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네 스베르드루프-튀게손의 책 '세상에 나쁜 곤충은 없다'

곤충은 그저 하찮고 귀찮고 위험하고 혐오스러운가? 이런 통념은 달라져야 한다.

곤충 없는 세계에선 인간 또한 생존할 수 없다.

곤충은 인간보다 훨씬 멀고 먼 옛날부터 지구상에서 살아왔다.

보전생물학자 안네 스베르드루프-튀게손(53)은 저서 '세상에 나쁜 곤충은 없다'로 곤충에 대한 기존의 통념을 180도 바꿔놓는다.

노르웨이생명과학대학교 교수인 저자는 밀리미터 단위에서 펼쳐지는 곤충들의 독특한 생활사와 놀라운 활약상을 다방면으로 들려준다.

농사짓고 가축 치는 개미, 노래로 먹이를 유인하는 베짱이, 은하수 따라 걷는 쇠똥구리 등등의 곤충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노라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그리고 하찮은 것만 같았던 곤충에 대한 시선이 어느새 다정함으로 바뀐다.

어디 그뿐일까.

지구를 쥐락펴락하는 진짜 주인은 바로 곤충이다.

작고 이상하고 복잡하고 희한한 존재인 듯싶지만, 알고 보면 지구야말로 곤충들의 행성임을 깨닫게 된다.

이번 책은 곤충의 놀라운 다양성과 탄생 과정, 이들이 주위를 감지하는 방식을 다룬 데 이어 곤충과 다른 동물, 곤충과 식물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자세히 파헤친다.

더불어 인간과 곤충의 밀접한 관계도 깊숙이 들여다본다.

인간은 자신의 덩치가 더 크고 힘이 더 세다는 이유만으로 곤충의 정체를 쉽게 예단한다.

하지만 연공서열로 생태 피라미드를 재구성할 경우 인간은 곤충 앞에서 잔뜩 움츠러든 채 고개조차 들지 못할 것이다.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상에 등장한 것은 고작 20만 년 전. 이에 반해 곤충의 나이는 무려 4억7천900만년이나 된다.

공룡도 피해가지 못한 대멸종을 곤충은 무려 다섯 번이나 겪고도 거뜬히 살아남았다.

농사를 봐도 그렇다.

인간의 농업 혁명은 불과 1만 년 전에 시작됐지만, 개미와 흰개미는 이미 5천만 년 동안 제 나름의 농사를 지어왔다.

곤충에 비하면 인간은 늦어도 너무나 늦었다.

곤충은 수적으로도 압도적 우위를 점한다.

현재 지구 생물종의 절반이 바로 이 곤충이다.

인구 한 명당 2억 마리가 넘는 곤충을 내부에 안고 있고, 바닷가 모래알 수보다 많은 곤충들이 오늘도 우리 주변을 무수히 기어다니거나 날아다닌다.

저자는 싫든 좋든 지구상에서 가장 성공한 동물이 곤충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곤충이 성가시다는 생각이 들면 이 동물은 공룡이 나타나기 훨씬 전부터 지구에 살아왔다는 사실을 떠올리자. 그 사실만으로도 최소한 존경을 받을 자격이 있으니까.

"
엄청난 숫자도 숫자려니와 곤충의 특이한 생김새와 놀라운 능력 또한 감탄을 자아낸다.

고도 6천 미터가 넘는 뜨거운 온천에서도 거뜬히 살아남았던 곤충은 다양한 크기와 형태, 색을 갖도록 천태만상으로 진화했다.

그 결과로 눈은 엉덩이에, 귀는 다리에, 혀는 발에 달린 희한한 것들이 부지기수로 생겨났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는 속담이 있다.

무능해 보이는 사람이라도 쓸 만한 재주 하나 정도는 있다는 뜻. 곤충 세계에서 이 말은 결코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사실 그 자체이다.

저자는 한 예로 지난해 중국에 들어선 '바퀴벌레 공장'을 든다.

이 공장은 맵든 짜든 음식이라면 가리지 않고 왕성한 식욕을 과시하는 바퀴벌레 10억여 마리로 하루에 55t의 음식물 쓰레기를 속속 처리한다.

이는 우리나라 중소도시에서 발생하는 하루 음식물 쓰레기 처리량과 맞먹는다.

요컨대, 우리를 먹이고 살리고 보호하는 존재인 곤충의 규모와 역량은 실로 무궁무진하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우리 인간이 곤충에 의존해서 살아가므로 그들의 안녕은 우리에게도 중요하다"면서 "인간에게 필수적인 꽃가루받이, 유기물 분해, 토양 형성에는 곤충이 반드시 필요하다.

곤충은 다른 동물의 먹이가 되고 해로운 생물의 수를 조절하고 식물의 종자를 퍼뜨린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들이 문제를 해결해온 영리한 방법들은 인간에게도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새로운 영감을 준다.

곤충은 이 세계가 돌아가게 해주는 자연의 작은 톱니바퀴다"고 덧붙인다.

웅진지식하우스. 조은영 옮김. 288쪽. 1만6천원.
"지구는 곤충 행성"…놀랍고 신기한 곤충들의 이야기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