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권의 호모글로벌리스(32)] 세계의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는 기독교인들의 최대 축제다. 영어로 ‘그리스도(Christ)의 미사(mass)’를 의미한다. ‘X-mas’라고 쓰기도 하는데 X는 그리스어로 그리스도의 첫 글자를 의미한다. 크리스마스가 12월 25일로 고정되고 본격적으로 축하하게 된 것은 교황 율리우스 1세 때부터다. 4세기 말에는 기독교 국가 전체의 축일이 됐다. 오늘날 크리스마스는 종교나 인종을 초월해 세계인의 대표적인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경축 행사는 각국의 문화, 풍습 및 정책에 따라 다르다.

일부 국가에서는 종교적 이유로 크리스마스 축하를 금지한다. 사우디아라비아, 예멘, 타지키스탄, 알제리, 리비아, 튀니지, 아프가니스탄, 우즈베키스탄, 소말리아에서는 공공장소에서 축하행사를 하는 것을 금지한다. 브루나이에서는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무슬림을 최고 5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 공휴일로 인정하지는 않지만 기독교인들의 예배를 허용하는 이슬람 국가도 있다. 이란, 아랍에미리트, 파키스탄 등이다. 북한도 크리스마스를 기념하지 않는다.

[박희권의 호모글로벌리스(32)] 세계의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를 두 번 기념하기도

크리스마스를 두 번 기념하는 나라도 있다. 벨라루스, 에리트레아, 레바논, 몰도바, 우크라이나 등이다. 이는 1582년 교황 그레고리 13세에 의해 개정된 달력과 관계가 있다. 그레고리 달력은 BC 45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채택한 율리우스력을 바로잡기 위해 개정한 달력이다. 이 달력은 1752년 영국에서, 1918년 러시아에 의해 채택됐다. 무신론 정책을 표방한 소련은 크리스마스를 공휴일로 인정하지 않았다. 소련 연방이 붕괴된 뒤 독립한 국가들은 크리스마스 날짜를 선택해야 했다.

러시아는 과거 율리우스 달력에 따라 1월 7일을 크리스마스로 축하한다. 벨라루스는 1991년 독립 후 두 개의 날짜를 모두 크리스마스로 인정했다. 몰도바는 동방정교회의 1월 7일을 크리스마스로 택했으나, 그 후 유럽연합(EU)과의 관계 증진을 위해 12월 25일을 추가했다. 여러 종파가 공존하고 있는 레바논은 평화 유지를 위해 각 종파의 종교를 인정한다. 이런 이유에서 레바논은 아르메니아 정교의 크리스마스인 1월 6일을 오래전부터 인정해 왔다. 우크라이나 역시 유럽화의 일환으로 12월 25일을 공휴일로 인정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민이 정교를 믿는 우크라이나는 1월 7일을 크리스마스로 축하한다.

크리스마스 하면 빨간 옷을 입고 빨간 모자를 쓴 산타클로스가 순록이 끄는 썰매를 타고 오는 모습을 상상하기 쉽다. 그러나 순록 루돌프는 상업적 목적에 따라 미국에서 탄생한 캐릭터다. 과거 산타는 거위가 끄는 썰매를 타거나 자전거, 자동차, 비행기까지 타고 다녔다. 오늘날 호주에서는 캥거루가 썰매를 끈다. 네덜란드에서는 산타가 흰 말을 타고 돌아다니며 아이들에게 선물을 준다. 오스트리아에서는 도깨비 ‘크람푸스’가 마스코트다.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는 더 큰 명절은 ‘동방박사의 날’로 매년 1월 6일이다. 스페인 등 남부 유럽이나 중남미 국가에서는 동방박사의 날을 크리스마스보다 더 의미 있는 날로 여긴다. 이날 온 가족이 모여 선물을 주고받으며 음식을 나눈다. 전야제에는 화려한 퍼레이드 행사도 펼쳐진다. 이들 나라에서는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때부터 1월 6일 동방박사의 날까지 축제 분위기가 이어진다.

크리스마스는 ‘나누는 날’이다. 예수를 보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기쁨을 나누기 위해 선물을 교환한다. 부모는 산타클로스의 이름을 빌려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준다. 사랑하는 사람들도 선물을 주고받는다. 오 헨리의 ‘동방박사의 선물’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통해 부부간의 애틋한 사랑과 희생을 그린 작품이다.

사랑을 나누고 실천하는 날

로스 페로는 미국의 억만장자이자 대통령 후보에까지 나섰던 정치인이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9년 닉슨 행정부는 미군 전쟁포로를 위해 페로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페로는 베트남에 억류돼 있는 모든 미군 포로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수천 명의 포로를 위한 선물을 준비했고 자비로 비행기를 전세 냈다. 그러나 북베트남은 선물을 실은 비행기의 입항을 막았다. 그는 고심 끝에 공중에서 선물을 뿌렸다.

이탈리아 작곡가 자코모 푸치니는 매년 크리스마스에 케이크를 구워 친구들에게 돌렸다. 어느 해 크리스마스 직전 푸치니는 지휘자인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와 싸웠다. 기분이 상한 그는 토스카니니에게 발송했던 케이크를 취소하려고 했다. 그러나 때는 늦었다. 케이크가 이미 전달됐던 것. 화가 난 푸치니는 토스카니니에게 전보를 쳤다. “케이크가 잘못 발송됐음.” 전보를 읽은 토스카니니는 바로 답전을 쳤다. “실수로 먹어 버렸음.” 사랑과 평화의 크리스마스 정신이 개인, 인종이나 종교 간 차이와 갈등을 초월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기를 기원한다.

박희권 < 글로벌리스트·한국외국어대 석좌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