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비극' 리뷰…공연시간만 약 6시간

절정을 향해 치닫는 힘찬 드라마, 개성 넘치는 인물, 비할 수 없는 탁월한 비유, 그리고 꽁꽁 베일에 감춰진 인생의 비밀을 파헤쳐 가는 섬뜩함.
400년 넘는 세월 동안 셰익스피어 드라마는 언제나 최고 자리를 차지한 예술계의 '성좌'였다.

작곡가, 영화감독, 화가 등 거의 전 영역에 있는 예술가들은 셰익스피어를 탐욕스럽게 변주하며 자신이 당대의 셰익스피어가 되길 희망했다.

벨기에 출신으로 유럽 연극계 최전선에 서 있는 이보 반 호프도 야심 차게 셰익스피어 변주에 도전했다.

지난 8일부터 LG아트센터에서 선보이는 '로마 비극'은 셰익스피어의 비극 '코리올레이너스' '줄리어스 시저'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를 엮어 만든 작품으로, 공연 시간만 5시간 45분에 이르는 대작이다.

셰익스피어 작품 중에서도 정치적인 성향이 강한 이 작품들은 제정을 향해가는 로마의 험난한 역사와 그 과정에서 스러져간 별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힘은 자본처럼 축적되기 마련이고, 이 축적된 힘은 결국 한 사람에게로 수렴해 간다.

코리올라누스, 시저, 안토니우스는 모두 힘을 가진 인물이었으나 독재를 염려했던 공화주의자들에 의해, 혹은 자신의 정치적 라이벌들에게 패하고 만다.

이 연극은 그런 패배의 역사를 담은 이야기이고,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역사적 전율의 순간에 주목한다.

스토리는 이미 익히 알려진 대로다.

하지만 셰익스피어가 만들어놓은 안전한 길로 이보 반 호프는 가지 않는다.

박력 있는 천둥 같은 타악기 연주로 문을 여는 이 대서사시는 장면이 바뀌어 무대 전환이 있을 때마다 관객들을 무대로 초대한다.

관객들은 배우들의 연기를 앉아서 볼 수도, 서서 볼 수도 있다.

객석도 이리저리 돌아다닐 수 있으며 자유롭게 음식을 먹을 수도 있다.

단, 무대에 올라가면 조심할 게 있다.

스크린에 배우들의 얼굴과 함께 관객 자신의 얼굴이 나올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해당 관객은 본인이 카메라에 잡혔는지조차 모르겠지만.
전장 상황을 뉴스로 생중계하고, 적장을 '뉴스룸'에 초대해 인터뷰하는 등 미디어를 활용한 장면이 많다.

TV 스튜디오에서 벌어지는 집정관과 호민관 사이에 논쟁은 마치 '100분 토론' 한 장면 같다.

'사느냐 죽느냐'를 놓고 등장인물들의 심각한 대사가 오가는 가운데 무대 위에 설치된 TV 화면에선 난데없이 CNN 뉴스, 수영 중계 등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보 반 호프는 카메라도 적극 활용한다.

마치 다르덴 형제의 영화에서처럼 카메라 감독은 핸드헬드 기법을 통해 인물들을 여과 없이 촬영하고, 이런 흔들리는 인물들의 이미지는 무대 위 스크린에 고스란히 투영된다.

인물에 대한 과장된 클로즈업과 사진 등의 이미지를 무대 위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먼 시대 이야기지만 이 작품이 이토록 우리에게 가깝게 다가오는 이유는 이런 친숙한 장치와 기법들을 차용하기 때문이다.

지난 세기 위대한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역저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영화: 오늘날의 기계 속에 예시적으로 들어있는 모든 직관 형식과 속도 리듬을 풀어놓은 것. 따라서 현대 예술의 모든 문제는 영화와 관련해서만 최종적으로 정식화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이보 반 호프의 '로마 비극'은 고전적 스타일의 연극이라기보다는 한편의 실험적인 영화와 같다.

미술 등 예술 거의 전 영역에 있어서 영상은 이미 중요한 형식으로 자리매김했고, '로마 비극'도 이 같은 흐름 속에 놓여 있다.

이보 반 호프와 같은 벨기에 출신 예술가 르네 마그리트 작품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를 변주한다면 이 연극을 이렇게도 소개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은 연극이 아니다.

'
2007년 암스테르담에서 세계 초연된 후 아비뇽 페스티벌, 런던의 바비칸, 뉴욕의 BAM 등 세계 유수의 페스티벌과 공연장에서 공연된 작품이다.

/연합뉴스