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동대문 의류도매시장에서 패션디자이너로 활동하는 차연진(가명)씨와 유영미(가명)씨 등이 보내주신 제보를 토대로 연합뉴스가 취재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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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2시간 얘기하면 패션업계에선 다들 코웃음 칠 거에요.

주 100시간 일해도 시간외수당은커녕 교통비나 식대도 못받아요.

" (패션디자이너 차연진씨)
"휴가 때 시차가 큰 외국에 있어도 일 때문에 연락하고 과로로 병원에 입원해도 찾아오지만 퇴사할 땐 퇴직금을 안주려고 온갖 꼼수를 부려요.

"(패션디자이너 유영미씨)
동대문 의류도매시장에서 15년간 패션 디자이너로 근무한 차모(39)씨와 유모(37)씨는 내년부터 중소기업에도 주 52시간제가 시행된다지만 동대문 의류업계에는 '먼나라 얘기'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회사가 주 52시간을 지키지 않더라도 좁은 동대문 패션업계에서는 영원히 일을 그만둘 각오를 하지 않으면 고발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이들은 전했다.

대부분 업체가 무임금 야근을 시행하는 데다 고발했다는 소문이 나면 다른 업체에 취업할 길도 막힐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패션업계에서는 1년에 2번 성수기 때는 2∼3주일간 하루 15∼18시간 근무를 해야 한다.

주 6일 일하는 경우도 있고 하루나 이틀은 철야하기도 한다.

많을 경우 근무시간이 주 100시간에 이르는 셈이다.

그러나 시간외수당은 물론 식대와 택시비도 기대하기 어려워 마지막 버스 시간을 외우고 다녀야 한다.

패션업계에서 시간외수당을 기대할 수 있는 곳은 초대형 기업 2곳 밖에 없는 실정이다.

유명 패션그룹은 양호실에 야전침대를 설치해 놓은 채 이른바 '무임금 야근'을 유도하고 있다.

평상시에도 2∼5시간 걸리는 업무 미팅을 커피숍이나 상사 자택에서 했다는 이유로 업무 시간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

차씨와 유씨는 휴가 때나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업무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유씨는 "과거 패션 브랜드 업체에서 일할 때 과로로 병원에 입원한 적 있지만 산재 관련 지원금이 전혀 없어 개인 비용으로 처리했다"며 "그러면서도 병실까지 일을 가지고 찾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휴가 때 업무 전화를 하는 업체도 절반 정도는 됐다고 설명했다.

[OK!제보] 동대문 패션디자이너 "주 100시간 일해도 교통비도 못받아"
그러면서도 일부 회사는 의류 생산 등에 차질이 생길 경우 책임을 외면한 채 디자이너에게 떠넘겼다.

유씨는 작년 말 거래처 실수로 의류 제작에 부적합한 원단을 공급받았다가 모든 책임을 뒤집어써 급여 중 80만원가량을 차감당한 뒤 퇴사했다.

회사 측은 유씨가 서울고용노동청에 신고하고 노동청이 조사에 나서자 그제야 돈을 돌려줬다.

폐기 처분한다던 원단은 수선 후에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씨는 "자금이 충분한데도 급여를 안 주는 업체가 많아 3번이나 노동청에 고발해야 했다"며 "금액이 작은 경우 대부분 돌려주지만 수개월치 월급이 밀린 경우 노동청 고지를 따르지 않은 채 6개월 정도 미루다가 개인적으로 연락해 절반만 주고 마무리하자고 종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대우에도 15년차 실장급 디자이너의 월급은 350만∼400만원 수준에 그치고 있어 정직원이 되기를 포기한 채 월 180만∼200만원인 아르바이트를 2∼3개 하는 디자이너들도 많은 편이다.

아르바이트 근무를 이유로 퇴직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차씨는 아르바이트 3개월과 정직원 9개월 등 1년가량 근무했지만 퇴직 때 아르바이트 기간이 근무 경력으로 인정되지 않아 퇴직금을 받지 못했다.

최근 업계에 유행처럼 등장한 프리랜서(용역) 계약서 속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항목이 발목을 잡았다.

차씨는 "아르바이트 때도 정직원과 다를 바 없이 일했는데 근로자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퇴직금을 주지 않았다"며 "드물게 퇴직금을 주는 경우에도 업체 대표가 개인적으로 감사사례 형식으로 줄 뿐 정식 퇴직금 명목으로 주는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의류업체들은 디자이너 채용 형태가 오랜 관행이고 문제를 제기하는 디자이너가 드물다는 입장이다.

최근 일부 디자이너가 퇴직금 지급을 요구하는 등 논란이 일면서 퇴직금 미지급을 명시한 프리랜서 계약서가 등장했다는 설명이다.

의류도매업계 관계자는 "패션디자이너들이 본사 소속으로 채용돼 4대 보험과 원급을 정기적으로 받는다"며 "야근을 할 경우 낮에 출근하는 등 유연한 근무 체계를 적용하는 곳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수당에 대한 불만을 직접 표출하거나 퇴직금 문제로 노동청에 고발하는 디자이너는 별로 많지 않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법원이 프리랜서 헤어 디자이너도 근로 수칙에 따라 일했으면 근로자로 인정하는 등 디자이너의 지위가 개선되고 있는 만큼 패션디자이너들도 법적, 행정적 구제를 위한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무법인 에이치 이정훈 대표는 "근로기준법은 '재량업무'를 하는 근로자에게도 당연히 적용된다"며 "패션디자이너가 '프리랜서'로 근무를 하더라도 특정 업체에 전속되어 구체적인 업무지시를 받아 근로를 제공할 경우 근로자에 해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패션디자이너 스스로 근로자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OK!제보] 동대문 패션디자이너 "주 100시간 일해도 교통비도 못받아"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