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高인플레 막아 '명성'…폴 볼커 前 Fed 의장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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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은행규제 '볼커 룰' 도입
2011년 한경인재포럼에 참석
"제조업이 경제의 살 길" 강조
2011년 한경인재포럼에 참석
"제조업이 경제의 살 길" 강조
1979년부터 8년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을 지낸 폴 볼커가 9일 사망했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향년 92세. 그는 대담한 금융 긴축을 단행하고 미국 경제를 괴롭히던 인플레이션을 막아낸 인물로 유명하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금융 규제를 강화하는 ‘볼커 룰’을 입안하기도 했다.
그는 뉴욕연방은행 총재 등을 거쳐 1979~1987년 지미 카터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에서 Fed 의장을 지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오바마 행정부에서 백악관 경제회복 자문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그는 Fed 의장에 취임할 당시 인플레이션 퇴치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면서 정책 금리를 20%로 높였다. 그 부작용으로 심각한 경기 후퇴를 초래했지만, 그 후 큰 안정의 기초를 다졌다.
레이건 대통령 시절 이후 볼커는 인플레이션 퇴치에 성공한 뒤 차츰 미국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미국 경제의 장기 호황 기반을 닦았다”는 재평가를 받았다. 독일 경제학자 헨리 카우프만은 볼커를 “20세기 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중앙은행장”이라고 극찬했다.
볼커의 통화 긴축은 경제학사적으로 케인스학파에 대한 통화주의의 ‘KO승’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통화주의는 인플레이션을 통화 증가의 결과로 설명하는 이론이다. 시카고학파의 거두 밀턴 프리드먼이 주창했다. 볼커의 인플레이션 퇴치 이후 통화주의는 전 세계 중앙은행의 핵심 원칙으로 자리잡았다.
1987년 Fed 의장에서 퇴임한 후에도 투자은행의 최고경영자를 맡는 등 금융계 일선에서 활약했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쇼크 직후에는 오바마 대통령의 부탁을 받아 금융시스템 재건을 담당하는 미국 경제 회복 자문위원회 위원장에 취임해 금융회사 고위험 투자를 제한하는 ‘볼커 룰’을 도입했다.
볼커의 긴축은 백악관이나 미 의회의 강한 반발도 불렀지만, 인플레이션을 봉쇄한 공적으로 독립된 중앙은행의 중요성을 각인시켰다.
약 2m의 거구였던 볼커는 2011년 한국경제신문사가 주최한 인재포럼에 참석해 “제조업이 미국 경제의 살길”이라고 강조하면서 젊은이들이 월스트리트보다 과학 공학 분야에 진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춘호 선임기자 ohchoon@hankyung.com
그는 뉴욕연방은행 총재 등을 거쳐 1979~1987년 지미 카터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에서 Fed 의장을 지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오바마 행정부에서 백악관 경제회복 자문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그는 Fed 의장에 취임할 당시 인플레이션 퇴치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면서 정책 금리를 20%로 높였다. 그 부작용으로 심각한 경기 후퇴를 초래했지만, 그 후 큰 안정의 기초를 다졌다.
레이건 대통령 시절 이후 볼커는 인플레이션 퇴치에 성공한 뒤 차츰 미국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미국 경제의 장기 호황 기반을 닦았다”는 재평가를 받았다. 독일 경제학자 헨리 카우프만은 볼커를 “20세기 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중앙은행장”이라고 극찬했다.
볼커의 통화 긴축은 경제학사적으로 케인스학파에 대한 통화주의의 ‘KO승’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통화주의는 인플레이션을 통화 증가의 결과로 설명하는 이론이다. 시카고학파의 거두 밀턴 프리드먼이 주창했다. 볼커의 인플레이션 퇴치 이후 통화주의는 전 세계 중앙은행의 핵심 원칙으로 자리잡았다.
1987년 Fed 의장에서 퇴임한 후에도 투자은행의 최고경영자를 맡는 등 금융계 일선에서 활약했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쇼크 직후에는 오바마 대통령의 부탁을 받아 금융시스템 재건을 담당하는 미국 경제 회복 자문위원회 위원장에 취임해 금융회사 고위험 투자를 제한하는 ‘볼커 룰’을 도입했다.
볼커의 긴축은 백악관이나 미 의회의 강한 반발도 불렀지만, 인플레이션을 봉쇄한 공적으로 독립된 중앙은행의 중요성을 각인시켰다.
약 2m의 거구였던 볼커는 2011년 한국경제신문사가 주최한 인재포럼에 참석해 “제조업이 미국 경제의 살길”이라고 강조하면서 젊은이들이 월스트리트보다 과학 공학 분야에 진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춘호 선임기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