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위안부 소송…日정부를 韓법정에 세울 수 있나?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日정부가 주장하는 주권면제, 인정할지 여부가 재판 핵심 쟁점
확립된 국제법 원칙이나 유엔협약, '非주권행위'는 예외 인정
"'전쟁범죄 등 국제법 위반행위는 주권면제 적용불가' 법리 연구 필요" 위안부 피해자들과 유족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소송 제기 3년10개월여만인 지난 13일 첫 재판으로 본격 시작되면서 한국 법원이 일본 정부에 법적 책임을 물릴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소송에서 작년 한국 대법원이 배상을 명령했지만 그것은 일본 기업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이번 위안부 소송과는 차원이 다르다.
일본 정부는 '주권면제'를 주장하고 있다.
'국가면제'로도 불리는 주권면제는 '한 국가의 법원이 다른 국가를 소송 당사자로 삼아 재판할 수 없다'는 국제법상 원칙이다.
그에 따라 한국 법원은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게 일본 측 입장이다.
그렇다면 '주권면제'는 만고불변의 국제법 원칙일까?
◇재판 핵심 쟁점인 주권면제…과거 절대적 원칙이었지만 점차 '예외인정'
'주권을 지닌 모든 국가는 서로 평등하고 독립적'이라는 국제법 원칙에 따라 형성된 주권면제 취지를 고려하면 일본의 '주권면제' 주장도 나름의 논리가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절대적인 원칙으로 여겨지던 주권면제가 20세기 중반 이후로 '국가의 주권과 관련된 행위가 아닌 단순한 사법적·상업적 행위, 즉 비(非)주권행위에 대해서는 다른 국가에 대해서도 재판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시작으로 예외가 인정되는 상대적인 개념으로 변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가끼리 상사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나 한 국가가 다른 국가의 국민을 고용하는 경우 등까지 다른 국가를 상대로 한 재판을 할 수 없게 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는 것이다.
유럽은 이 같은 주장을 가장 먼저 받아들여 1972년 '주권면제에 관한 유럽협약'을 체결해 주권면제 예외를 공식 인정했다.
이 협약은 ▲ 국가 간 채무이행과 관련한 소송 ▲ 고용계약과 관련한 소송 ▲ 상공·금융업 활동과 관련한 소송 등에 대해서는 다른 국가를 상대로 한 재판이 가능하도록 했다.
유럽에서 주권면제 예외가 인정되자 미국도 4년 후인 1976년 '외국주권면제법'을 제정해 유럽과 행보를 같이 했다.
유럽협약과 비슷한 내용이지만 예외가 인정되는 비주권행위를 '상업적 활동' 등으로 구체화했다.
이후 유엔이 2004년 유럽협약과 거의 동일한 내용의 '국가 및 그 재산의 재판권면제에 관한 유엔협약'을 채택하면서 주권면제 예외 인정은 전 세계적인 국제법 원리로 자리 잡았다.
유엔협약에는 사망, 신체침해 및 재산상 침해 등에 관련된 소송과 지식 및 산업재산권 관련 소송이 주권면제의 예외 사유로 추가됐다.
아직 유엔협약에 가입하지는 않았지만 한국도 이 같은 세계적 추세에 동참하고 있다.
주권면제 예외를 인정하지 않던 우리 법원은 199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주권면제 예외를 처음 인정했다.
주한미군에서 근무하다 해고된 한국인이 미국 정부를 상대로 해고가 무효라며 낸 소송에서 1·2심은 주권면제 원칙에 따라 미국을 상대로 한 재판을 할 수 없다며 소송을 각하했다.
하지만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우리 법원의 재판권의 행사가 외국의 주권적 활동에 대한 부당한 간섭이 될 우려가 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외국을 피고로 해 우리 법원이 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다"며 주권면제 예외를 인정했다.
◇ 유엔협약상 '비주권행위'는 주권면제 예외…일부 국가서 '전쟁범죄는 예외' 판결
유엔국제법률가위원회와 국제엠네스티, 유엔인권위원회, 유엔인권이사회 보고서 등에 따르면 위안부 문제는 '일본이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관헌을 동원해 강제 또는 기망의 방법으로 위안부를 연행해 자국 군인의 성노예로 생활하게 한 사안'으로 정의된다.
그렇다면 위안부 문제는 주권면제의 예외사유에 해당할 수 있을까? 주권면제의 예외와 관련한 국제사회의 흐름이 이에 대한 시사점을 줄 수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2004년 6월 한국인 출신 위안부 피해자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위안부 문제가 외국주권면제법상 비주권행위인 상업적 활동으로 평가될 여지가 있다는 취지의 판단을 한 바 있다.
그러나 미국 법원의 판단을 한국 법원이 받아들이기에는 한계가 있다.
위안부 제도의 본질은 일본이 계획적·조직적으로 위안부 피해자를 성노예로 착취한 전시(戰時) 여성 인권 침해이기 때문이다.
유엔협약이나 미국의 외국주권면제법이 예외사유로 인정한 상업적 행위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위안부 문제가 반인권적 범죄에 해당하고 국제법상 강행법규(국제법상 위반이 절대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규범으로 집단살해금지, 노예금지, 고문금지 등이 이에 해당한다)에 위반되므로 주권면제가 인정되면 안 된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실제로 그리스나 이탈리아 대법원은 이 같은 법리를 적용해 2차대전 기간 독일 나치정부의 전쟁범죄로 피해를 본 자국민에 대한 독일정부의 피해배상을 인정한 바 있다.
그리스 대법원은 2000년 5월 나치정부의 양민학살 피해자와 유족 257명이 독일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국제법상 강행법규를 위반한 불법행위는 국가의 주권적 행위라고 보기 어려워 주권국가로서의 자격의 범위 내에서 행동한 것이 아니다"며 주권면제를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탈리아 대법원도 2004년 3월 2차대전 중 독일에서 강제노역을 한 이탈리아인이 독일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국가의 국제범죄에 해당하는 국가의 행위에는 주권면제를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국가 간 사법분쟁을 해결하는 국제기구인 국제사법재판소는 여전히 주권면제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국제사법재판소는 2012년 3월 "주권면제는 법원이 다른 국가와의 관계에서 다른 국가를 상대로 관할권을 행사할 것인지 여부에 국한된 문제이므로 청구원인이 된 행위가 적법한지 여부와는 무관하다"며 이탈리아 대법원의 2004년 판결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주권면제는 국제법상 절차와 관련된 법리에 불과하므로 국제법상 강행법규를 위반한 불법행위라도 주권면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취지다.
그럼에도 국제사법재판소의 이 같은 입장이 향후 바뀔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2012년 판단 때도 일부 재판관들은 "국제범죄, 인권의 중대한 위반, 국제인도법의 중대한 위반 등에 대해선 주권면제가 인정되면 안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중대한 인권 침해에 대한 주권면제 예외가 아직은 '소수의견'일지라도 미래엔 '다수의견'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부 재판관들의 견해는 의미가 적지 않아 보인다.
주권면제 법리에 정통한 이영진 헌법재판관은 15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국제인권법의 발달로 인권 침해행위에 대해서는 주권면제를 적용할 수 없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며 "우리도 관련 국내법을 시급히 제정하거나 유엔협약에 가입하는 것과 함께 위안부 문제와 같은 전쟁범죄가 주권면제 예외에 해당하도록 하는 법리를 꾸준히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재판관은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재직 시절인 2014년 12월 미국헌법학회가 발간하는 학술지에 '외국국가의 재판권면제에 관한 연구'라는 주제로 논문을 게재하는 등 국내 법조인으로서는 드물게 주권면제 법리를 오랫동안 연구했다.
/연합뉴스
확립된 국제법 원칙이나 유엔협약, '非주권행위'는 예외 인정
"'전쟁범죄 등 국제법 위반행위는 주권면제 적용불가' 법리 연구 필요" 위안부 피해자들과 유족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소송 제기 3년10개월여만인 지난 13일 첫 재판으로 본격 시작되면서 한국 법원이 일본 정부에 법적 책임을 물릴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소송에서 작년 한국 대법원이 배상을 명령했지만 그것은 일본 기업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이번 위안부 소송과는 차원이 다르다.
일본 정부는 '주권면제'를 주장하고 있다.
'국가면제'로도 불리는 주권면제는 '한 국가의 법원이 다른 국가를 소송 당사자로 삼아 재판할 수 없다'는 국제법상 원칙이다.
그에 따라 한국 법원은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게 일본 측 입장이다.
그렇다면 '주권면제'는 만고불변의 국제법 원칙일까?
◇재판 핵심 쟁점인 주권면제…과거 절대적 원칙이었지만 점차 '예외인정'
'주권을 지닌 모든 국가는 서로 평등하고 독립적'이라는 국제법 원칙에 따라 형성된 주권면제 취지를 고려하면 일본의 '주권면제' 주장도 나름의 논리가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절대적인 원칙으로 여겨지던 주권면제가 20세기 중반 이후로 '국가의 주권과 관련된 행위가 아닌 단순한 사법적·상업적 행위, 즉 비(非)주권행위에 대해서는 다른 국가에 대해서도 재판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시작으로 예외가 인정되는 상대적인 개념으로 변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가끼리 상사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나 한 국가가 다른 국가의 국민을 고용하는 경우 등까지 다른 국가를 상대로 한 재판을 할 수 없게 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는 것이다.
유럽은 이 같은 주장을 가장 먼저 받아들여 1972년 '주권면제에 관한 유럽협약'을 체결해 주권면제 예외를 공식 인정했다.
이 협약은 ▲ 국가 간 채무이행과 관련한 소송 ▲ 고용계약과 관련한 소송 ▲ 상공·금융업 활동과 관련한 소송 등에 대해서는 다른 국가를 상대로 한 재판이 가능하도록 했다.
유럽에서 주권면제 예외가 인정되자 미국도 4년 후인 1976년 '외국주권면제법'을 제정해 유럽과 행보를 같이 했다.
유럽협약과 비슷한 내용이지만 예외가 인정되는 비주권행위를 '상업적 활동' 등으로 구체화했다.
이후 유엔이 2004년 유럽협약과 거의 동일한 내용의 '국가 및 그 재산의 재판권면제에 관한 유엔협약'을 채택하면서 주권면제 예외 인정은 전 세계적인 국제법 원리로 자리 잡았다.
유엔협약에는 사망, 신체침해 및 재산상 침해 등에 관련된 소송과 지식 및 산업재산권 관련 소송이 주권면제의 예외 사유로 추가됐다.
아직 유엔협약에 가입하지는 않았지만 한국도 이 같은 세계적 추세에 동참하고 있다.
주권면제 예외를 인정하지 않던 우리 법원은 199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주권면제 예외를 처음 인정했다.
주한미군에서 근무하다 해고된 한국인이 미국 정부를 상대로 해고가 무효라며 낸 소송에서 1·2심은 주권면제 원칙에 따라 미국을 상대로 한 재판을 할 수 없다며 소송을 각하했다.
하지만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우리 법원의 재판권의 행사가 외국의 주권적 활동에 대한 부당한 간섭이 될 우려가 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외국을 피고로 해 우리 법원이 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다"며 주권면제 예외를 인정했다.
◇ 유엔협약상 '비주권행위'는 주권면제 예외…일부 국가서 '전쟁범죄는 예외' 판결
유엔국제법률가위원회와 국제엠네스티, 유엔인권위원회, 유엔인권이사회 보고서 등에 따르면 위안부 문제는 '일본이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관헌을 동원해 강제 또는 기망의 방법으로 위안부를 연행해 자국 군인의 성노예로 생활하게 한 사안'으로 정의된다.
그렇다면 위안부 문제는 주권면제의 예외사유에 해당할 수 있을까? 주권면제의 예외와 관련한 국제사회의 흐름이 이에 대한 시사점을 줄 수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2004년 6월 한국인 출신 위안부 피해자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위안부 문제가 외국주권면제법상 비주권행위인 상업적 활동으로 평가될 여지가 있다는 취지의 판단을 한 바 있다.
그러나 미국 법원의 판단을 한국 법원이 받아들이기에는 한계가 있다.
위안부 제도의 본질은 일본이 계획적·조직적으로 위안부 피해자를 성노예로 착취한 전시(戰時) 여성 인권 침해이기 때문이다.
유엔협약이나 미국의 외국주권면제법이 예외사유로 인정한 상업적 행위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위안부 문제가 반인권적 범죄에 해당하고 국제법상 강행법규(국제법상 위반이 절대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규범으로 집단살해금지, 노예금지, 고문금지 등이 이에 해당한다)에 위반되므로 주권면제가 인정되면 안 된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실제로 그리스나 이탈리아 대법원은 이 같은 법리를 적용해 2차대전 기간 독일 나치정부의 전쟁범죄로 피해를 본 자국민에 대한 독일정부의 피해배상을 인정한 바 있다.
그리스 대법원은 2000년 5월 나치정부의 양민학살 피해자와 유족 257명이 독일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국제법상 강행법규를 위반한 불법행위는 국가의 주권적 행위라고 보기 어려워 주권국가로서의 자격의 범위 내에서 행동한 것이 아니다"며 주권면제를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탈리아 대법원도 2004년 3월 2차대전 중 독일에서 강제노역을 한 이탈리아인이 독일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국가의 국제범죄에 해당하는 국가의 행위에는 주권면제를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국가 간 사법분쟁을 해결하는 국제기구인 국제사법재판소는 여전히 주권면제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국제사법재판소는 2012년 3월 "주권면제는 법원이 다른 국가와의 관계에서 다른 국가를 상대로 관할권을 행사할 것인지 여부에 국한된 문제이므로 청구원인이 된 행위가 적법한지 여부와는 무관하다"며 이탈리아 대법원의 2004년 판결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주권면제는 국제법상 절차와 관련된 법리에 불과하므로 국제법상 강행법규를 위반한 불법행위라도 주권면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취지다.
그럼에도 국제사법재판소의 이 같은 입장이 향후 바뀔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2012년 판단 때도 일부 재판관들은 "국제범죄, 인권의 중대한 위반, 국제인도법의 중대한 위반 등에 대해선 주권면제가 인정되면 안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중대한 인권 침해에 대한 주권면제 예외가 아직은 '소수의견'일지라도 미래엔 '다수의견'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부 재판관들의 견해는 의미가 적지 않아 보인다.
주권면제 법리에 정통한 이영진 헌법재판관은 15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국제인권법의 발달로 인권 침해행위에 대해서는 주권면제를 적용할 수 없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며 "우리도 관련 국내법을 시급히 제정하거나 유엔협약에 가입하는 것과 함께 위안부 문제와 같은 전쟁범죄가 주권면제 예외에 해당하도록 하는 법리를 꾸준히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재판관은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재직 시절인 2014년 12월 미국헌법학회가 발간하는 학술지에 '외국국가의 재판권면제에 관한 연구'라는 주제로 논문을 게재하는 등 국내 법조인으로서는 드물게 주권면제 법리를 오랫동안 연구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