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백남기 사인 '외인사'가 타당…주의의무 위반으로 유족 고통"
백 교수 측 "병사 의견 적절…재판 아닌 정치판단" 반발…항소 의사
법원 "백선하 교수, 백남기 유족에 4천500만원 배상하라"(종합2보)
고(故) 백남기 농민의 주치의가 백씨 유족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법원이 판결했다.

주치의인 백선하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 측은 강력히 반발하면서 항소 의사를 표명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8부(심재남 부장판사)는 26일 백씨 유족들이 백선하 교수 등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백 교수가 서울대병원과 공동으로 4천5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지난달 내린 화해권고 결정 내용과 같다.

백남기 씨는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여했다가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고 중태에 빠진 뒤 이듬해 9월 25일 숨졌다.

서울대병원 측은 주치의인 백선하 교수의 의견에 따라 백남기씨 사망진단서에 사인을 외부 충격에 따른 '외인사'가 아닌 '병사'로 기재해 논란을 일으켰다.

병원 측은 2017년 6월에야 백남기씨 사인을 '외인사'로 공식 변경했다.

백씨 유족은 이로 인해 고통을 겪었다며 소송을 냈고, 재판부는 지난달 서울대병원과 백 교수가 배상금을 유족에 지급하라는 화해 권고 결정을 냈다.

서울대병원은 화해권고 결정을 받아들였지만, 백 교수가 불복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백 교수에 대해서만 분리해 선고를 내렸다.

재판부는 "망인은 물대포를 맞아 넘어지면서 상해를 입고 수술을 받았으나 의식을 한 번도 회복하지 못한 채 패혈증, 급성신부전의 합병증으로 사망했다"며 "그 '사망의 종류'가 외인사임이 명백하다"고 판단했다.

이어 "그럼에도 사망의 종류를 '병사'로, 직접 사인을 '심폐정지'로 기재한 것은 합리적 재량의 범위를 벗어나 주의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밝혔다.

사망의 종류는 법률적인 사망원인을 지칭하고, 직접적인 사인이 아닌 선행 사인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를테면 폭행을 당한 노인이 사망한 경우 직접적인 사인은 뇌출혈일 수 있어도 '외인사'에 해당한다는 의미다.

아울러 사망하면 당연히 나타나는 '증세'인 심장정지, 심부전 등을 사망원인으로 기록하는 것은 오류라는 점도 재판부는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어 "백 교수가 사망 원인에 대한 혼란을 일으켰을 뿐 아니라 사망 책임을 둘러싸고 유족들까지 비난받았다"며 "백 교수의 주의의무 위반으로 인해 유족들이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음이 명백하므로 이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백 교수 측은 화해권고에 불복하면서 의학적으로 다투겠다는 취지로 변론을 재개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날 선고에 앞서 재판부는 "소송이 제기된 후 3년이 지났다"며 "오랜 시간 심리해 화해권고를 결정한 상태에서 재개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백 교수 측 법률대리인은 "그간 의학적·과학적 증거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며 "적어도 의학적 증거를 제출할 기회는 줘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선고 기일은 변론 시간이 아니다"라며 대리인의 주장을 제지하고 판결을 선고했다.

이에 대리인들은 "과학과 의학을 무시하며 마음대로 재판할 권리가 있느냐", "사법부 치욕의 날로 기억될 것이다" 등의 말을 하며 반발했다.

반발이 이어지자 재판부는 백 교수 측 대리인들의 퇴정을 명했다.

대리인들은 입장문을 내고 "이 사건은 수술 도중이나 직후에 사망한 것이 아니라 10개월 이상 생존한 사안으로 사인 판단을 어렵게 하는 여러 요소가 중첩된 경우"라며 "이런 사안에서 백 교수가 선행 사인이 아닌 직접 사인을 심장쇼크사로 보고 병사 의견을 낸 것은 누구도 비난하기 어려운 적절한 의견"이라고 주장했다.

또 "재판부가 백 교수에 진실을 밝힐 기회를 주지 않은 채 판결을 강행한 것은 의사의 양심을 짓밟은, 재판 형식을 빌린 정치판단일 뿐"이라며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