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은 1일 자유한국당의 무더기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신청은 '법질극'이라고 맹비난을 퍼부으며 사실상 협상 중단을 선언했다.
한국당이 본회의에 상정되는 199개 안건 모두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행위를 집단 인질극에 비유한 것이다.
민주당은 특히 한국당의 필리버스터 철회가 전제되지 않는 이상 일부 민생법안을 처리하기 위한 '원포인트' 본회의 소집도 사실상 의미가 없다는 점을 부각시키면서, 한국당을 제외한 나머지 여야4당과의 공조로 내년도 예산안 및 민생입법,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을 처리하겠다는 전략을 분명히 했다.
한국당이 본회의 안건 199개 전체에 필리버스터를 신청해 여론의 역풍을 맞고 있다고 보고 바른미래당, 정의당, 민주평화당, 대안신당과의 공조에 당력을 집중해 한국당을 고립시키고 정국 주도권을 확보하겠단 계획이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국민과 민생을 볼모로 잡고 국회 완전 봉쇄에 나섰던 상대와 더는 대화, 합의, 협상을 노력하는 것은 무의미해 보인다"며 "우리는 신속하고 정확하게 절차를 밟아 검찰 개혁, 선거제 개혁 무산을 노린 국회 봉쇄 음모 하나하나를 진압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 원내대표는 "사실상 20대 국회의 문을 여기서 닫아걸고 국회를 마비시킨 뒤 한국당 마음대로 국회를 좌지우지하겠다는 가공할 만한 정치기획"이라며 "집단 인질범의 수법과 다를 바 없다.
대대적인 '법질극'"이라고 힐난했다.
이해식 대변인은 논평에서 "민주당은 민생을 내팽개치고 쿠데타적 발상으로 국회를 무력화하는 일을 두 번 다시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한국당의 발상과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향후 어떠한 타협도 없으며 오직 국민만 바라보고 의회민주주의 원칙대로 향후 일정을 과단성 있게 밀고 나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주당은 한국당의 필리버스터 전략에 맞서 민생 입법을 우선 추진하고 이를 지렛대 삼아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까지 동력을 이어갈 방침이다.
당장 이날 0시를 기해 본회의에 자동 부의한 예산안 처리를 놓고 다양한 시나리오가 거론되고 있다.
이 원내대표는 이날 회견에서 "예산안의 처리를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하는지, 예산안 그 자체를 합의 처리할 수 있는 단위를 만들어서 해야 하는지 다시 검토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밝혔다.
국회법상 예산안에 대한 필리버스터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본회의만 열리면 예산안을 처리하는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다.
다만 아직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예산안 심사가 끝나지 않아 법정 처리시한인 2일까지 심사 마무리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다.
이 때문에 민주당이 한국당을 제외한 나머지 정치세력들과 별도의 예산안 심사 테이블을 만들어 제1야당을 압박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통상 예산국회 막바지에는 여야가 예산안과 쟁점법안 '빅딜'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한국당의 '전대미문' 무더기 필리버스터 사태 이후 민주당이 사실상 대화 중단을 선언한 만큼 이번에는 예산안을 고리로 한 일괄 협상 여지가 크지 않은 게 사실이다.
민주당 내부적으로도 예산안만 처리하거나 예산안과 필리버스터를 신청하지 않은 '민식이법' 등 일부 법안만 함께 처리하는 방안, 패스트트랙 법안까지 패키지로 몰아 상정하는 방안을 함께 고민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은 당장이라도 본회의를 열어 민식이법 등 민생법안을 처리하자는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제안에 대해서도 거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박찬대 원내대변인은 기자들을 만나 "필리버스터를 보장하고 그냥 가자는 것으로 상황이 변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받을 수가 없다"고 일축했다.
당내에선 본격적인 수싸움은 예산 처리 이후 전개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은 선거제 개혁안의 핵심인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대해 결사 저지를 외치고 있는 한국당의 필리버스터 신청이 예견되는 상황에서 '살라미 임시국회'로 법안을 처리하는 방안을 일단 검토중이다.
회기가 종료되면 필리버스터가 적용됐던 법안을 그다음 국회 회기에서 바로 표결할 수 있는 만큼, 안건별로 1일 정도의 짧은 회기의 임시국회를 여러 번 열어 법안을 순차 처리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특히 한국당이 민생입법까지 포함한 필리버스터 신청으로 여론의 역풍을 맞은 만큼 민주당이 역설적으로 개혁입법 처리를 위해 유리한 고지를 점한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민주당은 이날 오후 이해찬 대표가 주재하는 비공개 최고위원 간담회를 열고 구체적인 전략을 논의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