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관념에 도전하는 스콧 예일대 교수 신간 '농경의 배신'

"아득한 옛날 들판을 뛰어다니며 수렵, 채집으로 생계를 꾸리던 인간들은 동물과 식물을 길들여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정착 생활을 하게 됐고 곡물의 잉여생산이 인구 증대와 계급분화를 초래해 마침내 국가가 형성됐다.

사람들은 비로소 야만 상태를 벗어나 문명 세계를 건설하게 됐다.

"
이것이 대부분의 사람이 이해하는 고대사의 큰 흐름이다.

그러나 최근 번역 출간된 제임스 스콧 예일대 교수의 책 '농경의 배신'(책과함께 펴냄)은 이 같은 통념에 도전한다.

전공 분야인 정치학과 인류학은 물론 생물학, 역학(疫學), 고고학, 인구학, 환경역사학 등 다양한 연구 결과를 검토한 끝에 저자는 농경이 정착 사회를 이루기 위한 선행조건이 아니며 정착 사회와 국가가 필연적인 것도, 인간의 행복을 보장해주는 것도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다.

저자에 따르면 정착 생활에 대한 산발적 증거들은 기원전 12000년부터 발견되고 밀·보리·쌀 등 주요 '원조 작물'이 재배된 것은 기원전 8000~6000년 전이다.

성벽에 둘러싸인 '원시적 국가'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3100년 무렵이다.

처음 농경·정착 생활을 시작한 지 4천년도 더 지나서야 국가가 생겨났다는 것은 일단 작물 재배와 정착 생활이 성립하면 국가가 즉각 등장한다고 상정한 이론이 잘못임을 보여준다고 한다.

400년 전까지만 해도 지구의 3분의 1은 여전히 수렵·채집을 하는 사람들, 목축하는 사람들, 독립적으로 농사짓는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동남아시아에서는 고전적 형태의 국가가 800년을 전후해 등장했다.

아주 최근까지도 동남아에서는 우기가 찾아오면 권력을 펼 수 있는 국가의 실질적 능력은 궁정 담장 안으로 한정됐다.

국가는 이전 추정들과 달리 인구 집중화의 수단으로 작물을 길들이지도 않았고 처음으로 물을 끌어와 농사를 짓지도 않았다.

이는 모두 국가 형성 이전부터 이미 인류가 해오던 일이었으나 일단 국가가 형성되고 나면 그 권력의 기초가 되는 농생태 환경을 유지하고 증폭하고 확대하는 경우가 많았다.

국가가 가장 강성할 때에도 그 구성원들이 국가의 경계를 벗어나 뛰쳐나가려는 원심력은 늘 작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중국의 만리장성은 야만인들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것 못지않게 중국인 납세자들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는 것이 목적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국가의 영역 밖에 존재하는 사람들을 칭하는 '야만인'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 '바바리안(barbarian)'은 그리스 사람들이 그리스어 이외의 언어를 조롱해 모방하는 말 '바-바'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저자는 그러나 '야만인'을 문화적 범주가 아니라 '국가에 의해 관리되지 않는 인구집단'을 가리키는 정치적 범주로 파악한다.

수천 년 동안 정착생활과 비정착생활의 방식들 사이에서 끊임없는 교류와 변화가 있었고 그 중간에 혼합된 여러 선택지가 있었다는 점에서 정착생활을 기준으로 '야만인=비문명인'을 분류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지적이다.

또 국가 형성 과정에서 일부는 국가 밖으로 쫓겨났으며 일부는 전염병, 흉작, 홍수 등으로 인해 스스로 국가 밖으로 달아난 사람도 많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국가 안의 문명인'과 '국가 밖의 야만인'이라는 이분법이 잘못임을 알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였던 원시적 무질서를 회피하기 위해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국가에 권력을 위임했다는 것이 서구에서 국가 형성의 기원을 설명하는 주류 이론이었다.

그러나 저자 논리를 받아들인다면 이런 정치사상의 토대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국가 없이도, 정착해 살지 않아도 사람들은 충분히 건강하고 행복했으며 국가가 붕괴하거나 해체된 동안도 반드시 '암흑시대'라고 부를 이유는 없었다.

저자는 "국가를 이루고 사는 사람들과 국가를 이루지 않고 사는 사람들, 농경민과 채집민, 야만인과 문명인은 현실적으로나 기호학적으로나 쌍둥이다"라고 썼다.

전경훈 옮김. 392쪽. 2만2천원.
"정착해 농사짓고 국가를 이루는 게 문명이라고?"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