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증시에서 한국이 유난히 부진한 원인 가운데 하나는 외국인 자금의 대규모 이탈이다.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은 최근 한 달간 5조원어치 주식을 팔아치웠다. 이재만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신흥국 주식형펀드로 최근 6주 연속 글로벌 자금이 유입되고, 같은 기간 중국 A주(본토증시)로도 15조원(921억위안) 규모의 외국인 순매수가 들어왔다”며 “글로벌 투자자가 한국에만 유독 냉담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이 한국 증시를 외면하는 주된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와 증시에 대한 신뢰 저하를 꼽는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미·중 무역갈등에 다른 나라보다 더 많이 휘둘리다 보니 내년 기업 이익이 20% 넘게 늘어난다는 전망이 나와도 잘 믿지 않는다”며 “한국 증시는 빠질 땐 많이 빠지고 오를 땐 조금 오르는 재미없는 시장이란 인식도 외국인이 관심을 끊는 이유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아시아 신흥국에서 한국과 경제 구조가 가장 비슷한 나라가 대만인데, 이번 무역갈등에 대만이 더 잘 대처했다는 평가가 나온다”며 “투자자도 한국보다 대만을 선호하는 모습”이라고 했다. 대만은 미·중 무역갈등이 터진 뒤 적극적인 유인책으로 중국에 나가 있던 자국 기업을 불러들여 국내 투자가 오히려 증가했다. 상장사 평균 주당순이익(EPS)도 한국은 올해 33.7% 줄어들지만 대만은 5.6% 감소에 그칠 전망이다.

일각에선 외국인의 이탈을 일시적 요인에서 찾는다. 북한 리스크 확대,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 상장, 알리바바의 홍콩 증시 추가 상장, 기관들의 연말 북 클로징(장부 마감) 등이다. 하지만 한국이 저성장국 대열에 들고 경제 활력도 점점 떨어지면서 옛날처럼 외국인 자금의 대규모 유입은 기대하기 힘들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석원 SK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한국이 2%대 성장률 달성도 힘든 나라가 되면서 외국인의 관심이 다른 성장국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