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30일,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싸워온 이춘식(95) 옹이 13년 8개월 만에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승소했다.

처음 소송을 제기한 네 사람 중 생존자는 이씨 혼자였다.

역시 100세를 바라보는 고령이었던 여운택, 신천수, 김규수 옹은 기나긴 소송 과정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들 세 고인은 영정사진으로 대법정에 들어갔다.

승소에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기자와 변호사로 구성된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2016년 12월부터 3년 동안 사법 농단의 궤적을 좇아 '재판 거래'의 민낯들을 파헤쳤다.

제주 간첩 조작 사건, 인혁당 재건위 사건, 대구 10월 사건, 전교조 교사 빨치산 추모제 사건, 통진당 정당 해산 심판, KTX 승무원 해고 등 한국의 어두운 근현대를 주목한 것이다.

언론인 이명선·박상규 씨와 변호사 박성철 씨의 공저 '거래된 정의'는 이들 사건으로 국가와 사법부가 어떻게 보통 사람의 인생을 바꿔놨는지 살폈다.

이와 관련해 초점이 된 인물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이들의 운명과 양 전 대법원장의 행적이 직접적으로 연관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57명의 산 자와 14명의 죽은 자를 만나 양 전 대법원장과 그의 사법부로 대변되는 견제 받지 않은 권력 기관이 한국 사회에 어떤 사회적 참상을 낳았는지 돌아봤다.

책은 모두 2부로 구성돼 있다.

제1부 '양승태의 법관 시절 1975~2004)'는 양 전 대법원장이 청년 법관 시절부터 일찌감치 권력과 유착해 판결을 내리며 승승장구한 과정을 담았다.

이어 2부 '양승태의 대법관·대법원장 시절 2005~2017'은 인혁당 재건위 시건에서 KTX 승무원 해고까지 사법부 특조단의 공개 문건으로 드러난 '재판 거래'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이 가운데 앞에서 언급한 이옹의 소송 실체는 지난해 5월 사법행정권 남용의혹관련 특별조사단(특조단)이 공개한 문건을 통해 드러났다.

2013년에서 2015년에 걸쳐 청와대-사법부-외교부 간의 비밀회동 정황이 밝혀진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2015년 말, 피해 당사자의 동의 없이 일본 정부로부터 10억엔을 받고 위안부 문제의 합의 타결도 발표한다.

이탄희 변호사는 추천의 글에서 "정의를 향한, 소박하지만 간절한 믿음을 배반당한 사람들에 관한 뜨거운 기록"이라면서 "애초에 왜 사법기관을 만들었는지, 판검사들의 마땅한 책무가 무엇인지, 이 책을 통해 해답을 얻기 바란다"고 말했다.

후마니타스. 396쪽. 1만8천원.
'재판 거래' 피해자들의 목소리 담은 '거래된 정의'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