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독립운동가' 상하이 폭탄의거 윤봉길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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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처는 일제강점기 중국 상하이 훙커우(虹口) 공원에서 일본 수뇌부에게 폭탄을 투척한 윤봉길(1908.6.21~1932.12.19) 의사를 '1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29일 밝혔다.
1908년 6월 충남 예산군 덕산면에서 태어난 윤 의사는 1930년 3월 '장부출가 생불환'(丈夫出家 生不還:대장부가 집을 떠나 뜻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이라는 비장한 글을 남긴 채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망명길에 올랐다.
중국 상하이에서 백범 김구 선생을 만나 의열투쟁의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던 중 '1932년 4월 29일 일왕(日王)의 생일인 천장절(天長節)을 일본군의 상해사변 전승 축하식과 합동으로 상해 홍구공원(虹口公園)에서 거행할 예정'이라는 '상하이 일일신문'의 보도를 접하고 의거를 결심했다.
1932년 4월 26일, 사흘 뒤 이뤄질 의거가 개인적 차원의 행동이 아니라 한민족 전체 의사를 대변한다는 점을 세계에 알리고자 백범이 주도하던 한인애국단에 가입했다.
의거 당일인 1932년 4월 29일 훙커우 공원에는 수많은 인파가 운집해 경계가 삼엄했다.
단상 위에는 시라카와(白川) 대장과 해군총사령관인 노무라(野村) 중장, 우에다(植田) 중장, 주중 공사 시게미쓰(重光), 일본거류민단장 가와바타(河端), 상하이영사 무라이(村井) 등이 도열해 있었다.
오전 11시 40분경 축하식 중 일본 국가 연주가 거의 끝날 무렵 윤 의사는 앞사람을 헤치고 나아가 단상 위로 수통형 폭탄을 던졌다.
이 의거로 시라카와 대장과 가와바타 거류민단장은 사망하고 노무라 중장은 실명, 우에다 중장 등은 중상을 입었다.
의거 후 중국의 장개석 총통은 "중국의 백만 대군도 못 한 일을 일개 조선 청년이 해냈다"고 치하하면서 임시정부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현장에서 체포된 윤 의사는 같은 해 5월 일본 군사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고 12월 19일 가나자와 미고우시 일본 육군 공병작업장에서 총탄에 맞아 25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의사의 유해는 광복 후인 1946년 조국에 봉환되어 서울 효창공원에 안장됐다.
정부는 윤 의사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연합뉴스
1908년 6월 충남 예산군 덕산면에서 태어난 윤 의사는 1930년 3월 '장부출가 생불환'(丈夫出家 生不還:대장부가 집을 떠나 뜻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이라는 비장한 글을 남긴 채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망명길에 올랐다.
중국 상하이에서 백범 김구 선생을 만나 의열투쟁의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던 중 '1932년 4월 29일 일왕(日王)의 생일인 천장절(天長節)을 일본군의 상해사변 전승 축하식과 합동으로 상해 홍구공원(虹口公園)에서 거행할 예정'이라는 '상하이 일일신문'의 보도를 접하고 의거를 결심했다.
1932년 4월 26일, 사흘 뒤 이뤄질 의거가 개인적 차원의 행동이 아니라 한민족 전체 의사를 대변한다는 점을 세계에 알리고자 백범이 주도하던 한인애국단에 가입했다.
의거 당일인 1932년 4월 29일 훙커우 공원에는 수많은 인파가 운집해 경계가 삼엄했다.
단상 위에는 시라카와(白川) 대장과 해군총사령관인 노무라(野村) 중장, 우에다(植田) 중장, 주중 공사 시게미쓰(重光), 일본거류민단장 가와바타(河端), 상하이영사 무라이(村井) 등이 도열해 있었다.
오전 11시 40분경 축하식 중 일본 국가 연주가 거의 끝날 무렵 윤 의사는 앞사람을 헤치고 나아가 단상 위로 수통형 폭탄을 던졌다.
이 의거로 시라카와 대장과 가와바타 거류민단장은 사망하고 노무라 중장은 실명, 우에다 중장 등은 중상을 입었다.
의거 후 중국의 장개석 총통은 "중국의 백만 대군도 못 한 일을 일개 조선 청년이 해냈다"고 치하하면서 임시정부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현장에서 체포된 윤 의사는 같은 해 5월 일본 군사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고 12월 19일 가나자와 미고우시 일본 육군 공병작업장에서 총탄에 맞아 25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의사의 유해는 광복 후인 1946년 조국에 봉환되어 서울 효창공원에 안장됐다.
정부는 윤 의사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