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달라질 수 있다고 마음먹으면 도와줄 누군가가 분명히 나타날 것이라는 희망 주고 싶었죠." '바람'(2009)의 이성한(48) 감독이 안타까우면서도 마음 따뜻한 새 성장 영화로 돌아왔다.
오는 21일 개봉하는 새 영화 '어제 일은 모두 괜찮아'는 일본의 고등학교 교사이자 작가인 미즈타니 오사무의 책 '얘들아 너희가 나쁜게 아니야'를 원작으로 한다.
12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만난 이 감독은 영화 속에 미즈타니 오사무 역할로 등장하는 민재처럼 따뜻하고 진중했다.
그는 "2012년 원작을 소개받아 처음 읽었는데, 읽는 순간에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영화에는 학교와 가정에서 소외돼 각기 다르지만, 또 같은 이유로 고통받고 좌절하는 청소년들이 나온다.
아픈 엄마와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힘들어하며 본드에 중독된 준영, 어머니와 둘이 살며 외삼촌의 폭력에 시달리는 지근, 친구들에게는 말하지 못하는 학교 폭력에 시달리는 용주, 부모님이 하시는 가게를 도와야 해 매일 학교에 지각하는 현정, 공부를 잘하지만 고아라는 이유로 같은 반 친구들에게 따돌림당하는 수연까지.
선생인 민재는 과거 준영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다른 아이들만은 지켜내기 위해 노력한다.
그는 언제나 아이들 곁에 있어 주려고 하고 그들을 질책하지 않는다.
원작 책이 에피소드 형식으로 된 까닭에 시나리오 작업에만 6년이 걸렸다.
준영의 이야기와 민재의 내레이션만 원작에 있는 내용이고, 나머지 아이들의 이야기는 현직 교사인 전정 작가의 각본과 국내에서 사례 조사 등을 통해 완성됐다.
"책을 2012년 10월에 읽고 같은 해 11월에 미즈타니 오사무 선생님을 만나러 갔죠. 흔쾌히 영화화에 동의해주셨어요.
그전에도 영화화하겠다고 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저희의 진심을 봐주셨죠. 다만, 선생님을 영웅으로 그리지만 말아 달라고, 아이들의 이야기로 만들어달라고 부탁하셨어요.
완성작을 보시고 잘 만들었다고 해주셨죠."
아이들을 따뜻한 눈으로 지켜보고 기다려주는 민재의 내레이션이 영화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이 감독은 "내레이션이 영화에서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전주영화제와 부산 청소년 영화제에서 상영했는데, 내레이션에 공감한 분들이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우리 영화가 필요했던 분들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주위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오셔서 보시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어른을 만날 때까지 버텨주시고, 꼭 만나서 세상이 살만하다는 것을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 이 감독은 "미즈타니 오사무 선생님도, 나도 나이는 들었지만 어른이라고 스스로 느끼지는 못한다"며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나도 너희들처럼 컸어', '나도 피해자야' 하기보다는 어른으로서 아이들을 보듬고 붙잡아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스페어'(2008)로 데뷔해 '바람'(2009), '히트'(2011) 등을 연출한 이성한 감독은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의 막내아들이다.
'바람'을 비롯해 이번 영화까지 성장 영화에 끌리는 이유에 대해 이 감독은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청룽의 '쾌찬차'를 보고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결심한 만큼, 청소년기가 가장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저는 열 네살, 중학교 1학년 때 가진 초심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것 같아요.
아무도 믿지 않을 수도 있고, 색안경을 끼고 보실 수도 있지만, 큰 배급사의 지원을 받을 수 없는 구조에서 어렵게 영화를 만들고 있어요.
“예상 대기시간 세 시간입니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지난해 4월 이탈리아에서 열린 베네치아 비엔날레. 행사장인 자르디니 공원 북부에 들어선 이집트관의 현장 안내 요원이 입장을 기다리는 관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80개 넘는 참가국이 각자 조성한 전시장 중에서도 이집트관은 유독 장사진을 이뤘다. 이유는 하나. 영상과 소리, 설치작업으로 전시장을 무대처럼 꾸민 이집트 작가 와엘 샤키(54)의 존재감 때문이었다.샤키는 이집트 우라비혁명(1879~1882)을 다룬 ‘드라마 1882’를 당시 선보였다. 70여 년간 이어진 영국의 이집트 식민 지배의 단초를 제공한 사건이다. 아랍권 출신인 작가는 이날의 기억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재현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뮤지컬 같은 45분짜리 영상이 관객을 매혹했다”고 평했고, 영국 아트리뷰는 ‘2024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미술인’ 6위에 샤키를 꼽았다.샤키가 한국을 찾았다. 서울 소격동 바라캇컨템포러리에서 4월 27일까지 열리는 개인전 ‘와엘 샤키: 텔레마치와 다른 이야기들’에 작가가 2000년대에 만든 초기 비디오 작업이 나와 있다. ‘텔레마치’ 시리즈(2007~2009) 등 영상 6점을 비교적 적은 대기시간을 들여 여유롭게 만날 기회다.역사의 통·번역사를 자처하는 샤키의 작업은 ‘기록된 역사를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란 고민에서 출발한다. 그는 1970년대 원유 사업이 떠오르던 시절 사우디아라비아 메카로 이민 갔다. 베두인족 등 토착 민족의 전통과 현대화의 물결이 충돌하던 시절이다. 서구 중심으로 기록된 역사에 의문을 품은 작가는 아랍 사회의 모순을 화면에 담기 시작했다.이번 전시에 걸
예술의전당이 ‘2025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더 뉴 비기닝’을 다음달 1일부터 20일까지 연다. 이 축제는 예술의전당이 1989년 음악당 개관 1주년을 기념해 처음 연 뒤 올해로 37년째 이어온 음악 행사다. 올해는 18개 교향악단이 참가한다.올해 축제에선 거장 지휘자들의 탄생과 서거를 기념하는 공연이 마련됐다. 라벨 탄생 150주년을 기념해 창원시립교향악단, 인천시립교향악단, 부천 필하모닉 등이 공연한다. 창원시향, 청주시립교향악단, 대전시립교향악단 등은 쇼스타코비치 타계 50주년 무대를 선보인다.악단들의 작곡가별 탐구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수원시립교향악단은 4일 브람스를, 강릉시립교향악단은 5일 차이콥스키를, 제주시립교향악단은 15일 라흐마니노프를 집중 연주한다. 8일 강남심포니, 17일 부산시립교향악단, 20일 경기 필하모닉 등은 후기 낭만주의 음악과 표제음악의 거장 말러를 탐구하는 공연을 선보인다.초대형 편성을 기대하는 클래식 애호가라면 16일 진주시립교향악단의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공연이나 13일 전주시립교향악단의 브루크너 교향곡 9번 공연에 주목할 만하다. 청주시향은 9일 마르티누, 대구시립교향악단은 19일 힌데미트의 작품을 연주해 20세기 음악의 독창성을 소개한다.인천시향의 정한결, 강남심포니의 데이비드 이, 국립심포니(사진)의 윤한결, 경기 필의 김선욱 등 1980~1990년대생 지휘자들이 청중에게 새로운 교향악 경험을 선사할 예정이다. 광주시립교향악단의 이병욱, 부산시향의 홍석원 등 새로 취임한 지휘자들도 활약한다.해외 협연자가 함께하는 공연도 마련돼 있다. 2024년 윤이상 국제 콩쿠르 우승자인 바이올리니스트 차오원 뤄가 4일
‘판소리 뮤지컬’이 지루할 것이란 편견은 이제 버리자. 가슴을 울리는 웅장한 판소리 합창에 감각적인 현대무용이 어우러진 뮤지컬 ‘적벽’(사진)은 관객을 적벽대전의 치열한 전투 한복판으로 데려다 놓는다. 칼군무로 펼쳐지는 부채쇼 역시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판소리 뮤지컬만의 볼거리다.국립정동극장의 대표 레퍼토리 작품인 ‘적벽’은 1368년께 발간된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와 500여 년 후 이를 바탕으로 조선에서 불렸던 판소리 ‘적벽가’를 토대로 한다. 익숙한 이야기지만, 우아하면서도 역동적인 몸짓과 현대적인 무대 연출이 신선하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2017년 초연 이후 올해로 여섯 번째 무대를 이어가고 있다. 젊은 관객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 사이에서 입소문을 탈 정도로 호평받고 있다.‘적벽’은 3세기 한나라 말 무렵 위·한·오나라가 치열한 세력 다툼을 벌이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도창의 해설에 따라 유비와 관우, 장비가 의형제를 맺는 도원결의, 장판교 전투, 적벽대전 등의 흐름으로 전개된다. 하지만 단순한 전쟁 이야기를 넘어 유비, 관우, 장비, 제갈공명, 조조 등의 신념과 야망이 얽힌 깊은 감정의 드라마가 무대를 가득 채운다.주요 배역에 성별 구분을 두지 않는 ‘젠더프리 캐스팅’을 도입했는데 어색함이 전혀 없었다. 더블 캐스팅인 조조와 유비 역할을 여성 배우인 이승희와 정지혜가 각각 맡았다. 제갈공명은 물론 유비 휘하 장수인 자룡과 조조의 책사 정욱 등도 여성 배우가 연기한다. 이는 기존 삼국지에서 남성 중심적으로 그려진 캐릭터들이 재해석되는 동시에 성별을 뛰어넘어 인물의 본질에 집중할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