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중심주의 벗어난 클라이브 폰팅 책 잇따라 발간
'클라이브 폰팅의 세계사'·'클라이브 폰팅의 녹색 세계사'

서구 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 세계의 그 어느 지역에도 편중되지 않는 폭넓은 관점으로 세계사를 다루는 영국 사학자 클라이브 폰팅의 주저 2권이 잇따라 번역 발간됐다.

'클라이브 폰팅의 세계사(원제 World History: A New Perspective) 1, 2'와 '클라이브 폰팅의 녹색 세계사(A New Green History of the World: The Environment and the Collapse of Great Civiliztion)'이다.

저자는 '클라이브 폰팅의 세계사'에서 그리스·로마 이래로 유럽이 우월한 문명을 수립하고 세계를 선도해 왔다는 오스발트 슈펭글러나 아널드 토인비에서 윌리엄 맥닐에 이르는 서구 '주류 역사학'의 시각을 거부한다.

저마다 분석의 방법과 방향은 다르지만 서구중심주의라는 점에서는 동일한 카를 마르크스, 막스 베버,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접근법도 반대한다.

그에 따르면 유럽은 문명의 등장 이후 약 5천년 동안 문명의 주변부에 지나지 않았으며 1500년에서 1750년 사이에 이르러서야 '동양'의 거대 제국에 맞먹는 부와 힘을 갖추기 시작했다.

송나라는 영국보다 700년가량 앞선 11세기 중반에 거의 '산업혁명의 목전'에 도달했다.

1076년 송의 철 생산량은 12만5천t에 달했던 데 비해 1788년 잉글랜드는 7만6천t에 그쳤다.

더구나 이때의 송은 7세기 후 잉글랜드와 마찬가지로 코크스를 용광로에 집어넣는 선진적인 방식으로 철을 생산했다.

철의 생산 급증은 구리, 납, 주석 등 다른 금속의 생산 증대로 이어졌으며 후방 산업인 무기 제조도 크게 활기를 띠었다.

직물 산업에서도 1090년대 발판으로 비단을 감는 기계에 이어 1세기 뒤에는 수력을 동력으로 삼고 기계 하나에만 축이 32개씩 달린 복잡한 기계도 등장했다.

그렇다면 유럽이 세계적 우위를 점하게 된 것은 언제, 어떤 계기로 가능했을까.

저자는 유라시아의 서쪽 끝에 있어 아메리카 대륙의 부를 약탈할 수 있었던 유럽의 '지리적 우연'이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또 고립된 아메리카 대륙의 기술 수준이 낮았던 점과 그곳 사람들이 유라시아의 질병에 대한 면역 체계를 갖지 못한 것도 정복과 약탈을 유리하게 했다고 지적한다.

유럽은 이어 18세기 중엽 이후 이뤄진 산업발전을 통해 '잠시나마' 나머지 세계에 대한 주도권을 쥘 수 있었다.

21세기 들어 대서양 세계가 쇠퇴하고 태평양으로 힘의 축이 이동된 것은 저자가 볼 때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며 '좀 더 정상적인 균형 상태'로 돌아온 것에 불과하다.

이 책에서는 이 밖에도 세계사의 '상식'에 속하는 관점들을 부인하는 설명을 곳곳에서 발견하게 된다.

'이집트는 문명의 발상지가 아니었다'라거나 '유라시아는 단일한 역사 지역이었다', '고전시대나 중세시대와 같은 시기 분류는 서양적 역사관에만 적용될 수 있을 뿐 보편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와 같은 논리다.

이런 관점에서 저자는 문명별로 세계사를 재정리하는 작업을 건너뛰고 지역별로 어떤 일이 일어났으며 각 지역과 국가가 어떻게 교류했는지를 시대순으로 서술하는 데 주력한다.

세계사를 개괄하는 책들이 빠트리지 않는 르네상스에 대해서도 별도의 장을 배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전 문화를 보존하고 발전 시켜 서유럽에 전해 준 이슬람 세계에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민음사. 왕수민·박혜원 옮김. 1권 856쪽, 3만5천원. 2권 620쪽, 2만8천원.
영국보다 700년 앞서 '산업혁명 문턱'까지 간 송나라
한편 '클라이브 폰팅의 녹색 세계사'는 수많은 위대한 문명의 붕괴 뒤에는 환경이라는 원인이 있음을 규명한다.

1991년 이 책이 처음 출간됐을 때 반향은 컸고 저자는 '빅 히스토리의 개척자'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저자는 '자연환경에 대한 도전과 응전'이라는 인간 중심의 서사를 거부한다.

그 대신에 인류 역사 자체를 환경과 인간의 상호작용이라는 관점으로 파악한다.

저자에 따르면 인류 역사의 99%는 생존이 유일한 과제였던 시기였으며 채집과 수렵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았다.

그러나 농업의 채택으로 대전환을 맞게 됐다.

수메르인들이 늘어난 인구를 집약적인 관개농업으로 부양하고 쉴 새 없이 물을 댄 결과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사이는 염분을 가득 머금은 땅으로 변하고 말았다.

인더스강 유역에서도, 지중해 연안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오늘날 지중해라고 하면 떠올리는 올리브 나무도 사실은 기원전에 일어난 삼림파괴의 결과일 뿐이다.

과도한 벌목으로 쇠퇴한 석회질 토양에서 자랄 수 있는 식물이 올리브 나무뿐이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인류사에 명멸해 간 수많은 문명은 환경이 주는 역경을 극복하고 우뚝 선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해결책으로 여겼던 것이 가져다준 부작용으로 말미암아 붕괴하는 일이 더 많았음을 저자는 역설한다.

매우 저렴하고 안정적인 기체로 냉장고와 에어컨, 캔 스프레이 등에 쓰인 염화플루오린화탄소(CFC)가 오존층을 파괴한다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저자는 환경단체들이 움직이고 소비자들도 불매운동에 동참하고 결국 국가 간 협약을 통해 CFC를 퇴출한 것을 '작지만 큰 성공'이라고 평가하고 "그 무엇보다 행동에 나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민음사. 이진아·김정민 옮김. 636쪽. 2만8천원.

영국보다 700년 앞서 '산업혁명 문턱'까지 간 송나라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