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진태원 박사가 쓴 '애도의 애도를 위하여'
"조국 정국으로 촛불시민혁명 시효는 만료했다"
을(乙)이라는 문제적 주체를 통해 한국 민주주의를 고찰한 철학자 진태원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이 86세대와 정체된 인문학계를 비판한 책 '애도의 애도를 위하여: 비판 없는 시대의 철학'을 펴냈다.

86세대에 속하지만 정치적으로 그들과 동일시한 적은 없다고 고백한 저자는 서문에 같은 세대를 향한 쓴소리를 거침없이 적었다.

그는 "촛불 시위가 새 정권을 탄생시켰을 때만 해도 광장의 정치는 참여민주주의의 총아로 숭상됐지만, 그것이 허상이었음이 입증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며 처음에 조롱의 대상이었던 태극기 집회는 '조국 정국'을 경유하면서 서초동 촛불 집회와 비슷한 규모와 세력을 보여줬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이제 광장은 대의정치에 맞선 주권자의 직접민주주의를 상연하는 곳이 아니라 대의정치의 두 권력을 추종하는 이들이 각자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권력투쟁의 장으로 변모했다"며 "조국 정국은 촛불시민혁명 시효가 만료했으며, 86세대가 도덕적·지적으로 파산했다는 점을 드러냈다"고 강조했다.

책은 민중·민족 담론, 마르크스주의, 이 둘을 밀어내고 1990년대에 등장한 포스트 담론에 대한 '애도의 애도'를 제안한다.

애도는 정신분석학 측면에서 보자면 1917년 프로이트가 발표한 글인 '애도와 우울증'에 등장한다.

프로이트는 개인이 사랑한 대상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면 애도를 느끼고, 잃어버린 대상에 대한 애착을 중지하지 않으면 우울증이 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저자는 데리다가 정상적 애도와 병리적 우울증이라는 이분법 대신에 '자기 자신에 대한 애도', 즉 '애도에 대한 애도'를 고안했다고 소개한다.

저자는 "포스트 담론에는 나르시시즘적 주체 중심주의가 존재했고, 이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어떤 조건 속에서 어떤 담론을 수입했는지 혹은 이데올로기적 기능은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이 부재했다"며 이로 인해 한국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아무런 비판도 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을 향해서도 불평등과 차별, 배제와 혐오가 심화하고 있음에도 무기력하고 이중적인 태도를 보일 뿐이라고 공격한다.

그러면서 "한국 철학은 비판 능력을 상실한 채 말 그대로 좀비와도 같은 처지에 놓였다"며 30년 전 사상에 대한 애도의 애도를 통해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본문에 수록한 논문 10편에는 그 대안에 관한 저자 나름의 생각이 담겼다.

그린비. 520쪽. 2만5천원.
"조국 정국으로 촛불시민혁명 시효는 만료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