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만행 세계에 알리고 강제동원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위해" 일제가 운영한 8개 조병창 가운데 현존하는 유일한 조병창
일제강점기 일본육군의 무기 제조공장인 조병창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활동이 추진돼 실현 가능성에 관심이 쏠린다.
인천 부평문화원은 11일 부평미군기지 '캠프마켓' 내 조병창 건물들을 비롯해 인근 미쓰비시 줄사택과 지하토굴 등 부평에 조성된 일제강점기 전쟁유적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부평문화원은 조만간 역사전문가 등 10명 안팎으로 전담팀(TF)을 구성, 조병창의 세계유산 등재 추진 작업을 본격화할 방침이다.
앞서 부평문화원은 지난 10∼11월 부평역사박물관에서 '인류의 찬란한 문화,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란 주제로 8차례 강연을 진행하면서 조병창의 세계유산 등재 추진 당위성을 시민에게 설명하기도 했다.
부평문화원은 전범국인 일본이 1995년 히로시마 원폭 돔을 세계유산에 등재하는 등 침략 전쟁의 기억을 지우고 있지만, 정작 일제의 가해시설을 교훈으로 삼은 사례는 없다는 점에 주목한다.
특히 부평 조병창은 일본이 1940년대 아시아태평양 전쟁 후반에 운영한 8개의 조병창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시설이어서 보존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받는다.
조병창과 같은 유적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 일제의 만행을 세계에 알리고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는 측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부평문화원은 기대한다.
신동욱 부평문화원장은 "일본은 침략전쟁의 가해자이면서도 피해자인 것처럼 왜곡하기 위해 일본 내 조병창 6개, 중국 만주 조병창 1개를 모두 없앴다"며 "부평 조병창은 해방 후 주둔한 미군기지 안에 있어 보존됐는데 이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해 역사의 교훈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아픈 역사를 직시하며 관련 시설을 세계 유산으로 등재한 사례는 다른 나라에서도 드물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유대인 대학살이 이뤄진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인종차별 정책에 반대하는 정치범을 수용한 남아프리카공화국 로벤섬, 현대판 노예 노동계약이 시작된 모리셔스 '아프라바시 가트'는 마주하기 불편하지만, 그래도 기억해야 하는 역사적 장소를 세계 유산으로 등재한 사례다.
다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절차와 기준이 간단한 것만은 아니다.
시도지사가 세계문화유산 등재 대상을 문화재청에 신청하면, 문화재청이 등재 신청서를 유네스코 사무국에 제출하고 세계유산위원회가 최종적으로 등재 여부를 결정하기까지 모두 14단계를 거쳐야 한다.
이런 절차 못지않게 세계 유산 등재를 위해 중요한 것은 신청 대상 시설이 보편적 가치와 완전성·진정성을 보유했는지 여부다.
완전성이란 유산의 가치를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제반 요소를 보유한 정도를 의미하고, 진정성은 문화적 가치가 진실하고 신뢰성 있게 표현될 수 있는 정도를 뜻한다.
부평문화원은 조병창이 반전 평화의 메시지를 확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편적 가치가 뛰어나다고 보고 있다.
또 조병창이 해방 후에는 부평미군기지 안에 포함돼 관련 시설이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되며 역사적 가치를 유지했기 때문에 완전성과 진정성 측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전문가들은 조병창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면 우선 관련 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이를 토대로 효율적인 보존·관리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조병창·미쓰비시 줄사택·지하토굴 등 부평의 전쟁 유적을 연결하는 역사탐방 코스를 정례적으로 운영해 시민 공감대를 넓히고, 전담조직 구성과 함께 연구용역사업을 시행하며 세계 유산 등재를 위한 구체적인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정혜경 '일제강제동원 & 평화연구회' 연구위원은 "조병창을 비롯한 아시아태평양전쟁 유적은 가슴 아픈 역사 현장을 넘어 평화를 위한 마중물이자 반전 평화교육의 현장이라는 점에서 한국사회의 또 다른 자산"이라며 "유네스코 세계 유산 등재를 통해 새로운 역사가 더욱더 높은 차원에서 확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