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서 지자체로 이관된 동물구조…전문성·인력 태부족 한계

[이 기사는 독자 신춘숙씨가 보내주신 제보를 토대로 연합뉴스가 취재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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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동두천시에 사는 신춘숙(63)씨는 지난달 20일 시장 상가 하수도에 새끼 고양이가 빠져 울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OK!제보] "한 생명이 눈앞에서 죽어가는데…119도, 110도 속수무책이라니"
급한 마음에 119에 신고했지만 동물 구조에는 소방관이 출동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들었다.

소방당국이 구조 역량의 낭비를 막기 위해 지난해부터 단순 동물구조 신고에 대응하지 않기로 출동기준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신씨는 소방당국 대신 단순 동물구조를 담당하게 된 정부민원안내 콜센터 110에 전화해 동두천시청에 구조를 요청했다.

담당 공무원이 왔지만 속수무책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콘크리트에 고정된 하수구 덮개를 뜯어내고 고양이를 구해내기 힘든 것은 신씨나 장비라곤 작은 손전등 정도가 전부인 출동 공무원이나 매한가지였기 때문이다.

신씨는 "동물구조가 소방서에서 지자체로 넘어왔다면 최소한의 구조 장비는 구비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결국 고양이는 하수도 안에서 죽고 말았고 울면서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고 한탄했다.

이에 대해 담당 공무원도 어쩔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현행 동물복지법상 유기된 반려동물, 학대받는 동물 등이 아닌 길고양이는 지자체의 구조·보호 의무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동두천시 농업축산위생과 담당자는 "구조를 한다고 해도 이후 애써 살려낸 동물을 보호할 예산이나 근거가 없어 결국엔 안락사에 처한다"고 전했다.

동물 구조를 맡은 공무원의 현실적인 어려움도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대도시는 전담 조직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소도시인 동두천은 담당 직원이 1명뿐인 상황에서 하루에도 십여건 이상 걸려오는 동물 구조 전화를 모두 대응하기 힘들다"며 "동물 구조뿐 아니라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나 조류인플루엔자(AI) 방역도 도맡고 있어서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다른 지자체 역시 상황은 대동소이하다.

부산 한 구청의 동물 구조 담당자 역시 "1명뿐인 담당자 혼자 전화를 받고 구조를 모두 나가기는 힘들다.

포획 틀 등도 마련돼 있지 않아 구조 요청이 오면 장비가 있는 119로 되레 안내하곤 한다"고 털어놨다.

[OK!제보] "한 생명이 눈앞에서 죽어가는데…119도, 110도 속수무책이라니"
동물보호단체도 이러한 실정을 잘 알고 있다.

동물자유연대 구철민 활동가는 "개선이 필요하지만 현행 동물보호법으론 지자체 탓만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119 역시 인명 구조가 우선인 곳이라 동물 구조용 장비가 없는 것은 마찬가지"라며 "우리나라는 소방당국이든 지자체든 동물을 구조할 수 있는 안전망이 거의 없다시피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는 시민이나 시민단체가 나서서 관이 못 해주는 구조나 입양 등을 맡고 있는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제보자 신씨는 "지금까지 구조가 필요한 상황인데 아무 조치도 못 해 눈앞에서 보낸 생명이 여럿"이라며 "110에 전화해도 구조해주지 못한다는 대답만 되풀이된다면 어디다 전화해야 죽어가는 생명을 살릴 수 있는지요"라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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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