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내년 경제전망이 의미 없는 이유
벽에 걸린 달력이 이제 마지막 잎사귀처럼 달랑 한 장 남았다. 어느새 연말이다. 시간은 이렇게 때가 되면 어김없이 찾아와 날 선 손익계산서를 내미는 동시에 새로운 신년 계획서를 요구한다.

생각해보면 연말이나 연시라고 딱히 특별할 것은 없다. 12월 31일과 1월 1일의 차이를 체감할 정도로 우리의 생체시계는 그렇게 예민하지 않다. 그럼에도 연말은 사람들을 들뜨게 한다. 아니 정확히는 들뜨게 했었다. 과거 이맘때면 흔히 보던 ‘연말연시는 가족과 함께’라는 공익광고 표어는 실종된 지 오래다.

언젠가부터 시인 이상과 같은 천재가 아닌 보통사람들의 삶도 박제화되고 있다. 한 해가 지나가는 이 시점에 약간의 도파민이나 아드레날린 증가마저도 기대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 사회는 무기력증에 빠져 있다.

필자가 초등학생 시절 부모님 손을 잡고 지금은 창경궁으로 원상회복된 창경원 동물원에 다녀온 적이 있다. 입장하자마자 호랑이를 보러 갔는데 그때 받은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 필자가 봤던 호랑이는 ‘벵가리’라는 이름과 달리 서커스단에서 사들인 시베리아호랑이였다. 체중이 300㎏은 족히 넘어 아마 지금까지 한국 동물원에 있던 호랑이 중 가장 큰 개체일 것이라 짐작된다. 그 엄청난 크기에도 놀랐지만, 또 하나 놀란 건 그렇게 큰 호랑이가 좁은 우리에서 일정한 속도로 왔다 갔다 하는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었다. 잊히지 않는 것은 그 호랑이의 눈에 비친 체념과 분노다. 그런 행동이 ‘정형행동’이란 일종의 정신병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은 세월이 한참 지난 뒤였다.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문득 그때 본 호랑이의 눈빛이 떠오른다. 달라질 것 없는 매일의 반복, 뭔가 내일은 다를 것이란 희망이 사라진 일상, 그에 따르는 체념과 분노…. 영화 ‘사랑의 블랙홀(Groundhog Day)’에서 같은 하루가 매일 반복되는 시간의 함정에 빠진 주인공처럼 그 호랑이의 일상이나 우리 사회의 일상이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연말이 되니 내년 한국 경기와 금융시장 전망에 대해 얘기할 기회가 많다. 굳이 시간을 채울 필요성만 없다면 한국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의 과거 추세 하나만 보여주면 될 듯하다. 그 그림만 봐도 단박에 두 가지를 알 수 있다. 증가율이 추세적으로 낮아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진폭의 크기, 즉 변동성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성장률의 추세적 전환, 즉 잠재성장률 하락이야 주지의 사실이지만 진폭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에 놀랄 것이다. 작년 정부 내에서도 경기 정점 시기를 두고 논란이 일었지만, 필자의 눈엔 별 의미없는 논쟁으로 보였다. 경기 진폭이 축소된 만큼 호황이나 불황을 체감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경제성장률의 진폭은 경기순환(business cycle)의 크기를 좌우한다. 따라서 성장률의 진폭이 줄어든다는 것은 경기순환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기순환은 ‘적정한’ 수준으로 이뤄져야 한다. 적정한 수준의 경기침체는 조지프 슘페터가 지적했듯 과소비로 인한 인플레이션이나 한계기업과 같이 경기과열로 인해 생성된 경제 체내의 독소를 배출하고, 더 생산성 높은 산업으로 자원이 재분배되는 순기능을 한다. 따라서 경기순환의 변동성이 과도하게 확대되는 것도 문제지만, 과도하게 축소되는 것도 문제다.

한국 경제의 변동성이 위축되고 있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자원 배분의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방증이다. 중화학공업 같은 기존 산업의 경쟁력이 약화하고 그 와중에 한계기업은 저금리와 재정지원으로 퇴출되지 않는 반면, 신산업은 각종 규제로 싹을 틔우지 못하고 인력과 자금 공급도 원활하지 않다. 이로 인해 잠재성장률은 하락하면서 경기순환의 변동성은 축소되는 것이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 오늘과 다르지 않은 내일, 그것이 바로 한국 경제의 자화상이다. 그래서 ‘경제전선 이상 없다(All quiet on the economic front)’가 곧 ‘경제전선 뭔가 이상 있다(Something amiss on the economic front)’로 읽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