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방한한 일함 카드리 솔베이 최고경영자(CEO)를 찾아갔다. 솔베이의 신제품 ‘특수 폴리머’ 파일럿 공장을 한국에 유치하기 위해서였다. 1863년 벨기에에 설립된 솔베이는 자동차 등에 들어가는 특수소재 분야 세계 1위 기업이다. 2016년 1200억원을 들여 새만금에 공장을 지을 정도로 한국 투자에도 적극적이었다. 이번엔 달랐다. 최근 솔베이 본사는 싱가포르에 공장을 짓기로 했다. 외국계 기업 관계자는 29일 “솔베이 경영진이 한국에서 강화되고 있는 화학물질 규제와 주 52시간 근로제 등에 부담을 느껴 싱가포르행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외국 기업들이 한국을 외면하고 있다. 우수한 인적 자원과 산업 인프라 등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기업하기 힘든 나라’라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어서다. 가파른 인건비 상승과 기업 규제 강화 등으로 경영 불확실성이 높아진 영향이 크다. 올해엔 외국 기업 조세감면이 폐지되면서 ‘당근책’마저 사라졌다.한국에 대한 외국인직접투자(FDI)는 눈에 띄게 줄고 있다. 올 3분기 누적 FDI는 134억85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9.8% 급감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업 규제가 점점 강화되면서 한국이 투자처로서의 매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EU보다 센 환경·주52시간 압박"규제 소나기 펀치 맞는듯"산업용 접착제를 생산하는 유럽계 화학기업 P사는 한국 투자 계획을 최근 백지화했다. 한국에 생산 거점을 조성하면 물류비를 20% 정도 아낄 수 있었지만 최종 단계에서 베트남을 낙점했다. 강화되고 있는 화학물질 관련 규제가 발목을 잡았다. 주 52시간 근로제와 입김이 세지고 있는 강성 노조도 부담 요인이었다.한국을 외면하는 외국 기업이 늘고 있다. 과도한 기업 규제와 경직된 노동시장, 반기업 정서 확산 등의 영향이 크다. 싱가포르 등 경쟁국은 외국 기업 유치를 위해 파격적인 혜택을 제시하는 데 비해 한국은 있는 혜택마저 없애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외국계 기업 사장은 “계속 생기는 규제 때문에 ‘소나기 펀치’를 얻어맞는 기분”이라고 말했다.“이해하기 힘든 규제 많다”한국 투자 기피 현상은 통계로 확인된다. 29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 들어 3분기까지 제조업 외국인직접투자(FDI·신고 기준)는 34억7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전년 동기(83억7800만달러) 대비 58.7% 급감했다. FDI는 한국과의 지속적인 경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투자로 받아들여진다.외국 기업은 자국보다 강한 규제가 우후죽순으로 생기는 걸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화학물질관리 규제는 세계 최고 수준인 유럽연합(EU)보다 엄격하다. 화학물질 등록 규제가 좋은 사례다. 한국에선 새로 들여온 연구개발(R&D)용 화학물질에 신규 성분이 1㎎이라도 들어 있으면 정부에 ‘등록면제확인’을 받아야 한다. 유럽은 1t 미만 R&D용 물질에 대해선 규제하지 않는다. 관리 대상도 폭넓다. 한국 화관법의 관리대상물질은 세계 최고 수준인 1940종이다. 독일 기업 관계자는 “과도한 화학물질 관리 부담은 소재·부품산업 성장의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외국인 시각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규제도 적지 않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 외국계 기업 사장은 화관법 심사 때 지방자치단체에 제출하는 ‘등기이사 개인정보’를 사례로 들었다. 전과 조회 및 여권 정보 등을 제출해야 하는 지방환경청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일관성을 찾아볼 수 없다”고 꼬집었다.중복 규제로 ‘이중 비용’이 든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나온다. 수입차업계에선 이산화탄소 배출량 주행 테스트가 자주 거론된다. 예컨대 독일의 5만㎞ 기준 이산화탄소 배출량 주행 테스트를 통과해도 한국에서 2만㎞ 기준으로 다시 점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노동시장 경직성도 부담경직된 노동시장도 외국 기업의 발걸음을 다른 나라로 옮기게 하는 요인으로 평가된다. 주 52시간 근로제에 대해선 ‘유연성 있는 적용이 필요하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미국은 주 40시간 근로제를 시행 중이지만 초과 근무에 대해선 기업과 근로자가 ‘단체협약’으로 정할 수 있다. EU는 주 평균 48시간 근로가 원칙이지만 ‘근로자가 원하면 초과 근무가 가능하다’는 예외규정이 있다.주 52시간제 때문에 외국 기업의 약 99%인 중소업체의 인력 수급이 더 어려워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최근 2년간 가파르게 오른 최저임금 역시 중소 외국 기업 인력난을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한 외국 기업 관계자는 “주 52시간 근로제 중소기업 적용이 1년 유예됐다고 해도 결국 사람을 더 뽑아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라고 털어놨다.외국 기업과 소통해야정부가 기업 관련 규제를 신설하거나 혜택을 없앨 때 외국 기업과 소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큰 문제란 비판도 있다. 외국인투자촉진법의 조세감면 혜택 폐지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정부는 신성장동력산업에 투자한 외국 기업 등에 최장 7년간 법인세·소득세를 감면해주던 제도를 올해부터 없앴다. ‘국내 기업과의 불평등’이 주요 이유였다.상황이 이렇게 되자 한국을 신규 투자 지역에서 제외하는 외국계 본사가 늘고 있다는 게 한국 지사 관계자의 전언이다. 올초 충남 천안공장 신설을 포기한 세계 3위 자동차부품 업체 콘티넨탈그룹이 대표적이다. 외국계 기업 고위관계자는 “규제 자체도 문제지만 여론에 따라 기업 규제가 오락가락하는 불확실성을 본사가 더 크게 우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황정수/고재연 기자 hjs@hankyung.com
일본 수출규제를 계기로 한국의 소재·부품·장비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추진된 '소재·부품·장비산업 경쟁력강화를 위한 특별조치법'(소부장 특별법)이 27일 국회를 통과했다.이번에 전면 개정된 소부장 특별법은 2001년 제정된 이후 약 20년 만에 대상과 기능, 방식, 체계 등을 전면적으로 개편하고 2021년 일몰(종료) 예정이던 특별법을 상시법화한 것이다.법명을 '소재·부품전문기업 육성 특별조치법'에서 소재·부품·장비산업 경쟁력강화를 위한 특별조치법으로 바꾸고 정책 대상에 소재·부품 외 장비를 추가함으로써 기존 기업 단위 육성법에서 산업 중심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모법(母法)으로 전환했다.소부장 특별법은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핵심전략기술 선정, 특화선도기업 등 선정·육성, 인수·합병 지원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기술개발과 인력양성부터 신뢰성·성능 평가, 수요 창출 등 소재·부품·장비산업의 전(全) 주기를 지원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기업 간 협력모델을 발굴해 신청하면 경쟁력강화위원회 승인을 거쳐 범부처 차원에서 금융·입지·특례 등을 아우르는 패키지 지원을 제공한다.또 내년 2조1천억원 규모의 특별회계를 신설하기로 했다.법률은 공포 3개월 후부터 시행된다.산업부 관계자는 "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는 소재·부품·장비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국가적 과제로 지속적이고 일관성 있게 추진하는 동시에 관련 정책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법적 기반이 마련된 것"이라고 평가했다.산업부는 법 시행에 차질이 없도록 하위법령 개정 등 후속 조치를 조속히 진행하면서 국내 기술력 강화, 건강한 산업생태계 구축 등 입법 취지를 달성할 수 있도록 정책자원과 역량을 집중적으로 투입할 예정이다./연합뉴스
최근 반등장에서 기지개를 켜고 있는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관련주가 2020년 경자년에 공모주시장은 물론 주식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최대 고객사인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대장주가 업황 회복으로 주가에 탄력을 받으면서 이들 소부장 관련주도 덩달아 수혜를 입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소부장 업체를 대상으로 한 패스트트랙(상장 예비심사 기간을 줄여주는 제도) 도입, 예산 확대 등 정부 지원책이 강화된 것도 호재다. 전문가 사이에선 불확실성이 큰 바이오주 대신 영업 실적이 눈에 보이는 소부장주를 한동안 주목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공모주 시장 불패 신화 계속된다지난 10월 상장한 스마트팩토리 소프트웨어업체 티라유텍은 소부장 종목 인기 상승을 알린 신호탄으로 꼽힌다. 수요예측에서 1240 대 1이 넘는 사상 최고 경쟁률을 낸 이 업체는 26일 1만4450원에 장을 마쳤다. 공모가(1만2050원) 대비 19.9% 상승했다. 공모가 6000원으로 지난달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 자동차 부품제조업체 센트랄모텍은 이날 1만530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한 달 남짓한 기간에 2.5배 이상 주가가 올랐다. 이 회사의 일반 청약 경쟁률은 580.5 대 1이었다.소부장 기업에 한해 상장심사 기간을 30일 이내(영업일 기준)로 줄여주는 패스트트랙이 도입된 후 1호 업체로 주목받은 메탈라이프 역시 이날 종가는 2만6800원으로 공모가(1만3000원) 대비 두 배 이상 올랐다. 패스트트랙 2호 기업인 LED업체 서울바이오시스는 이달 상장 승인을 받고 내년 1분기를 목표로 상장 준비에 들어간다.이날 코스닥에 상장한 통신부품 제조업체 피피아이 또한 공모가 7000원에 비해 2630원(37.6%) 오른 9630원에 장을 마치며 소부장주의 인기를 과시했다.전통 소부장주도 상승세 뚜렷기존 소부장 관련주도 상승 탄력을 받고 있다. 특히 지난 13일 1단계 미·중 무역협상이 타결되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52주 신고가를 기록한 이후 소부장주의 반등폭이 커졌다. 반도체 관련주인 SK머티리얼즈(연초 대비 22.32% 상승), 솔브레인(74.97%), 테스(108.23%) 등이 대표적이다. 동진쎄미켐(120.93%), 에스앤에스텍(224.93%)은 올해 주가가 두 배 이상으로 뛰었다.소부장주를 담은 펀드도 높은 수익률을 내고 있다. NH아문디자산운용의 ‘필승코리아 펀드’는 8월 16일 설정된 이후 모펀드 기준 13.06%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한 달 전 수익률(7.83%)에 비해 1.7배가량 올랐다. 필승코리아 펀드는 현재 63개의 보유 종목 중 SK머티리얼즈, 솔브레인, 에스앤에스텍 등 40여 개를 소부장 종목으로 채웠다.내년에도 인기 계속될 듯증권업계에선 내년에도 소부장주 인기가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업황 부진으로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각각 53.9%, 86.0% 급감할 것으로 추정되지만 내년에는 D램 수요 증가로 큰 폭의 이익 개선이 예상된다. 미국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 역시 올해 9~11월 실적 발표에서 증권가 컨센서스(평균 추정치)를 웃도는 결과를 내놓는 등 최근 D램 가격 회복에 따른 반도체 업황 회복의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는 평가다.소부장주 주가가 최근 많이 올랐지만 투자 매력은 여전하다는 분석이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반도체 업황 사이클이 바뀌는 시점에서는 최근 주가가 얼마나 올랐는지보다는 이익 개선세가 얼마나 가파른지를 봐야 한다”며 “핵심 소부장주의 밸류에이션(실적 전망 대비 주가 수준)으로는 지금 투자해도 늦지 않다”고 조언했다.한경제/이우상 기자 hank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