 검은색이 섞여 기후 위기를 암시한다. 부산 아미동에서 촬영한 ‘아미동 비석마을’도 돌을 다룬다. 일제강점기 공동묘지가 들어섰던 곳으로, 6·25 전쟁 피란민들이 원래 있던 비석을 빨
지난달 27일 발레 팬들을 설레게 한 깜짝 발표가 있었다. 오는 4월 유니버설발레단이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올리는 전막 발레 ‘지젤’ 캐스팅에 귀족 알브레히트 역으로 발레리노 전민철의 이름이 포함되면서다.6월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에 입단하는 그를 상반기에 한번 더 국내 무대에서 볼 수 있다는 소식에 예매 전쟁이 벌어졌다. 캐스팅 발표 다음날인 지난달 28일 티켓 예매 사이트에서 그의 무대는 오픈한 지 3분 만에 매진됐다. 전민철은 “지난해 가을 유니버설발레단과 ‘라 바야데르’를 통해 전막 무대를 경험했기에 자신감이 있다”며 “러시아로 떠나기 전에 ‘지젤’을 한 번 더 성장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말했다.전민철은 한국경제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발레 인생을 통틀어 처음 본 전막 작품이 유니버설발레단의 ‘지젤’이고, ‘지젤’이라는 레퍼토리를 정말 좋아한다”며 “의미도 있고 좋아하는 마음이라 기쁘게 무대에 서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번 공연은 4월 18일부터 27일까지 열린다. 전민철은 이 중 단 하루, 4월 20일 저녁 공연에 발레리나 홍향기(유니버설발레단 수석)와 호흡을 맞춘다.전민철만큼이나 유니버설발레단에도 ‘지젤’은 특별하다. 문훈숙 단장이 무용수 시절이던 1989년, 동양인 최초로 키로프발레단(현 마린스키발레단)에 지젤로 초청돼 일곱 차례의 커튼콜을 받았고, 1999년에는 한국 최초로 지젤을 유럽 무대에 올린 기록도 있다. 팬데믹으로 뒤숭숭하던 2021년에도 조기 매진되는 등 오랜 기간 발레 팬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은, 발레단의 대표 레퍼토리다.지젤은 초연 이후 184년간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