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2·12총선 유세장 암모니아수 소동
"초점이 흔들려서 특종상 수상"
[순간포착] 난장판 국회의원 선거 유세장
흑백사진에 담긴 장면이 무척 긴박해 보인다.

초점이 맞지 않아 흔들린 사진에서는 무슨 액체가 사방으로 튀는 가운데 사람들이 피하려는 듯 몸을 비틀고, 어떤 이는 뒤쪽에서 연단으로 급하게 뛰어오른다.

확실하지 않지만, 청중은 이 모습을 당황한 표정으로, 또는 멍하게 바라본다.

연합뉴스가 발행한 '유세 도중 테러당하는 허청일 후보'란 제목의 이 사진에는 "제12대 총선에 출마한 민정당 허청일 후보가 동작구 남성국민학교에서 유세 도중 '청산가리다!'하며 뛰어든 2명의 대학생들로부터 테러를 당하고 있다.

후에 병에 든 액체는 암모니아수로 밝혀졌으며 이들은 현장에서 붙잡혔다.

1985.2.5"란 설명이 붙어 있다.

제12대 국회의원 선거를 일주일 앞둔 1985년 2월 5일 오후 2시 10분께 서울 동작구 사당동 남성국민학교 교정에서 열린 동작지구 국회의원 선거 합동연설회에서 발생한 사건을 담은 사진이다.

중앙에 모자를 쓴 사람은 암모니아수를 끼얹은 대학생이고, 그 왼쪽에 몸을 비틀며 고개를 돌린 사람이 허청일(11, 12대 국회의원)이다.

뒤편에서 연단으로 뛰어오르는 사람들은 당원이다.

이 긴박한 순간을 포착한 사람은 당시 사진부 차장이던 고(故) 윤명남 기자(2016년 사망). 도광환 현 DB부장으로부터 당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1995년에 제가 사진부 막내일 때 윤 선배가 사진부장이었어요.

개인적으로는 잘 모르는 분이었죠. 알고 보니 옛날에 그런 특종을 하셨다고 해서 '그때 얘기를 들려주실 수 있습니까' 요청해서 이야기를 듣게 됐죠."
1985년 2·12총선은 전두환 정권이 임기를 마칠 때까지 정국 구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선거였다.

이때 YS(김영삼)와 DJ(김대중)가 주도한 신당인 신한민주당이 돌풍을 일으켰다.

서울 14개 선거구에서 신민당 후보 전원이 당선됐고, 기존 민한당과 국민당을 넘어 제1야당이 됐다.

도 부장에 따르면 당시 윤 기자는 유능한 사진기자였는데 꼿꼿한 성격 때문에 위에서 찍혀 소위 '가장 물 좋다'는 국회를 출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국회는 밥도 잘 얻어먹고 촌지도 생기는 그런 곳이었다고 한다.

"사건이 벌어진 날 아침에 국회 출입 기자들이 총선 유세 현장 취재를 가는데 동작 선거구는 B급 취재처여서 가겠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해요.

결국 현장에서 총선 유세 취재를 하고 싶었던 윤 선배가 손을 들어서 가게 됐죠. 한마디로 '땜빵'이었어요.

"
주목받는 선거구가 아니어서 현장에는 사진 기자도 별로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대학생들이 연단에 뛰어오르며 암모니아수를 뿌리는 사건이 벌어졌다.

윤 기자는 전혀 예측불가능한 상황에서 사건이 발생하자 정신없이 연단으로 뛰어가면서 엉겁결에 셔터를 눌렀다고 한다.

이 사진은 당시 모든 신문을 도배했고, 같은 해 8월에는 한국기자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윤 선배가 '좋은 앵글도 아니고 얼굴이 잘 보이지도 않고 인물들이 크게 찍힌 것도 아닌데 이 사진이 전 신문을 도배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냐'고 묻더라고요.

'잘 모르겠다'고 하니까 '흔들려서 그렇다'고 해요.

"
도 부장은 "사실 흔들리면 좋은 사진이 아닌데 이것은 흔들렸기 때문에 긴박하고, 뭔가 상황이 벌어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예측하고 찍었다면 아무 힘이 없고 느낌도 없었을 것이다.

흔들려서 사진의 가치가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흔들렸다고 나쁜 사진도 아니고 정교하게 찍었다고 좋은 사진도 아니고, 상황과 현장 분위기에 따라 엉뚱한 곳에서 찍은 앵글이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교훈을 줬어요.

흔들렸기 때문에 이 사진이 특종으로 남은 거죠."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